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자살자의 85%, 생전에 행정과 접촉 경험
일본 도쿄도 에도가와구 조사 결과 토대로 행정 변화
부서간 협력 강화와 전 직원 게이트키퍼 교육 시행
2025-02-14 10:04:07 2025-02-14 10:32:17
자살 예방을 글로벌 의무라고 선언한 세계보건기구 (사진= 세계보건기구)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자살한 구민의 80% 이상이 생전에 구 행정과 접점이 있었다는 도쿄도 에도가와구의 발표 내용입니다. 이 조사 결과는 지난 2024년 9월에 처음 발표된 것인데, 1년 동안 자살한 103명과 구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신청 수속이나 생활 상담 등으로 80% 이상이 접점이 있었습니다. 어려움을 겪는 구민과의 '점'의 연결을 행정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두고 현장에서 고민과 모색이 이뤄졌습니다. 
 
최근 이 내용을 상세히 실은 니혼게이자이 보도에는 자살대책을 세우고 일선에서 고민하는 일본의 일선 보건 행정의 고민을 읽을 수 있습니다. 도쿄도 에도가와구는 도쿄의 동쪽 끝에 있는 인구 69만 명의 도시입니다. 자살대책에 적극적이어서 지난 2014년에는 보건 담당부서에 ‘생명 지원 담당’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대책을 세우고 계획을 8~90까지 실행에 옮겨도 자살자가 줄어들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하자, 다케시 구청장이 실태 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는 지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행정과의 접점이 80%가 넘게 존재했음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179명으로 최고치(2011년)에 에도가와구의 자살자는 115명(2016년)까지 줄었지만, 그 후에는 증감을 반복해 2023년에는 122명으로 구가 내건 목표인 '2030년에 82명'과의 격차는 큰 상태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이뤄진 실태조사는 민관합동으로 진행됐습니다.
 
1년 동안 자살했다고 판단되는 구민 103명에 대해 관여한 부서, 시기, 내용 등을 1개월에 걸쳐 조사했고, 비영리단체 라이프링크에 결과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그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습니다. 자살자 103명 중 접점이 있었던 사람은 85.4%인 88명이었습니다.
 
주민등록이나 호적 절차, 각종 신청, 생활상의 상담 등으로 29개 부서에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었고, 그중 17개과는 상담을 진행하던 상태였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세금이나 사회보험료 체납을 둘러싼 상담이었습니다. 독촉이나 고지를 담당하는 납세과나 의료보험과, 간호보험과 등은 각각 10명이 넘는 자살자의 상담을 받았습니다. 생활보호 신청을 접수하는 생활원호과(제1~3)와 정신질환이나 마음의 고민 등에 대응하는 보건예방과도 자살자 중 여러 명이 상담을 받았습니다. 상담은 없었지만 접점이 될 기회가 많은 부서는 전출입 신고 창구인 구민과로 50명이 넘는 자살자와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조사 결과는 행정이 어려움에 처해 궁지로 밀려가는 주민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고 그런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는 지원체게와 연결망을 갖추는 것이 자살대책의 핵심이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은 정신적으로도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가족관계의 변화나 생활 환경의 변화 자체가 정신적 부담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일본의 NPO법인 라이프링크의 시미즈 야스히로 대표는 “부서 간 협력을 강화해 점과 점을 연결하고 면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육상의 릴레이 경기에 비유하여 바통을 떨어뜨리지 말고 필요한 부서에 단단히 연결해야 한다”고 행정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니혼게이자이는 위의 조사 결과와 함께 작년 이후 구 행정 전반을 변화시키기 위한 도쿄도 에도가와구의 대책 강화 노력도 상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구는 관리감독직 865명 전원에게 생명존중 교육을 실시했고 지난해 9월 10~16일 자살예방주간에는 비상근 등을 포함한 전 직원 1만7503명이 '게이트키퍼' 교육을 e러닝 등으로 받았습니다.
 
강습 자료에는 직원들이 자신의 문제로 인식할 수 있도록 창구에서 구민과의 대화를 상정한 질문도 포함되도록 했습니다. 상담자가 궁지에 몰려 보낸 SOS를 부정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일단 마음을 받아들이고 연락처 등을 물어 상담 창구에 연결하도록 하는 세부 설명을 담았습니다. 도서관 등 구민들이 쉽게 들를 수 있는 창구에는 상담처가 기재된 명함 크기의 카드를 비치했습니다.
 
한편 구는 세금과 보험료를 징수하고 독촉하는 직원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는 직장 만들기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담당 직원은 징수율을 높이는 것을 직무로 요구받는 한편 생활고 등의 상담을 받아 양쪽에서 곤란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직원이 정신과 의사들에게 접근 방법과 고민을 상담할 수 있는 기회도 연 12회에서 16회로 늘렸습니다.
 
도쿄도 에도가와구에 따르면 조사 결과 발표 후 전국 각지의 지자체에서 문의가 이어진다고 합니다. 경제적 곤궁에 더해 가정, 학교, 직장 등에서 문제가 발생한 사람과 어떻게 연결해 지원으로 연결할 것인가는 일본의 모든 행정기관에서 공통된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이어지는 생명을 지키려는 시도는 전국의 지자체로 확산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안실련 사무처장 이윤호 박사는 “자살을 별도의 정신건강이나 특정 영역이 아니라 사회복지의 영역에서 관리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신건강의 분야로 자살을 인식하고 있어서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에서 배제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의 이런 사례는 우리에게 변화의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일선 행정이 지역사회의 자살 상황에 대한 인식부터 실태조사, 그 이후 행정의 실천적인 노력에 이르기까지 자살대책을 펼치는 일본의 노력은 일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살률이 높은 우리에게 다양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의 자살자들도 행정과 어떤 식으로든 접점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연결망을 만들어 지혜롭게 대처하고 적절한 지원 대책을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행정의 대책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일선 행정 담당자들이 생활상의 여러 어려움으로 인한 상담을 받은 시민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대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kosns.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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