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오년 붉은 말의 해를 맞이해 말 달리듯 힘차게 새해를 시작하라는 덕담이 오고 갑니다. 하지만 신년 기분이 찝찝하기만 합니다. 새해 벽두부터 정치인들의 갑질과 비리에 관한 뉴스가 온통 세상을 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논란의 주인공은 한창 서슬이 시퍼런 이재명정부의 장관 후보자와 여당인 민주당의 국회의원들입니다. 각기 다른 사례들인데도 공통적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가깝게 일한 보좌진에 대한 갑질이 심합니다.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었던 재선 국회의원은 인사청문회에서 보좌진을 하인 부리듯이 한 사실이 드러나 현역 의원 최초로 장관직에서 낙마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재명정부가 새로 만든 기획예산처의 초대 장관 후보자였던 인물은 국회의원 시절 인턴 직원을 야단치는 통화 녹취록이 공개되었는데 막말과 고함은 경악 그 자체입니다. 아마 새해 첫날에 이 녹음 파일을 듣고 신년 기분을 잡친 사람이 많았을 겁니다. 집권 여당의 전 원내 대표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3선 국회의원은 특이하게 부인의 갑질에 원한을 품은 보좌관들의 제보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둘째로, 자녀 사랑이 유별납니다. 여당의 전 원내 대표는 자녀를 지역구 소재 대학에 편입시키거나 상임위 관할 기관에 취업시키는 데 직접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였던 인물의 아들 3명은 비상장 가족회사의 주식을 증여받아 수십억 원어치 보유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돈에 대한 욕심이 남다릅니다. 공천헌금으로 1억원을 받은 국회의원은 이 돈을 본인의 전세자금으로 썼다고 합니다. 여당의 전 원내 대표는 그의 부인이 지역구 구의회 부의장의 업무 추진비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부의장의 법인카드로 집 근처 동네 식당에 10만원 단위로 선결제해 가족끼리 밥 먹는 데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참, 자기 집 전세금 내고 가족이 밥 먹는 것까지 남의 돈을 써야 하는지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돈에 대한 압권은 3선 의원 출신인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였던 인물입니다. 영종도 땅 투기와 강남 아파트 청약으로 막대한 차익을 얻었습니다. 강남 요지의 재건축 아파트는 결혼 상태였던 장남을 미혼으로 위장하고 청약 가점을 높여 당첨되었다고 합니다. 부정 청약은 다른 사람이 가져갈 아파트를 가로챈 행위로 이미 거주한 지 오래되어 청약을 철회할 수는 없어도 당시에 차점으로 떨어진 청약자에게 손해배상할 책임은 남아 있습니다.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한 공직자에게 나라의 곳간을 맡겨도 되는지 심히 불안합니다.
뭐 권력형 비리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언제나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겁니다. 그러나 새해 들어 터진 사건들을 보면 한없이 욕심을 부린 것이 특이합니다.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아래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가족은 끔찍이 챙기며 크건 작건 돈을 탐하는 모습이 추잡하기만 합니다. 결국, 모든 것을 가지려는 탐욕이 도를 지나쳐 한순간에 망가지고 몰락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욕심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욕심 없이 사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정치인이나 공무원이라고 청빈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권력과 자리를 유지하는 데는 비용이 들고 자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도껏 해야 합니다. 욕심을 부려도 절제하는 미덕이 필요합니다.
과욕을 부리면 망한다는 상징인 계영배를 정치인들에게 설날 선물로 보내면 어떨까. (이미지=챗GPT 생성)
이런 점에서 ‘계영배’가 생각납니다. 계영배(戒盈杯)는 “가득 차 흘러 넘침을 경계하는 잔”을 뜻합니다. 여느 잔과 같은 모양이나 가운데에 속이 빈 기둥이 있고 잔 바닥에 구멍이 나 있습니다. 물이 가득 차면 압력 차이로 관을 통해 밑의 구멍으로 전부 빨려 나갑니다. 잔의 7부까지만 담아야 하고 그 이상을 부으면 모두 쏟아져 나오는 겁니다.
계영배는 넘치면 다 잃는다는 교훈을 깨우쳐줍니다. 옛 선현들은 계영배를 넘치는 것이 모자람만 못하다는 ’과유불급’을 일깨워주는 잔이라 여겼습니다. 조선시대 선비와 상인은 계영배를 옆에 두고 과욕을 부리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렸다고 합니다. 북핵 6차 6자 회담에서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수석대표가 과다한 요구를 고집하는 북한 측을 설득하기 위해 계영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하네요.
요즘 우리는 절제의 미덕을 까맣게 잊고 삽니다. 어느 정도 선에서 멈추지 않고 끝없이 욕심을 부리다 결국은 모든 것을 잃고 패가망신합니다. 과욕을 부리면 망한다는 상징인 계영배를 국회의원과 장관들에게 선물로 주면 좋겠습니다. 항상 옆에 두며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잊지 않도록 말입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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