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백겸 기자] 대법원이 16일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 200여명을 직접 고용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지난 2022년 포스코에 대한 불법파견을 인정한 대법원의 판단을 재확인한 겁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나오기 전 포스코는 하청 노동자 7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법적 리스크를 회피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이 계획이 기존 정규직과 차별을 두는 '무늬만 정규직'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10차까지 이어진 집단 소송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입니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이 16일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전국금속노동조합)
대법원 "작업표준서와 이메일 등은 실질적 지휘·명령"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이날 오전 포스코 포항·광양제철소에서 사내하청으로 일하던 노동자 223명이 제기한 2건의 근로자지위확인(불법파견) 소송 상고심에서 215명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앞서 이들은 포스코가 직접 수행하던 업무를 외주화한 뒤에도 실질적으로는 원청의 지휘·명령 아래 일해왔다며, 도급이 아닌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포스코의 사내하청이 도급 형태가 아닌 사실상 파견 형태로 이뤄졌으니,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라 2년 이상 일한 하청 노동자들을 포스코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원청의 생산 공정에 편입돼 실질적인 지휘·명령을 받았는지 여부였습니다. 대법원은 선박 접안, 원료 하역·운반, 래들 관리, 롤 정비 등 제철소 생산공정과 밀접하게 연결된 업무에 대해서는 근로자 파견 관계를 인정했습니다.
특히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포스코의 작업표준서와 기술 기준 등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고, 전산관리시스템(MES)과 이메일 등을 통해 작업 내용·방법·순서에 관한 지시를 받아온 점 등을 근거로 포스코의 지휘·명령 계통에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 원심을 받아들였습니다. 또 해당 업무가 포스코의 철강 생산공정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고, 업무 수행에 필요한 시설 역시 원청이 소유하고 있다는 점도 노동자들이 최종 승소하는 판단의 근거가 됐습니다.
이보다 앞선 지난 2022년 7월 대법원이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 55명에 대한 불법파견소송에서 "하청 노동자들이 포스코로부터 지시받아 작업을 수행했고, 전달된 작업 정보는 사실상 구속력 있는 업무상 지시"라고 판단하고 불법파견을 인정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다만 대법원은 이번 소송에 참여한 하청 노동자 가운데 냉연 제품 포장 업무를 수행한 7명에 대해서는 "포스코로부터 지휘·명령을 받는 근로자 파견 관계에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습니다. 또 나머지 1명은 정년이 지났기 때문에 소를 각하했습니다.
노조 "포스코 '7000명 직고용' 계획은 소송 취하용 꼼수"
앞으로도 포스코 불법파견 소송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금속노조와 포스코사내하청 광양·포항지회는 지난 2011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10차에 걸쳐 불법파견 소송을 제기해 왔습니다. 1·2차 소송은 지난 2022년 대법원 판결로 불법파견이 인정됐고, 이번 대법원 판결은 3·4차 소송에 해당합니다. 5~7차 소송은 2심까지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상태입니다. 8~10차 소송은 아직 1심이 진행 중입니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10차에 이르는 집단 소송엔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 2600여명이 참여했고, 이 가운데 현재 770여명의 노동자가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두 차례나 포스코의 불법파견을 인정한 만큼 연이어 같은 기조의 선고가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이와 관련해 포스코는 지난 8일 협력사 직원 7000명을 직접 고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잇따른 패소에 따른 법적 비용과 임금 차액 청구 등 법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먼저 직고용 카드를 낸 겁니다. 하지만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이날 대법원 앞 기자회견에서 "노조와 상의 없는 일방적인 발표이며, 기존 정규직의 절반 수준 임금을 제시하는 꼼수"라고 주장했습니다.
노조는 포스코가 이미 소송에서 이긴 노동자들을 별도 직군으로 분리해 차별 대우한 전례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노조에 따르면, 포스코는 지난 2022년 불법파견 인정 판결을 받은 55명의 하청 노동자들을 기존 정규직과 다른 별도의 직군으로 구분하고 임금 등 노동조건을 차별했습니다. 이번 포스코의 정규직 전환도 이와 같은 방법을 확장할 뿐이라는 겁니다.
포스코의 사내하청은 2·3차까지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이지만 1차 사내하청만 정규직 전환 대상에 포함했다는 점, 정규직 전환을 빌미로 남은 불법파견 소송을 취하하거나 임금청구권 등 권리를 포기하라는 강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지적됐습니다.
김백겸 기자 kb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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