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한화그룹이 폴란드 잠수함 사업에 이어 루마니아 차세대 보병전투장갑차(IFV) 수주전에서도 고배를 마시면서 유럽 방산 시장의 ‘블록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경쟁사보다 높은 현지화율과 낮은 가격을 제시했음에도 유럽 업체에 밀리면서, 가격 경쟁력과 현지 생산 확대만으로는 장벽을 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2023년 호주에서 시연 중인 한화 AS21 레드백 장갑차 모습.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1일 외신과 업계 등에 따르면 루마니아 국방부는 최근 노후화한 소련제 MLI-84 궤도형 보병전투차량을 대체할 차세대 보병전투장갑차(IFV)로 독일 라인메탈의 KF41 링스를 최종 선정했습니다. 사업 규모는 약 34억유로(약 5조9700억원) 수준입니다.
디펜스 루마니아 등 외신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AS21 레드백을 내세웠습니다. 회사는 루마니아에 장갑차 298대를 총 28억유로(약 4조9000억원)에 공급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루마니아 측 예산보다 낮은 금액을 제시한 데다, 현지화율도 초기 72.7%에서 최대 8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면 라인메탈은 KF41 링스 298대를 총 33억3700만유로(약 5조8000억원)에 공급하기로 루마니아 정부와 합의했습니다. 이는 대당 약 1120만유로(약 195억원)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제시한 약 950만유로(약 166억원)보다 높습니다. 현지화율 역시 약 40% 수준으로 알려졌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더 높은 현지화율과 낮은 대당 가격을 제시했음에도 수주전에서 밀린 셈입니다.
이에 국내 방산업계의 고민도 깊어질 전망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각국이 역내 방산 생태계 강화에 무게를 두면서 ‘바이 유러피언(유럽산 제품과 무기 우선 구매)’ 기조가 강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폴란드의 잠수함 3척 도입 사업인 ‘오르카 프로젝트’에서 한화오션의 수주 가능성이 높았지만, 최종적으로 스웨덴 사브(Saab)에 밀린 바 있습니다. 발트해의 낮은 수심 등 작전 환경에 특화된 유럽 잠수함이 유리한 평가를 받았지만, 영국 정부가 자국 방산 기업 밥콕의 폴란드 사업 참여를 염두에 두고 로비를 벌여 사브를 지원했다는 정황도 나온 만큼, 해당 기조가 수주전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입니다.
유럽연합(EU)이 지난해 도입한 SAFE 기금 역시 유럽 방산 블록화를 뒷받침하는 요인으로 꼽힙니다. EU는 지난해 1500억유로(약 263조원) 규모의 재무장용 금융 지원 수단인 SAFE 기금을 도입했습니다. SAFE 기금은 EU 회원국의 방산 조달을 장기 저리 대출 형태로 지원하는 제도로, 역내 방산 기술·산업 기반 강화를 주요 목표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라인메탈 역시 이번에 공급하는 차량 가운데 232대를 SAFE 기금을 통해 생산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가격 경쟁력이나 현지화율만으로 유럽 방산 시장을 공략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며 “현지 기업과의 공동 생산, 정비·후속지원 체계 구축 등 장기적인 파트너십 전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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