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는 "남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스펙(취업을 위한 기본 요건)이라 대학시절에 취업 걱정은 하지 않았다"면서도 "막상 취업시장에 나가보니 서류통과도 쉽지 않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10월 청년 실업률 6.7%.."내년 채용시장 악화로 더 높아질 것"
취업을 앞둔 청년층들의 '스펙 쌓기' 열풍이 식지 않고 있지만, 정작 많은 스펙을 쌓아도 취업이 되지 않아 백수로 전전하며 빈곤층으로 빠져드는 이른바 '스펙푸어'가 늘고 있다.
청년실업이 사상최악으로 치닫고 있는데다 좁은 경쟁의 구멍을 뚫으려는 취업준비생들의 절박함, 좋은 일자리를 늘리지 않으면서 취업준비생들에게 온갖 스펙을 요구하는 기업들의 채용행태가 뒤섞여 나온 결과다.
취업준비생들은 스펙을 쌓기 위해 외국어 학원에 다니거나 어학연수·유학을 다녀오기도 하고 자격증을 따러 또다시 학원에 나가야하기 때문에 취업하기도 전에 대학 등록금 이외에 큰 돈을 쓰면서 빈곤에 빠져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청년실업률(15~29세)은 지난 2008년 7.2%에서 2009년 8.1%, 2010년 8%를 기록했다. 올들어서는 1~2월 8.5%, 3월 9.5%, 4월 8.7%로 더욱 치솟다가 6~7월 7.6%, 10월 6.7%로 다시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통계청 실업률 지표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어 실제 청년실업률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우기 60대 이상 노령층의 일자리는 매달 수십만개씩 늘고 있지만 20~30대 신규취업자는 늘지 않거나 심지어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의 10월 고용동향을 보면, 50대 신규취업자가 30만명 늘어나는 동안 20대는 0명, 30대는 6만여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에는 경기둔화로 인해 기업들이 신규채용의 문을 더 좁힐 것으로 예상돼, 스펙푸어들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8월 말 500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고용계획을 조사한 결과, 내년에 고용 확대를 계획한 기업의 비중은 16.4%로 올해 30.6%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 인사담당자, "구직자 스펙 매년 높아져"
결국 청년들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직종이나 산업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가운데 소수 양질의 일자리를 놓고 더욱 치열한 경쟁에 임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방편으로 스펙 쌓기에 몰두하고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올 상반기 대졸 신입사원 채용을 진행한 대기업 41곳의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상반기 취업 성공자 취업스펙’에 관해 조사한 결과, 이들의 평균 취업스펙은 ▲ 학점 3.6점(4.5점 만점 기준) ▲ 토익 705점 ▲ 자격증 개수 2.9개로 나타났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그리 높지 않은 스펙이지만 이는 평균적인 수치일 뿐 소위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기업의 구직자 스펙은 높다는 게 취업준비생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금융권을 준비하는 최 모씨(26살)는 "막상 기업설명회에서 기업들은 스펙보다는 지원자들의 인성과 적성을 보고 뽑는다고 말하지만 면접에 가서 보면 지원자 모두 출중한 스펙을 지니고 있다"며 "이들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스펙을 더 높이는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한 은행권의 인사담당자도 "최근 은행에 입행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어학점수인 토익은 900점이 다 넘는다"며 "이러한 점수가 기본이고 금융관련 자격증도 입사지원시 가점이 부과되기 때문에 많이 취득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스펙만 많이 쌓는다고 취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며 "하지만 입사를 지원하는 청년들의 스펙은 매년 높아만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 스펙푸어, "취업준비로 형편 더 어려워져"
문제는 청년들이 더 좋은 스펙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돈을 사용한다는 데 있다.
토익과 토플과 같은 영어학원을 비롯해 직무와 관련된 자격증, 면접을 대비한 스피치 학원 등 적게는 몇 만원에서 많게는 수 10만원에서 많게는 수 천만원을 사용한다.
이러한 돈을 투자해 취업에 성공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명문대 출신인 김모(27살)씨는 "학점관리에 어학점수, 자격증 등 스펙을 높인다고 생각했는데 취업이 쉽지 않았다"며 "그동안 취업을 준비하면서 부모님께 지원 받은 금액만 수 백만원에 달해 지금은 과외를 하면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이어 "알아주는 공기업이나 금융권으로 입사한 친구들도 처음에는 만족했지만 신입사원 연봉삭감으로 수입이 적어 불만이 많다"며 "그래서 회사생활을 하면서 연봉이 높은 회계사나 변호사 준비를 하는 친구들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황수경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미 채용시장에는 상당수 청년들이 누적되어 있다"며 "제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낙인 효과로 인해 향후 더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