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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길
오늘 부는 바람은
2015-02-11 09:15:00 2015-02-23 10:50:44
추억이 된 것들은 원래 평범한 일상이었다. 산책 삼아 중학교 다니던 길을 걸어보았다. 격자무늬 보도블록, 길지 않은 횡단보도, 자전거 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길이지만 특별하다. 기억이 묻어서 그렇다. 이 길은 같은 반 여학생에게 고백했다 거절당한 다음날도 걸었고, 외국어 고등학교 불합격 통지를 받은 다음 날도 걸었다. 단언컨대 당시에는 길의 정취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지만, 지금 걸어가는 기분은 어느 때보다도 다정하니 시간이 그 길을 다시 닦았다 하겠다.
 
학교 가는 길에 유별난 기억이 남게 생긴 아이들이 있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는 서울 강남구 수서 S 아파트 주민 100여 명이 모여 항의 집회를 열었다. 인근 세곡2지구 보금자리주택 거주 학생들이 자신들의 자녀가 다니게 될 대왕중학교에 배정받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진=바람아시아
 
지난해 9월부터 입주가 시작된 세곡2지구 보금자리주택의 자녀들은 분양 당시 도보 43분 거리(2.8km)에 있는 수서중학교에 배정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세곡2지구 주민들은 가까운 대왕중학교(도보 30분 거리, 2km)에 배정해달라는 민원을 제기했고, 강남교육지원청은 이를 받아들였다.
 
항의 집회에 나선 학부모들은 “보금자리주택 학생들까지 받으면 과밀학급이 되어 학업 여건이 나빠질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대왕중의 올해 신입생 학급당 배정 인원은 31명이다. 이는 시 교육청이 목표로 잡는 32명보다 적은 숫자다. 세곡2지구 학생들이 대왕중에 진학하더라도 학급당 인원은 32명 수준이다. 학습여건이 나빠질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다. 작년 대왕중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는 37명이었다.
 
<어린 왕자>에서 생텍쥐페리는 숫자를 좋아하는 어른들에 대해 묘사한다. 어른들은 친구의 목소리, 취미 등에는 관심이 없고 몇 살인지, 형제는 몇인지, 아버지 수입은 얼마인지 따위만 궁금해한다. 생텍쥐페리가 묘사한 사람이 한국의 어른이었다면 그는 친구가 ‘어디 사는지’를 반드시 궁금해했을 것이다.
 
‘그 친구는 S 아파트에 사니? 아니면 길 건너 아파트에 사니?’
 
<어린 왕자>의 일화에 여운이 있다면 소년의 시선이 어른의 그것과 달라서일 게다. 어른의 기준에서 좋고 나쁨은 소년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소년은 숫자만 묻는 어른이 신기했을 것이다. 올 3월 대왕중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4일에 일어났던 ‘어른들의 일’에 대해 얼마나 눈치를 채고 있을까. 매일 나와 다른 방향으로 하교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것이다. 좀 더 늦게 알아도 될 일을, 이 나라의 청소년들은 너무 빨리 깨우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3월부터 등교할 세곡 2지구에 거주하는 대왕중학교 신입생들의 학교 가는 길에는 이제 한 가지 기억이 덧대어졌다. 입학하기도 전에 더해진 이 기억은 상처로 남을지도 모른다. 내 아픈 기억이 시간에 희석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상처가 소년의 상처였기 때문이다. 어린 마음으로 낸 상처였기 때문에 어느 순간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이 여물기도 전에 어른의 논리로 상처를 받은 소년의 마음은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이해관계에 밝은 것만이 어른과 청소년을 나누는 기준은 아닐 것이다. 아이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상처를 보듬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다. 내 자식이고 남의 자식이기 이전에, 덜 여물은 한 명의 사람이라는 생각을 먼저 할 수는 없었을까. 수서 S 아파트 학부모들이 외친 그 ‘학업 여건’이라는 것은 그렇게나 중요한 가치였을까.
 
조응형 기자 www.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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