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유근윤 기자]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윤석열씨 탄핵심판 증인으로 출석해 이른바 ‘체포 명단’ 지시 정황에 관해 구체적으로 진술했습니다. 홍 전 차장은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윤씨로부터 “싹 다 잡아들여”라는 전화를 받았고, 윤씨의 발언을 토씨 하나까지 기억한다고 말했습니다. 윤씨는 혐의를 부인하기 위해 홍 전 차장의 주장을 뒤집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앞뒤가 맞지 않는 진술만 해버렸습니다.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씨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에서 윤씨를 비롯한 증인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윤석열씨,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제1차장, 이진우 전 육군 수도방위사령관. (사진=헌법재판소 제공)
헌법재판소는 4일 오후 윤씨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을 열었습니다. 이 자리엔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홍 전 차장이 국회 측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이날 오후 2시에 시작된 변론기일은 밤 8시50분쯤이 되서야 끝났습니다.
이날 세번째 증인으로 출석한 홍 전 차장은 윤씨가 탄핵소추된 핵심 원인인 ‘국회 무력화’ 의혹에 관련해 ‘체포 명단’을 폭로한 인물입니다. 홍 전 차장은 앞서 지난해 12월6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윤씨가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자신에게 전화해 “싹 다 잡아들여”, “방첩사를 지원해”라고 말했으며, 윤씨와 통화가 끝난 후 여 전 사령관으로부터는 이재명 민주당 의원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김명수 전 대법원장 등 10여명의 체포 명단과 관해 들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홍 전 차장은 이날 헌재 심판정에 모습을 드러내서도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홍 전 차장은 “12월3일 오후 10시53분 대통령이 (비화폰으로) 전화해서 ‘싹 다 잡아들여’라고 말했다”며 “목적어를 규정하지 않아 당시로선 누구를 잡아야 하는지 전달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하니까) 답을 회피하던 여 전 사령관이 '대통령 전화를 받았다'라고 하니까 상황을 설명해줬다”며 “국정원장 관사로 가는 길에 전화를 받아 관사 입구 공터에 서서 (여 전 사령관이 불러주는 체포 명단을) 메모했다”고 말했습니다.
윤씨는 홍 전 차장의 증언이 끝나자 직접 반박하고 나섰지만, 말이 꼬였습니다. 윤씨는 홍 전 차장에게 전화한 이유에 대해선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조태용 국정원장이 미국에 있는 줄 알고 1차장에게 전화했다”며 “‘원장님 부재중이니 잘 챙기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윤씨는 “만약 계엄사무에 대해 국정원에 지시할 게 있다면 원장에게 하지, (국내 업무를 맡은) 2차장도 아니고 (해외 파트인) 1차장에게 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윤씨 본인이 홍 전 차장에게 전화해 놓고는 이제 와서 '기관장도 아닌 홍 전 차장에게 전화할리 있겠느냐'라고 말한 겁니다.
윤씨는 또 “홍 전 차장에게 전화한 건 계엄사무가 아니고 격려 차원”이었다며 “국정원에 정보가 많으니 방첩사의 간첩수사를 도와주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윤씨 주장대로라면 계엄을 선포하던 당시 급박한 비상사태에서 느닷없이 국정원 1차장을 격려했다는 꼴이 됩니다.
홍 전 차장은 변론이 끝나고 헌재를 나가면서 취재진과 만나 “저는 (12·3 비상계엄 당시) 난생처음으로 대통령 전화를 받았다”며 “윗분이 정말 오랜만에 전화했으니 거의 토씨 하나까지 기억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윤씨가 자신에게 한 “싹 다 잡아들여” 등의 진술은 틀림이 없다는 뜻입니다. 홍 전 차장은 이어 “(윤씨 진술은) 조태용 국정원장 (주장)과 똑같다”며 “한창 비상계엄으로 난리가 났는데 1차장에게 격려차 전화를 한다? 그 시간에?”라고 지적했습니다.
윤석열씨가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본인에 대한 탄핵심판 5차 변론에 피청구인으로 출석해 진술하고 있다. (사진=헌법재판소 제공)
윤석열 “계엄 신속 해제…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윤씨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계엄군 투입을 지시한 사실을 직접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주요 헌법기관인 선관위를 무력화하려고 했다고 자백한 셈입니다.
윤씨는 “선관위에 (계엄군을) 보내라고 한 건 제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이야기한 것”이라며 “검찰에 있을 때부터 선거사건을 보고 받아보면 개함했을 때 상식적으로 납득 안 가는 엉터리 투표용지들이 많이 나와서 부정선거 문제가 있겠단 생각을 해왔다”고 말했습니다.
윤씨는 현장 계엄군에게 책임 소재를 떠넘기기도 했습니다. 윤씨는 “실제 가서 업무를 하는 군인들은 서버를 압수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가 내린 지시는 무슨 장비, 어떤 시스템이 가동하는지 보라고 한 것이었다”며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콘텐츠도 압수한 게 없다고 보고받았다. 계엄이 신속 해제됐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진우 메모’서 계엄 모의 정황
내란죄로 구속기소된 전직 사령관들은 증언을 거부하며 몸을 사렸지만 증인신문 과정에서 내란 모의 정황이 속속 드러났습니다.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이 비상계엄 선포 전날인 12월2일 작성한 휴대전화 메모의 구체적 내용이 심판정에서 처음 공개된 겁니다. 메모에는 “의명(명에 따른다) 행동화 절차를 구상해 보았습니다”로 시작해 ‘최초 V(대통령) 대국민 연설 실시 전파시’와 ‘장관님 회의 직후’로 구분된 절차가 나열됐습니다.
특히 ‘장관님 회의 직후’ 절차 중 ‘대테러 대기부대 선 투입 본관 배치’ 부분의 ‘본관’이 국회 본청을 의미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이 전 사령관 증언 거부가 무색하게 윤씨와 김 전 장관, 군 지휘관들이 사전에 계엄을 모의했다는 정황이 드러난 겁니다. “오로지 (김용현 당시) 국방장관하고만 논의했다”는 윤씨 주장과도 상반되는 정황입니다.
여인형 전 사령관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 ‘채상병 순직 사고’의 박정훈 해병대 대령 항명 사건에 관련된 군판사들의 신원을 파악하려고 한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당시는 박 대령에 대한 선고(2025년 1월9일)가 있기 전이기 때문에 방첩사가 나서서 채상병 사건을 은폐하려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옵니다.
국회 측 대리인단은 여 전 사령관이 나승민 방첩사 신원보안실장에게 군판사 4명에 대한 성향 파악을 지시했고, 여기엔 박 대령 구속영장을 기각한 판사, 중앙지역군사법원장 등이 포함됐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여 전 사령관은 “군사법원과 관련해 물어봤을 것”이라며 “탄핵사건과 전혀 무관하다”고 증언을 거부했습니다.
한편 여 전 사령관은 조지호 전 경찰청장에게 “특정 명단에 대한 위치파악”을 협조 요청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조 청장과 기억이 달라 형사재판에서 따져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홍 전 차장과 통화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지하에서 지상으로 오르락 내리락해서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고 주장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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