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위기의 디벨로퍼)③보증의 시대 끝…자기자본 20% 생존게임
시공사 보증 중심 PF 구조 흔들…기준은 '자기자본'으로 전환
에쿼티 20% 도입 본격화…중견 시행사 진입장벽 높아져
금융 규제에 수요 부진까지…개발시장 위축 우려 확대
2026-04-24 06:00:00 2026-04-24 06:00:00
이 기사는 2026년 04월 22일 10:51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한때 적은 자본으로 도시를 설계하던 디벨로퍼(시행사)는 이제 시장 불안이 닥치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축이 됐다. 저금리와 분양 호황기에는 자기자본 3~5%만으로도 수천억원대 사업을 굴리는 '효율의 모델'로 통했다. 그러나 시장이 꺾이자 이 방식은 곧바로 취약성으로 돌아왔다. 금리 상승과 공사비 급등, 분양 침체가 한꺼번에 덮친 데다 대출 규제, 분양가 통제, 인허가 지연 등 정책 변수까지 겹치면서 사업 자체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자금줄은 막히고 일정은 밀리며 수익성은 불확실해진 흐름이다. 이에 <IB토마토>는 연명 단계에 들어선 디벨로퍼들의 현주소를 짚고, 왜 이들의 사업 방식이 침체기에 가장 먼저 균열을 드러내는지 살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김소윤 기자] 신탁사·시공사의 책임준공과 채무보증에 기대던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작동 방식이 흔들리고 있다. 금융당국이 '자기자본 20%'를 새로운 기준으로 제시하면서, 자기자본 5% 안팎으로 사업을 확장해 온 기존 디벨로퍼 모델은 한계에 직면한 모습이다. 이로 인해 중견 시행사들은 자본 부담 속에 사업 선별에 나섰고, 금융지주·대기업 계열은 리츠 등을 앞세워 개발 시장으로 빠르게 확장할 것이란 이야기가 오간다. 즉 PF 기준이 '보증'에서 '자기자본'으로 이동하면서, 시장의 주도권 역시 자본력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이다.
 
대치동 엠디엠타워 (사진=엠디엠)
 
PF '자기자본 20%' 룰…대출 기준 전면 재설계
 
22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PF의 기준을 '자기자본 20%'로 재설정키로 했는데, 이는 PF 대출과 토지담보대출, 채무보증을 포함한 전체 익스포저(위험 노출도)에서 자기자본비율이 20%에 못 미치면 위험가중치와 충당금을 높이고, 저축은행·상호금융 등 일부 업권은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대출 취급 자체를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업계에서는 일괄적인 '자기자본 20%' 기준이 PF 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시행사들이 그동안 자기자본을 최소한만 투입한 채 외부 차입과 보증에 의존해 사업을 확장해온 고레버리지 모델에 기반해 왔기 때문이다.
 
금융당국도 이 같은 점을 고려해 제도 도입 속도와 적용 범위를 일부 조정했다. 1년간 준비기간을 거쳐 오는 2027년부터 신규 취급분에 적용하되, 자기자본비율 기준은 5%에서 20%까지 4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상향하는 방식이다. 또 공적보증이 적용된 사업이나 LH(한국토지주택공사) 시행 사업 등은 예외를 인정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부동산 PF 사업의 자기자본비율 확대를 통해 사업 방식을 개선하고, 생산적 금융 관점에서 건전성 규제 체계를 확립하려는 취지에는 금융권과 건설업계도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현재 국내 시행사의 자기자본 수준과 부동산 경기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제도 변화가 PF 사업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와 건의도 함께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표=금융위원회)
 
금융지주·대기업 유리한 구조…PF 권력 이동
 
결과적으로 PF 시장의 기준은 '보증'에서 '자기자본'으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해당 제도로 인해 앞으로 시공사 보증과 신탁 책임에 기대 자기자본 3~5%로 사업을 확장하던 고레버리지 모델은 제도적으로 설 자리가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총사업비의 일정 수준을 자기자본으로 충당할 수 있는 중대형 디벨로퍼와 금융지주 계열 중심으로 시장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결국 '자기자본 20%' 기준은 디벨로퍼 간 격차를 가르는 분기점으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동안 자기자본 5% 안팎에 시공사 보증을 결합해 다수 사업을 병행하던 중견 시행사들은 동일한 방식의 확장 전략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당 투입해야 하는 에쿼티(자기자본)가 늘어나면서 동시 추진 가능한 사업 수는 줄고, 분양 리스크가 높은 사업장은 초기 진입 자체가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반면 충분한 자본력과 운용 역량을 갖춘 금융지주·대기업 계열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설 것으로 보인다. 은행·증권·리츠 AMC(자산관리회사) 등을 그룹 내에서 연계할 수 있는 방식으로, 대출을 넘어 시행과 자산운용을 함께 수행하는 형태로 사업 모델을 확장할 여지가 커진다. 개발과 운영을 결합한 사업 방식 역시 자본과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갖춘 사업자에게는 오히려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금융지주 계열 운용사와 부동산신탁사는 단순 자산관리 회사를 넘어 사실상 디벨로퍼 역할을 수행하는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신한금융이 리츠 AMC를 앞세워 상업용 부동산의 개발과 운영을 동시에 가져가는 구조를 구축하고, KB·하나·농협 등도 계열 신탁사와 운용사를 통해 토지 확보부터 PF, 리츠 상장까지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내재화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금융·수요 이중 규제…디벨로퍼 압박 심화
 
디벨로퍼 업계는 최근 PF 시장 위축의 근본 원인으로 수요 억제 정책과 금융 규제가 맞물린 점을 지목한다. 다주택자 규제와 임대사업자 규제 등으로 실수요와 투자 수요가 위축되면서 거래 자체가 줄어든 상황에서, PF 자기자본비율 규제까지 더해지며 자금 조달 여건이 더욱 악화됐다는 지적이다.
 
이로 인해 시행사들은 사업의 핵심인 회수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토지 매각이나 분양을 통해 자금을 회수해야 다음 사업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거래가 막히면서 기존 사업의 현금 회수 지연이 신규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자본비율 규제까지 강화될 경우 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특히 자기자본 20% 기준이 본격 적용되면, 자금 여력이 제한적인 중견 시행사들은 신규 사업 진입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다.
 
중견 시행사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지금 시장에서 가장 시급한 건 자기자본 20% 규제 자체가 아니라, 보유한 사업장을 정리하고 엑시트 할 수 있는 환경"이라며 "다주택자·임대사업자 규제가 유지되면서 수요가 서울 핵심지로만 쏠리고, 지방이나 외곽 사업지는 분양가를 올릴 수도, 토지를 제값에 팔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태에서 PF 이자와 원가만 계속 쌓이니, 자기자본을 늘리는 문제보다 기존 사업장부터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정리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먼저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PF 건전성 강화라는 방향 자체는 공감하지만, 수요를 막아둔 상태에서 금융 규제만 강화하면 시장은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지방이나 비규제지역에 대해서는 수요 규제를 일부 완화하거나 임대사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자금이 돌 수 있는 출구를 함께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개발협회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자기자본 20%를 단기간에 맞추는 것은 현재 시행사 구조상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며 "급진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업계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전달해왔다"고 설명했다. 또 "업계 전반적으로 부담이 큰 정책이라는 인식이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된 상황"이라며 "자기자본 확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보완책이 함께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소윤 기자 syoon13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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