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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밸류업 광풍 한복판에서 떠나는 가치투자 1세대
허남권 신영운용 사장 퇴진…신영증권 입사 후 운용사 출범부터 참여
가치투자 원칙 고수했지만…실적 부진·기관 자금 회수 영향
2024-03-07 16:02:35 2024-03-12 08:35:47
 
[뉴스토마토 심수진 기자] 국내 1세대 가치 투자자로 손꼽히는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사장이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국내 증시는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호재를 타고 가치주들이 모처럼 주목받고 있는데 허 사장까지 사임하면서 오랜 시간 가치투자를 주도해 온 1세대 매니저들은 오히려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사장은 이 달을 끝으로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습니다. 사의를 표명한 허 사장은 상임고문으로 자리를 옮길 예정입니다. 
 
허 사장은 1989년 신영증권에 입사한 이후 신영자산운용 설립을 준비했고, 1996년 신영자산운용이 출범하면서 적을 옮겼습니다. 신영자산운용에서는 자산운용본부장, 전무이사, 부사장 등을 거쳐 2017년 대표직에 오르면서 8년째 회사를 이끌었습니다. 지난 2022년 6월 연임에 성공해 공식 임기는 내년 6월까지로, 아직 임기가 남았지만 최근 사임 의사를 밝힌 것입니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 (사진=신영자산운용)
 
 
허 사장은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 강방천 전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존리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등과 함께 국내 가치투자 1세대로 불립니다. 저평가된 가치주에 투자해 장기간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 철학으로 유명한데요. 그는 '신영마라톤', '신영밸류고배당' 등을 신영의 대표 펀드로 키웠고, 2000년대 초반 설정된 이 펀드들은 20년 넘게 스테디셀러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증시 트렌드가 가치주에서 성장주 중심으로 변화한데다, 공모펀드보다 상장지수펀드(ETF)로 자금이 이동하면서 신영자산운용의 가치투자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특히 지난해 2차전지 장세가 펼쳐질 당시 수익률이 뒤쳐지기도 했는데, 이로 인해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벤치마크(BM) 대비 낮은 성과를 이유로 위탁자금을 회수했습니다. 업계에서는 대규모 기관 자금이 빠져나간 것이 사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진 실적 부진 또한 사임의 배경으로 언급되는데요. 3월 결산법인인 신영자산운용의 지난 2022 회계연도(2022년 4월~2023년 3월) 순이익은 70억원, 2021년(2021년 4월~2022년 3월) 순이익은 91억원으로 2020년 341억원을 기록한 이후 2년 연속 감소했습니다.
 
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에서 공모펀드 형식의 가치주 펀드를 대체할 수 있는 상품들이 다수 등장하는 상황에 신영운용이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허 사장의 후임으로는 엄준흠 신영증권 부사장이 내정됐습니다. 엄 신임 사장은 오는 22일 주주총회를 통해 공식 선임될 예정입니다. 
 
신영자산운용 관계자는 "허 사장은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신영자산운용의 고문으로 활동할 예정"이라며 "후임으로 오는 엄 신임 사장은 30여년 동안 운용 실무를 경험한 전문가로, 가치투자 명가로서의 명맥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심수진 기자 lmwssj0728@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증권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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