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주현 기자] 법관이 각급 선거관리위원장을 겸임하는 관행이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계기로 다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중앙선관위원장뿐만 아니라 각 지역별 선관위원장까지 거의 대부분 법관이 비상임으로 맡는 구조가 지속된 탓에 선거 관리 사고가 발생해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입니다.
허철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이 지난 3일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항의 방문한 장동혁 국민의힘 상임선대위원장의 면담 요구를 보고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3일 제9회 지방선거 본투표에선 서울 송파구 등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 종료 시각인 오후 6시를 넘겨서까지 유권자들이 대기표를 받고 기다리는 등 극심한 혼선이 빚어졌습니다.
결국 허철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그날 밤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관위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그런데 허 사무총장은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이 아니라 사무총장이 대신 사과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위원장 사과 부분에 대해선 경황이 없어 생각해 보지 못했다"고 답했습니다.
중앙선관위원장이 아닌 사무총장이 사고 수습의 전면에 선 데 이어, 송파구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관할한 서울시선관위의 대응을 두고도 책임 있는 설명이 부족했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이번 사태가 중앙선관위만의 문제가 아니라 각급 선관위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비상임 법관 위원장 체제' 전반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헌법과 법률엔 대법관이나 판사가 반드시 선관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명문 조항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중앙선관위원장은 선거 중립을 이유로 대법관 또는 대법관 출신이, 시·도 선관위원장은 지방법원장이, 구·시·군 선관위원장은 지원장이나 지방법원 부장판사 등이 맡는 관행이 지속됐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대부분 비상임이라는 점입니다. 선거관리위원회법은 '각급 선관위원장이 위원회를 대표하고 사무를 통할한다'고 규정합니다. 그러나 실제 선거 준비와 현장 대응은 상임위원과 사무처·사무국 중심으로 이뤄지는 구조입니다. 법적 책임자와 실무 책임자가 분리되어 있다 보니, 투표용지 부족 등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땐 책임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천경득 변호사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이 사과한 것 자체가 현재 선관위의 가장 큰 문제점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며 "법관이 비상임으로 선관위원장을 겸직하는 구조가 아니라, 상임 위원장이 실질적 권한을 가져야 한다. 사고가 나면 책임지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김선택 고려대 로스쿨 헌법학 교수도 "전국 단위 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 문제가 발생했다면 중앙선관위원장도 도의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2022년 20대 대선 투표 땐 코로나19 확진·격리자 사전투표 부실 관리,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이 제기됐고, 위원장 책임론이 거세게 불거진 바 있습니다. 이에 노정희 중앙선관위원장은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정주현 기자 giveh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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