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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노란봉투법을 아시나요?
2023-11-23 06:00:00 2023-11-23 06:00:00
참 별일입니다. 이름도 생소한 '노란봉투법'을 놓고 곳곳이 요란스럽습니다. 노란봉투법은 11월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을 부르는 별칭입니다. 상세한 내용은 복잡한데 요점은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하여 하청기업의 노조가 원청기업과 실질적 임금 교섭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며(2조), 사용자가 파업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을 제한(3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노란봉투법은 지난해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처음 상정된 지 1년 8개월 만에 거대 야당 민주당의 독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려면 국무회의에 상정, 공표되는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예기치 않게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을 놓고 뒤늦게 찬성과 반대 입장이 첨예하게 맞붙으며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노란봉투법이 역대급 악법으로 산업현장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합니다. 특히, 도급계약 관계가 복잡하고 하청사가 많은 건설업계와 자동차 제조업계의 반발이 거셉니다. 산업계의  입장을 대변하여 경제 6단체 대표들은 노란봉투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반면에, 노동계는 노란봉투법의 시행을 촉구하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대규모 집회와 같은 강도 높은 투쟁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시민단체들은 노동계 편을 들며 노란봉투법의 시행을 지지하는 서명운동에  나섰습니다. 심지어 노란봉투법 시행을 촉구하며 법안 통과 이후부터 단식 투쟁에 돌입한 종교인도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찬반 논쟁이 극단을 치닫는 가운데, 국민의 여론은 어떨까요? 민주노총이 전국 18세 이상 성인 1,013명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란봉투법이 ‘필요하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69.4%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특히, 원청 사용자 책임을 강화하는 2조 개정에 관해서는 77.4%가 ‘필요하다’고 했으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서는 ‘부적절하다’가 63.4%로 답했다고 합니다. 
 
정말 놀라운 조사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노란봉투법이 국회 통과하기 전에는 주목을 받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행될 가능성도 없는 법안을 누가 관심 갖고 다루겠습니까. 경제전문가 대다수는 노란봉투법이라는 법안이 있는지조차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과연 일반 국민이 얼마나 노란봉투법의 의미를 알고 조사에 응했는지 의문입니다. 
 
노란봉투법은 이름은 단순하지만, 그 내용은 매우 난해합니다. 노동전문가가 아니면 개정안이 정확히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법률적으로는 한두 용어를 바꾼 것이지만 그 차이가 갖는 여파는 심각합니다. 
 
예를 들어, 현행법은 노동쟁의의 범위를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분쟁’에 관한 사항으로 한정하는데, 개정안에서는 ‘근로조건에 관한 분쟁’이라 하여 ‘결정’이라는 단어를 뺐습니다. 단지 한 단어만 삭제한 것이지만 그 차이는 엄청나게 클 수 있습니다. 개정법은 노동쟁의의 범위를 ‘이익분쟁’에서 ‘권리분쟁’으로 확대하여 임금인상이나 단체협약 체결뿐 아니라 기업 간 인수합병이나 사업조직 통폐합과 같은 경영상 조치에 대해서도 노동쟁의를 할 수 있게 허용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파업이 일상화되어 기업의 정상적 운영이 불가능해진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차이를 여론조사 응답자가 정확히 이해하고 답변했는지 궁금합니다. 노란봉투법이 ‘파업 만능주의’를 불러일으켜 공장들이 멈춰지고 경제가 후퇴할 수 있다고 설명하며 찬반 의견을 물었다면 답변이 어떻게 나왔을까요? 
 
왜 이 법안이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지도 국민 태반은 모를 겁니다. 어떤 사람은 법원에서 송달할 때 사용하는 봉투가 노란색이라 노란봉투법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노란우산공제를 연상하며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상징으로 노란색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2013년 ‘쌍용차 사태’로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쌍용차 파업 노동자를 돕겠다며 어떤 시민이 노란색 봉투에 성금을 담아 전달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노란봉투법은 가시를 품고 있는 장미와 같습니다. 이름은 아름답지만 그 안에는 독 가시 조항이 있습니다. 산업과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안을 충분히 숙의하여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졸속 처리된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극단적 대립을 조장하는 법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국민 분열을 초래하는 정치적 무책임에 소름이 끼치기도 합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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