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토마토칼럼)총수의 '사법 리스크'
2023-11-16 06:00:00 2023-11-16 06:00:00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기업 총수들에게는 경제 발전 기여 등의 이유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주는 게 사실상 공식이 돼 버렸어요."
 
기업 관련 사건을 주로 맡고 있는 한 변호사는 최근 기자와 만나 총수들의 판결 루트를 이렇게 설명했는데요. 3년 이하의 징역 금고형을 선고할 경우에만 집행유예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 법원이 '적당한 수준'에서 시늉만하는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는 겁니다. 
 
이렇다보니 '정찰제 판결'이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실정인데요. 국민 법 감정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형량을 받거나 돈과 권력을 이용해 결국엔 법망을 피해가는 일부 총수들의 모습을 보면 반기업 정서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역대 재벌 총수 중 가장 높은 구형량을 기록한건 정태수 전 한보그룹 총회장인데요. 1997년 당시 검찰은 기업 비리와 불법 정치자금 지원 등 8가지 혐의로 정 전 회장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습니다. 법원은 이보다 낮은 징역 15년을 선고했고, 정 회장은 2002년 말 대장암 진단을 받고 형집행정지로 풀려났습니다.
 
이처럼 사법부의 특혜가 누적되면서 재벌 총수들에 대한 국민적 부정 여론이 커진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국민 대다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에 여전히 공감할 겁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경우 계열사를 동원해 수십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 직원들의 계좌로 급여를 중복·허위 입금한 뒤 이를 빼돌린 정황 등으로 최근 경찰의 강제수사를 받아 구설에 올랐습니다. 
 
이 전 회장은 올해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됐으나, 또다시 기업형 비리로 수사 선상에 오르게 되면서 기업도 끊임없는 '오너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는 겁니다. 앞서 이 전 회장은 7년 넘게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 '황제 보석'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요. 개인적 불행 등 사정을 감안해 봐도 '사면된 지 얼마나 됐다고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라는 국민적 지탄을 받을 법한 상황입니다.
 
총수의 사법 리스크는 기업의 크고 작음을 따지지 않고 곳곳에 산재해있습니다. 오는 17일에는 3년 넘게 진행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부당합병·회계부정' 1심 재판이 종결될 예정인데요. 
 
앞서 이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아 수감생활을 했고, 지난해 광복절 특사로 복권됐지만 여전히 제한적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와 별도로 부당합병 재판으로 7년 동안 사법 족쇄에 묶여 있는데요.
 
재판 출석 때마다 신경 쓸 요소가 많기에 경영적 측면에서 운신의 폭에 제한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해당 사건의 수사 기록만 19만 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방대해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재계에선 "이 회장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사법 리스크부터 해소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우세합니다. 하지만 재벌 총수들의 불법적인 부의 이전과 법 위반행위에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지는 데 대한 국민적 반감 역시 외면할 수 없습니다. 
 
특히 1등 기업인 삼성에 대해 국민 상당수가 '양가감정'을 지녔다는 걸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세계 굴지의 자랑스러운 기업이자 정관계 전방위적인 영향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기업이라고 말이죠.
 
해당 사건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총수들에게 빈번하게 이뤄지는 솜방망이 처벌과 경제적 양극화까지 심화되면서 반기업 정서는 여전하다"면서 "검찰은 이러한 국민적 부정 여론과 시민사회 단체 등의 압박 등을 감안해 무조건 항소할 것이다. 사건이 장기화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정한 법 집행이 이뤄져야 사법 정의가 실현될 것임은 자명합니다. 다만 모든 총수들이 범법자 취급을 받아선 안 될 것입니다. 생로병사나 법 앞에 총수 역시 나약한 인간일 뿐입니다. 
 
특히 지금 이 순간에도 '정도경영', '가치경영'을 추구하며 작게는 그룹의 고용과 투자, 크게는 사업보국을 추구하는 기업인들이 더 많을 겁니다. 총수 사면이나 기업인에 대한 선고를 할 때 '경제 살리기'라는 명목이 자주 따라 붙는데요. 경제인으로서 사업보국의 소명을 다해 국가와 국민에게 이바지하라는 대국적 차원이 담긴 선언적 문구라고 풀이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여망을 받들어 기업과 총수가 사회적 가치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경영 행보를 실천하고 있는지, 기업인 스스로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함은 당연하겠습니다. 모쪼록 법적 정의를 기반으로 '경제 살리기'와 '국민적 공감대'에 부합하는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이 내려지길 기대합니다.
 
임유진 재계팀장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