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계열사를 합치고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등 재계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경기 침체가 길어지고 기업의 성장이 정체에 직면하면서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웅진을 시작으로 동양, STX 등 내로라하는 그룹들이 쓰러졌다. 전차군단으로 불리며 국내경제를 견인하던 삼성과 현대차의 성장도 예년만 못하다.
재벌닷컴이 최근 자산 규모 상위 10대그룹 소속 84개 상장사(금융 계열 제외)의 지난해 실적을 집계한 결과, 지난해 수익성이 전년 대비 극히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률은 SK와 LG를 제외한 삼성, 현대차, 롯데, 포스코, 현대중공업, GS, 한진, 한화 등 8개 그룹 모두 뒷걸음질했다.
현대차그룹(10개사)은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132조4000억원과 9조7000억원으로 전년보다 0.9%, 8.3% 감소했고, 영업이익률도 2012년 7.95%에서 지난해 7.35%로 0.6%포인트 내렸다. 포스코(7개사)는 영업이익률이 2012년 5.38%에서 지난해 4.69%로 0.7%포인트 하락했으며, 같은 기간 현대중공업(3개사)도 4.34%에서 1.73%로 2.61%포인트 줄었다.
다만 이번 구조조정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 성장 동력을 찾아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점에서 16년 전과 다르다. 기업들이 비슷한 사업군을 한 데 묶어 합병에 따른 효율과 시너지를 꾀하는 측면도 있다. 물론 비용 또한 절감효과가 기대된다. 금융권에서도 강도 높은 인력 감축 계획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자료=재벌닷컴)
구조조정의 칼은 재계 1위 삼성이 먼저 빼들었다. 삼성은 지난달 말 삼성SDI와 제일모직 합병을 전격 발표한 지 이틀 만에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을 합병했다. 이로써 삼성전자를 정점에 둔 전자 계열의 수직 계열화가 마무리됐다.
실적이 악화된 건설 부문도 조만간 구조조정에 돌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해 말부터 합병 가능성이 시장을 감싸고 돌았다.
이 같은 움직임은 일찌감치 감지됐다. 지난해 9월 제일모직은 패션사업을 떼어내 삼성에버랜드에 넘겼다. 같은 달 삼성SDS는 삼성SNS를 흡수합병했고, 다음 달에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코닝에 삼성코닝정밀소재 지분을 매각했다. 그해 11월에는 삼성에버랜드가 급식 식자재 사업을 분사하고, 건물관리사업은 에스원에게 넘겼다. 가히 마하의 속도다.
재계 관계자는 "사업 재편을 놓고 후계구도와 연관시키는 시각도 있지만, 성장 엔진이 될 신사업을 육성하기 위한 측면이 더 강하다"며 "미래에 대한 삼성의 고민이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다른 기업들도 동참했다. 성장동력에 집중함과 동시에, 실적이 부진한 사업은 과감히 정리에 돌입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실적이 부진한 비(非)자동차 부문 계열사 간 합병을 시도 중이다. 최근 중견 건설사인 현대엠코를 현대엔지니어링에 합병하면서 에너지 분야 건설 프로젝트 수주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태양광에 힘을 쏟으면서 주력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부진한 사업을 떨쳐내고 있다. 신수종 사업인 태양광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는 한화케미칼은 지난해 말 1000억원에 이르는 한화생명 주식을 처분하고, 자회사인 드림파마와 한화L&C 건축자재 부문 매각을 추진 중이다.
'인력 감축'을 통한 구조조정도 진행 중이다. 실적 개선과 시장 대응력 강화를 위한 조치다. 한화생명은 오는 16일까지 20년 이상 근무한 직원 가운데 희망자를 대상으로 전직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사실상 퇴직을 유도하는 것이어서 업계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기폭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올해 대규모 인력 감축설이 나돌던 삼성생명은 임원 15명에 대해서 전보 및 퇴직 조치를 단행했다.
총수 부재를 겪고 있는 SK그룹도 예외는 아니다. SK는 인터넷서비스 사업인 싸이월드를 독립시키고, 인터넷포털인 네이트를 강화하는 등 SK커뮤니케이션즈에 대한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지난해 LG그룹은 자동차부품 사업을 전담하는 VC사업본부를 신설했다. 이로써 LG전자는 기존 4개(HA·AE·HE·MC) 사업본부에서 VC사업본부까지 총 5개 사업본부 체제를 꾸리게 됐다. 또 직면한 위기를 강조하며 이완된 조직 분위기를 추스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신임 수장을 맞은 포스코도 재무구조 개선과 사업구조 재편 등 구조조정 작업에 착수했다. 권오준 회장은 취임식과 주주총회에서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사업은 중단·매각·통합 등 과감하고 신속한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본연의 철강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비핵심 사업 중단·매각·통합 작업에 나섰다.
황창규 신임 회장이 사령탑이 된 KT는 6000명이 넘는 대규모 임직원을 감원할 예정이다.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정유업계에서도 구조조정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동부그룹은 지난해 11월 3조원 규모의 자구계획안을 발표한 이후 동부하이텍, 동부제철 인천공장, 동부발전당진 등을 매물로 내놨다. 유상증자 등 구조조정 과정에서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자사주 매입을 강요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계열사 매각이 더뎌지면서 채권단의 압박 수위는 높아졌고, 인력 구조조정 가능성마저 제기됐다.
재계에서는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인력 감축 태풍이 산업계 전반으로 확대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몸을 떨고 있다. 주요 그룹들이 일제히 긴축경영에 나서면서 예산 감축은 물론 계열사 구조조정에 이어 인력감축 카드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 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것, 그로 인해 기업 실적이 썩 좋아지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는 게 근본적인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굵직굵직한 대기업조차도 재무적인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시장에서 계속 확인되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며 "기업들 입장에서는 실적이 안 좋아지는 것도 문제지만 신수종 사업이라던가, 성장산업에 대비하기 위해 체질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낀 것들이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미래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높다”며 "재계 전체가 고강도 자구계획을 마련해 체질개선 작업을 할 것"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