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예슬 기자] CJ제일제당과 대한제분, 사조동아원 등 제분사 7곳이 5년간 6조원 규모의 밀가루 가격을 담합한 걸로 드러났습니다. 검찰은 6개 제분사 대표이사를 포함해 고위 임직원 20명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2일 재판에 넘겼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이날 오전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서민경제 교란사범 집중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CJ제일제당·대한제분·사조동아원·삼양사·대선제분·삼화제분·한탑 등 제분사 7곳은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서로 짜고 국내 밀가루 가격의 변동 여부, 변동 폭, 시기 등을 담합해 왔습니다. 시장점유율 상위 3개사(CJ제일제당·대한제분·사조동아원)가 먼저 가격을 정하면 하위 4개사가 뒤따르는 방식이었습니다.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나희석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가 '서민경제 교란사범 집중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들은 공정거래위원회에 담합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실수요 업체(밀가루 구매 업체인 제과사 등)에 서로 다른 가격을 제시한 뒤, 인상폭을 조정하며 동일한 가격을 맞췄습니다. 특히 누가 먼저 가격 인상을 통보할 지는 일종의 무작위 추첨 방식인 '사다리 타기'를 한 걸로 드러났습니다. 먼저 가격 인상에 나서는 경우, 고객사의 눈총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모든 제분업체가 꺼려했던 탓입니다.
담합 법행이 벌어지는 동안 밀가루 가격은 최고 42.4%(2023년 1월 기준) 폭등했습니다. 그 결과 2020년부터 2025년 9월까지 밀가루 소비자물가지수는 36.12%나 올랐습니다.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17.06%)의 두 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검찰이 추정한 담합 규모는 5조9913억에 달합니다. 검찰은 이들이 담합으로 약 8986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짬짜미에 가담한 6곳의 제분사 법인 대표이사를 포함해 임직원 14명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단, 담합 사실을 자진신고한 CJ제일제당은 리니언시(Leniency, 담합행위를 한 기업이 자진신고를 할 경우 처벌을 경감하거나 면제하는 제도)가 적용돼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대검찰청 예규 '카르텔 사건 형벌감면 및 수사절차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할 시점에 필요한 증거를 제공해 수사에 협조한 이가 1순위 형벌감면 신청자로 선정될 경우엔 기소가 면제됩니다.
2024년 7월5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설탕 상품이 진열돼 있다. (사진=뉴시스)
검찰은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국민 생활필수품 담합 사건을 집중 수사해 왔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9월3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2023년을 기점으로 식료품 물가가 오르고 있는 것을 지적하며 "담합이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며 "물가로 인한 서민 고통을 줄여야 한다"고 말한 데 따른 겁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4일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도 "물가안정이 곧 민생안정"이라며 "부당하게 담합해 물가를 올린 사례는 없는지, 또 시장의 독점력을 활용해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는 사례는 없는지 철저하게 점검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검찰은 발 빠르게 수사에 착수, 설탕·전기 업체의 담합 사실도 함께 적발해 재판에 넘겼습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설탕시장의 90%를 과점하는 제당 3사(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는 2021년 2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3조2715억원 상당의 담합을 저질렀습니다. 이로 인해 설탕 가격은 짬짜미 전과 비교해 최대 66.7% 인상됐습니다. 검찰은 CJ제일제당과 삼양사 임원 2명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 11명을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설탕 가격을 인하한 부분도 담합으로 봤다"며 "원당(元糖) 가격이 오른다는 이유로 가격을 엄청 올려놓고, 원당 가격이 내리는데도 가격을 내리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원당은 비정제 상태의 당 원료로, 설탕의 주재료입니다.
이 외에도 검찰은 국내 10개 법인이 한국전력공사에서 발주한 가스절연개폐장치 입찰을 담합한 사건을 수사해 관련된 업체와 임직원 19명을 구속했습니다. 이들의 담합 행위는 2015년 3월부터 2022년 9월까지 7년6개월 간 진행됐고, 담합 규모 6776억 원으로 추정됩니다.
담합 비리 근절을 위해 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검찰 관계자는 "법인에 대한 과징금 또는 벌금 처분만으로 담합을 실제 행하는 소속 구성원인 개인들에게 위하효과를 주지 못한다"며 "법 집행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실제 범행을 실행한 개인에 대한 형사처벌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공정거래법상 담합 등 부당한 공동행위를 한 이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을 받습니다. 반면 미국에서는 담합에 가담한 개인에게 징역 10년 이하 또는 100만달러 이하 벌금을 부과합니다.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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