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여름, 울릉도와 부산 등 주요 관광지에서 ‘비계 삼겹살’, ‘고가 해삼’ 등이 논란이 되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필자도 한 달 전 친구들과 지방의 단풍 명소를 찾아갔다가 현지 식당에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 SNS로 나쁜 평판이 순식간에 전해지는 시대에도 관광지의 바가지 상행위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관광지의 평판은 그곳에서 생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신중히 관리되어야 할 공유자산이다. K-컬처의 인기에 힘입어 최근 가고 싶은 나라로 떠오른 우리나라 관광 활성화를 위해서는 관광지 평판 관리가 중요하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어장, 목초지, 관개수로 등의 공유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고심해왔다. 공유자산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만 개인의 독점 소유물도 아니기 때문에 사적 이익을 위해 남용되기 쉽다. 현대에는 이런 유형의 공유자산 외에 언론매체가 발달하며 새로운 무형의 공유자산이 중요해졌다. 언론 노출을 통한 관광지의 대중 인지도와 평판 축적은 무형의 공유자산이다. 이런 무형의 공유자산을 마케팅에서는 브랜드 자산이라 한다. 평판에 의한 브랜드 자산은 축적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나쁜 평판에 의해 쉽게 훼손되기도 한다. 관광지의 바가지 상행위는 개별 상인이 단기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다 관광지의 평판을 장기적으로 훼손해 관광지 상인 전체에 손해를 끼친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유형의 공유자산과 마찬가지로 무형의 공유자산도 쉽게 훼손되고 고갈된다. 유형의 공유자산과 달리 무형 공유자산의 축적과 고갈은 눈에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무형의 공유자산은 더 신중히 관리되어야 한다.
지금부터 350년 전에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인간본성론』에서 공유자산 관리의 딜레마를 제기했다. “두 이웃은 자신들의 공동자산인 목초지에 고인 물을 배수하는 협력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아는 것은 쉬워 각자 자기 일을 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직접적 결과를 틀림없이 자각하기 때문에 동의가 가능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수고하지 않고 비용도 부담하지 않을 구실을 찾고, 그 부담을 몽땅 다른 사람에게 지우려 들 것이다.”
흄은 인간은 본성상 시간과 공간적으로 먼 이익보다는 눈앞의 이익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어서 멀리 보면 손해인 줄 알지만 자신이 즉각 누릴 수 있는 이익을 뿌리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공유자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방치하면 모든 공유자산은 사적으로 남용되어 결국 고갈될 운명에 처하게 된다. 후대의 경제학자들은 이를 ‘공유자산의 비극’이라고 불렀다. 특정 개인이 이익을 취하면서 전체 공동체가 손해를 보는 구조다. 현대 경제학자들은 공유자산을 사유화하거나 국가에서 관리하는 방법으로 공유지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유자산의 비극을 연구해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엘리너 오스트롬 교수는 사유화나 국가에 맡기지 않고도 공동체가 자율적으로 공유자산을 성공적으로 관리한 다수의 사례들을 발견했다. 오스트롬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종합해 성공적 공유자산 관리를 위한 제도 설계 원칙들을 밝혔다(오스트롬, 『공유의 비극을 넘어』). 그것은 “상호 감시”, “점진적 처벌”, “자원 사용과 비용의 비례성”, “명확한 경계 설정”, “자치 조직” 등 8가지로, 바가지 상행위를 근절해 관광지 평판(무형의 공유자산) 관리하는 데도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다.
오스트롬이 제시한 상호 감시와 처벌, 사용과 비용의 비례성은 오래전 흄의 처방을 재발견한 것이다. 흄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은 바꿀 수 없다는 전제하에 공유지 비극의 처방을 제시했다. 이는 공유자산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가까운 이익이 되도록 하고, 공유자산을 해치는 것이 자신의 먼 이익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공익 추구가 사익 추구와 모순되지 않게 인센티브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다. 상호 감시와 처벌은 평판을 훼손시키는 바가지 상행위를 상인회에서 자율적으로 감시하고 처벌하는 것이다. 공유자산 침해를 그들의 먼 이익이 되게 하는 것은 바가지 상행위를 감시해 적발된 상인을 처벌함으로써 그들의 이기적 행위가 즉각적 손실이 되게 하는 것이다. 오스트롬은 가혹한 처벌보다 즉각적 처벌이 효과적이며, 처벌도 점진적으로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이 효과적이라 말한다. 사용과 비용의 비례성은 관광지의 좋은 평판을 유지해 공유자산의 가치를 높인 우수 상인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관광지 홍보 시 해당 상점을 소개하거나, 상인회비를 면제해주는 것 등이다. 이는 공공이익을 지키는 것, 즉 관광지 평판을 높이는 것이 그 상인의 가까운 이익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부산 자갈치시장 일대의 어패류조합, 신동아시장, 자갈밭상인회, 외식업지부 등 4개 상인회와 구청 공무원 등이 지난 9월 부산 중구 유라리광장에서 바가지 요금 근절을 위한 자정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사진=뉴시스)
명확한 경계 설정의 원칙은 관광객에게 지역 상인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최근 광장시장에서는 노점 상인회와 일반 점포 상인회와 분쟁이 있었다. 광장시장의 바가지 상행위는 노점상들이 저지른 것인데 일반 점포 상인들이 손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상인회를 등록해 회원들에게 인증마크를 사용하게 하면 비회원 상인과 회원 상인을 구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인들 간의 운명공동체 의식이다. 가능하면 관광지 브랜드를 상표 등록하고 규칙 위반 시 브랜드 쓰지 못하게 해야 한다. 자치 조직의 원칙은 외부의 강제력보다 상인들이 자율적으로 만든 의사결정에 따른 규칙이 준수율이 더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방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 스스로 자율 조직을 구성해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관광공사에서는 관광 명소에서 성공한 세계적 브랜드 자산관리 사례들(예를 들면 일본의 료칸)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측면 지원이 필요하다.
흄과 오스트롬은 공유자산의 비극을 통해 인간 본성의 취약점을 지적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들은 공공이익의 준수가 자기이익이 되는 인센티브나 제도를 설계해 인간 본성의 취약점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에도 공익과 사익이 충돌하는 환경보호, 기후위기, 문화재 관리(예를 들면 종묘 앞 상권 개발)에 흄과 오스트롬의 접근법을 적용해볼 수 있다.
김근배 숭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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