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규 연구위원·AI교육팀장(EBS) / 미디어학 박사
달걀 한 알. 무게 50그램, 껍데기 두께 0.3밀리미터. 이것을 부수지 않고 집어 드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지금 전 세계 수많은 로봇 연구자들이 바로 이 문제에 매달려 있다.
2026년 3월, 미국 텍사스대학교 오스틴(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상치치(Siqi Shang)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 <FORTE: 유연한 손가락에서의 촉각 힘 및 미끄러짐 감지를 통한 섬세한 조작(FORTE: Tactile Force and Slip Sensing on Compliant Fingers for Delicate Manipulation)>이 로봇 공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FORTE'는 부서지기 쉬운 물체를 촉각으로 잡는다는 뜻의 영문 머리글자(Fragile Object Grasping with Tactile Sensing)를 따서 붙인 이름으로, 깨지거나 으스러지기 쉬운 물체를 로봇이 안전하게 집을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다.
연구팀은 감자칩, 나무딸기, 잼 병, 당구공, 사과 등 31종의 물체를 대상으로 310회 실험을 진행했다. FORTE의 전체 성공률은 91.9%였다. 비교를 위해 두 가지 방식도 함께 시험했다. 하나는 물체를 감지하는 즉시 손가락을 끝까지 닫아버리는 방식으로, 힘 조절이 없다 보니 나무딸기나 포도처럼 물렁한 물체들이 짓눌려 망가졌고 성공률은 60%에 그쳤다. 다른 하나는 처음 쥔 힘을 그대로 유지하는 방식으로, 잼 병이나 당구공처럼 표면이 매끄러운 물체들이 대부분 손에서 빠져나가 성공률은 52.6%였다. FORTE는 특히 나무딸기나 감자칩처럼 으스러지기 쉬운 물체에서 성공률 98.6%를 기록했고, 물체가 미끄러지는 순간을 잘못 감지한 경우는 310회 중 단 한 건도 없었다.
이 기술의 작동 원리는 단순하다. 로봇에 달린 집게 손, 즉 그리퍼(gripper)의 손가락은 3D 프린팅으로 만들어진다. 이 손가락 안에는 가느다란 공기 통로가 내장돼 있다. 물체를 잡으면 손가락이 휘면서 공기 통로의 압력이 변하고, 이 변화를 실시간으로 읽어 얼마나 세게 쥐고 있는지, 물체가 미끄러지려 하는지를 감지한다. 미끄러짐이 감지되는 순간, 그리퍼는 스스로 힘을 조금 더 준다. 복잡한 외부 센서 없이 손가락 구조 자체가 감각 기관이 되는 방식이다. 논문은 "지금 로봇은 빨래 개기나 식기 넣기 같은 큰 동작은 꽤 잘 해낸다. 하지만 안경을 집어 드는 것처럼 섬세하고 부서지기 쉬운 물체를 다루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고 지적하며, 촉각 감지야말로 이 간극을 메울 핵심 기술임을 강조한다.
피지컬 AI가 현실에서 작동하려면 세 가지 감각이 필요하다. 보는 것(눈), 듣는 것(귀), 만지는 것(손)이다. 카메라와 마이크, 라이다(LiDAR) 센서를 통해 주변을 지각하는 능력, 즉 로봇의 눈과 귀에 해당하는 기술은 이미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반면 로봇의 손, 즉 물체를 실제로 집고 다루는 능력을 구현하는 일은 오랫동안 가장 어려운 과제로 여겨져 왔다.
왜 로봇 손으로 물체를 섬세하게 잡는 것이 이토록 어려울까. 인간의 손가락 끝 1제곱센티미터 안에는 수백 개의 촉각 신경섬유가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손끝이 무언가에 닿는 순간 이 신경들이 압력과 미끄러짐, 온도를 동시에 읽어 뇌로 전달한다. 이 정밀한 감각 구조를 실리콘과 금속으로 재현하는 일은 쉽지 않다. 눈으로 물체 위치를 파악해도, 막상 집는 순간 촉각 없이는 실패한다. 너무 세게 잡으면 달걀이 깨지고, 너무 약하게 잡으면 미끄러진다. 이 미세한 힘 조절이야말로 피지컬 AI가 넘어야 할 핵심 과제다.
이 문제를 한발 앞서 파고든 연구가 있다. 지난해 6월 9일, 권위 있는 AI 학술지 '네이처 머신 인텔리전스(Nature Machine Intelligence)'에 중국 베이징대학교 인공지능연구소 자오즈항(Zhao Zihang) 연구팀이 발표한 'F-TAC 핸드'다. 이 로봇 손은 손 표면적의 70%를 덮는 17개의 촉각 센서를 탑재했다. 각 센서는 내부 카메라로 탄성 소재의 미세한 변형을 읽어 접촉 상태를 파악하는 방식으로, 0.1밀리미터 간격의 접촉점까지 구별해낼 수 있다. 손가락 끝만이 아니라 손바닥과 손가락 마디 전체로 느끼는 구조다. 60가지 물체 조합으로 600회 실험한 결과, 촉각 정보를 활용했을 때 그렇지 않은 방식보다 물체를 안정적으로 집는 성공률이 뚜렷하게 높았다. 논문은 "풍부한 촉각 구현이 고도의 로봇 지능 발달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결론 내린다.
이처럼 로봇 연구의 최전선에서는 '느끼는 손'을 만드는 일이 핵심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 보고 듣는 능력은 이미 갖춰지고 있지만, 만지는 능력 없이는 로봇이 우리의 일상 속으로 온전히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달걀을 깨지 않고 집고, 미끄러운 유리컵을 안전하게 옮기고, 과일을 상하지 않게 다루는 것. 이 평범해 보이는 동작들이 로봇에게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며, 지금 전 세계 연구자들이 촉각 기술에 집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까. 로봇이 어떤 감각으로 세상을 읽는지, 어떤 상황에서 잘 작동하고 어떤 상황에서 실패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새로운 AI 리터러시의 첫걸음이다. 예컨대 촉각 센서가 없는 로봇에게 달걀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 표면이 매끄러운 물체는 로봇이 미끄러짐을 감지하지 못하면 쥐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 로봇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로봇이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 이런 구체적인 이해가 쌓일 때, 우리는 로봇의 형태를 띤 피지컬 AI를 단순히 신기한 기계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쓰임새와 한계를 가늠하며 활용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손의 촉각 없이는 로봇이 달걀 하나 온전히 집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처럼, 피지컬 AI의 작동 원리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이 기술을 활용하는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기술을 능숙하게 부리는 것은 결국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최홍규 연구위원·AI교육팀장(EBS) / 미디어학 박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충범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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