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부호들)④노역일꾼서 억만장자로, '와하하'의 쭝칭허우
2014-01-27 10:00:00 2014-01-27 10:00:00
◇쭝칭허우 와하하그룹 회장(사진=바이두백과)
 
[뉴스토마토 조윤경기자] '와하하', 만국 공통어인 웃음은 전염성이 있습니다. 남이 웃으면 어느새 따라 웃게 되죠.
 
중국에는 이 같이 강한 전염성과 밝은 이미지를 바탕으로 시장을 석권한 기업이 있습니다. 지역마다 특성이 천차만별인 광대한 중국 소매 시장에서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회사인데요. 바로 중국 최대 음료 기업 와하하(娃哈哈·어린아이의 해맑은 웃음을 의미) 그룹입니다.
 
1986년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작은 학교 매점으로 시작한 와하하는 오늘날 중국인들의 국민 브랜드로 자리잡았습니다. 14만위안의 대출금으로 시작된 빙과류 사업이 23년 만에 300억위안 규모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회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사람이 쭝칭허우(宗慶後) 회장인데요. 마흔을 훌쩍 넘겨 창업을 시작한 그는 중졸 출신 농장 일꾼에서 억만장자로 인생 역전에 성공한 중국의 신화적 인물로 꼽힙니다.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쭝 회장의 보유 재산은 112억달러입니다. 특히 그는 2010년과 2012년에 포브스가 선정한 중국 최대 부호 자리에 올라 재력을 과시했고, 지난해는 '후룬리포트'가 집계하는 중국 부자 순위에서 왕젠린 다롄완다 회장과 순위를 다투기도 했습니다.
 
쭝 회장이 순식간에 부자가 된 비결에는 시대 흐름에 편승해 틈새 시장을 노렸던 그의 사업 전략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와하하 설립 당시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는데요. 그는 하나밖에 없는 자녀들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쓰는 부모들을 공략했습니다. 회사 이름에 걸맞게 중국 최초로 어린이용 건강 음료를 내놓아 예상대로 빅히트를 친 것입니다.
 
'와하하 음료수를 마시면 밥맛이 돌아온다(喝了娃哈哈, 吃飯就是香)'
 
25년 전 와하하가 처음 선보인 광고에 나왔던 말로, 음식을 중시하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당시 유행가처럼 퍼졌던 어구입니다. 20~30대 중국 사람들이라면 오늘날까지도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법한 이 광고는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이후 와하하 어린이용 건강 음료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만큼 불티나게 팔렸고, 불과 4년 만에 매출과 순이익은 각각 4억위안과 7000만위안까지 불어났으니까요.
 
쭝 회장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생산 규모를 더 확대 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칠 수 있다"며 적자에 허덕이던 항저우 통조림 공장을 인수한 것인데요. 당시 통조림 공장 직원수가 와하하보다 무려 15배나 많았기 때문에 이는 바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작은 물고기가 큰 물고기를 잡아먹었다는 거죠.
 
그가 주변의 만류를 무릎 쓰고 부도 위기에 몰린 공장을 사들인 것은 의외로 훌륭한 선택이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던 직원 2200명 중 단 한 명도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았음에도 3개월 만에 회사 실적을 흑자로 돌려놓은 것인데요. 이는 쭝 회장의 경영 능력을 검증한 좋은 기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그는 '농촌을 통해 도시를 포위한다'는 마오쩌둥의 군사전략도 경영에 응용했습니다. 1998년 중국산 콜라인 '페이창 (非常)콜라'를 출시할 때 이미 미국의 '코카콜라'와 '펩시'가 장악하고 있던 대도시 대신 농촌 지역부터 파고드는 전략을 펼친 것입니다.
 
당시 콜라라는 음료수에 익숙하지 않았던 농촌 사람들은 애초부터 페이창콜라로 입맛을 들였고, 이후 도시로의 이주 인구가 많아지면서 와하하의 콜라도 중국 전역으로 확산됐습니다. 순식간에 페이창콜라의 시장 점유율은 15%를 넘어서며 미국산 제품들을 위협했는데요. 더 나아가 2004년에는 와하하가 미국 시장에 페이창콜라를 수출하면서 세계 무대를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딛기도 했습니다.
 
와하하의 성공에는 안정적이고 폭넓은 공급망 역시 한몫 했습니다.
 
쭝 회장은 대리점으로부터 반기별로 보증금을 미리 받아놓고 이 돈에 대한 이자를 은행보다 높게 쳐주는 방식으로 제품을 공급했는데요. 특히 연말에는 판매 수익도 나눠줘 대리점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아줬습니다. 이처럼 그는 윈윈 관계를 만들어 나간 대리점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중국 구석구석 탄탄한 공급망을 구축했습니다.
 
쭝 회장은 외자 활용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타고난 장사꾼임을 증명했습니다.
 
1996년 와하하는 현재 '에비앙' 생산업체로 유명한 프랑스 다농그룹과 제휴를 맺고 11년 동안 39개의 합작회사를 설립했는데요. 이로 인해 표면적으로는 다농이 와하하의 지분 51%를 갖게 됐지만, 쭝 회장은 와하하 상표만은 계속 사용할 것을 고집하며 사실상 경영권을 놓지 않았습니다.
 
"다농이 중국 기업에 의지해 돈을 버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지 그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중국 기업을 손에 넣으려는 외국 기업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이처럼 당당했습니다.
  
이후 와하하가 계약과는 다르게 비합작기업 제품에도 자신들의 브랜드를 사용하면서 다농과 갈등을 빚었지만, 쭝 회장은 토종 브랜드를 보호하려는 이미지를 강화해 오히려 여론의 동정표를 얻었습니다. 중국 기업을 집어삼키려는 거인 골리앗과 맞서 싸운 다윗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한 것이죠.
 
결국 2009년 두 회사의 협력관계는 끝이 났는데요. 다농은 자본과 기술을 쏟아 와하하의 생산 능력만 키워주고 물러난 꼴이 됐고 와하하는 브랜드 이미지가 높아져 이후 승승장구하게 됐습니다.
 
쭝 회장은 "창업은 감각에 크게 의존해야 하는데 나의 감각은 비교적 정확한 편이다"고 종종 이야기 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감각을 크게 믿어서일까요? 현재 3만명에 이르는 직원을 보유한 와하하에는 아직까지도 이사진과 부회장이 없습니다. 쭝 회장이 거의 독자적으로 회사의 모든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인데요. 그가 독재자라는 말을 듣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래도 쭝 회장은 회사 안에서 가족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며 직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와하하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장과도 같다"며 이들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주고 복지를 강화하는데 열정을 쏟고 있으니까요.
 
특히 그는 회사 복지비로 연간 4380만위안을 마련하고 매년 모든 직원들에게 여행을 다녀오라며 3000위안의 경비를 챙겨주기도 합니다. 일벌레인 본인은 정작 마음 놓고 쉬지도 않으면서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쭝 회장은 중국 기업인 중 가장 바쁜 사람으로 통합니다.
 
하루 평균 중국인이 마시는 음료수 개수가 8병 정도라고 하는데요. 그 중 하나에 꼭 포함된다는 와하하 제품을 13억명 중국인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그는 지금 이 순간도 쉬지 않고 동분서주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와하하 제품을 마신 사람들은 모두 즐겁게 웃었으면 좋겠다"며 음료 업계의 웃음 전도사로 나선 쭝칭허우, 그의 성공에는 분명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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