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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쉿! 말조심.
2023-12-04 06:00:00 2023-12-04 06:00:00
밀가루 반죽을 붕어 모양의 틀에 넣어 구우면, 밀가루 반죽은 붕어 모양의 과자로 변한다. 이렇게 구운 밀가루 반죽을 우리는 ‘붕어빵’이라고 부른다. 본질은 구운 밀가루 반죽이고 그 본질이 변할 까닭이 없지만, 붕어 모양의 틀을 거쳐 굽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밀가루 반죽은 ‘붕어’가 되고 ‘붕어빵’이 된다. 붕어 모양의 틀이 부린 묘술(妙術)이다.
 
이처럼 ‘틀’은 다양하고 유동적인 현상을 틀의 모습으로 가둔다. 그 ‘틀’의 형태로 세상과 현상을 시각화 혹은 개념화 시킨다. ‘틀’의 신비한 기능이다.
 
‘언어’에도 틀과 같은 기능이 있다. 세상은 다양하고 유동적으로 펼쳐져 있다. 이런 세상을 우리 인간은 언어로 표현한다. 세상은 언어로 포획되어 있고, 언어라는 틀에 갇힌다. 우리는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고, 이렇게 이해한 세상을 주위의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후세에게 전수한다. 세상은 아날로그(analog)적이지만 인간의 언어는 디지털(digital)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가히, ‘언어의 디지털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인간이 행한 최초의 디지털 혁명은 ‘인간의 언어 사용’일 것으로 본다).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 세상을 평가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설명의 언어’가 언어의 본질에 부합하는 것인지, ‘평가의 언어’가 언어의 본질에 부합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세상을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것도 언어를 통한 것이지만, 이해한 세상을 수용하는 것도 언어를 통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설명의 언어와 평가의 언어를 동시에 자주 혼용한다.
 
그런데, 우리는 평가에 이를 정도의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평가하기도 하고, 자신의 일방적인 견해 또는 왜곡된 편견에 따라 평가하기도 한다. 즉, ‘평가의 언어’는 불충분한 정보에 기초하거나 자신의 일방적인 견해 그리고 왜곡된 편견에 기초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이상하게도, 이런 종류의 평가의 언어는 긍정적인 평가 보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으며, 부정적인 언어로 평가하는 대상은 ‘환경’이 아니라 ‘사람’을 향하는 경우가 매우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사람을 제외한 ‘환경’을 단지 ‘설명’하지 않고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모순이거나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일 수 있다. 환경은 주어진 것이고 수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직 사람을 대상으로 평가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 중 ‘타인’을 대상으로 부정적인 평가의 언어를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몇 개의 단어로, 몇 마디 문장으로, 그 틀 속에 가두어 둘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만일 타인을 ‘부정적 평가 언어’라는 틀 속에 가두고자 한다면, 먼저 나를 살펴봐야 한다. 과연 내가 어떠한 근거로, 무엇에 기초하여, 그 타인을 부정적인 언어라는 그물로 포획하고자 하는지 뒤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행한 평가의 근거는 충분한 것인지, 자신의 판단은 왜곡되거나 편견으로 뒤틀어지지는 않았는지,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또, 내가 어떤 목적으로 타인을 부정적인 평가의 언어로 가두려고 하는지 살펴야 한다. 혹여라도, 자신의 부정(不正)을 덮기 위하여,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타인을 ‘부정적 언어의 틀’ 속에 가두려는지 는 것은 아닌지 보고 또 봐야 한다.
 
이에 더하여, 그 ‘타인’을 살펴야 하고 특히 타인이 겪게 될 고통에 미리 공감해야 한다. ‘부정적 평가 언어’라는 그물로 가두고자 하는 사람이 추후 그 ‘부정적 언어’라는 감옥에서 겪을 고통을 미리 헤아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틀 속에서 질식하는 그 사람의 고통을 헤아려야 한다. 이는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타인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로 느낄 때가 많다. 또, 자신의 삿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타인을 향해 부정적인 평가의 언어를 함부로 구사하는 사람을 만날 때도 많다. 특히, 친구라는 이름으로, 동료라는 이름으로, 같은 가치를 지향한다는 명분으로, 타인에게 함부로 고통을 감내하라고 강요하며 자신의 삿된 탐욕을 정당화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꽤 보게 된다. 이 정도가 되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쉿! 말조심.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종로구지역위원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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