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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봉제인간, 우주에서 들으면 어떨까
첫 정규 음반 '12가지 말들'…"'나쁜 음악' 하는 테라피 밴드"
2023-11-02 17:43:36 2023-11-02 17:43:36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무대에 서면 스피커를 타고 악령(惡靈)처럼 내리치는 광란의 사운드. 흡사 성직자나 저승사자 같은 검거나 흰 도포, 데스메탈스러운 이 흑백의 분장 뒤에는 뭐가 있을까. "솜처럼 말랑말랑한('플러피한') 인간일지 언정 '나쁜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고어한 느낌의."
 
록 밴드 '봉제인간'이 최근 발표한 첫 정규 음반 '12가지 말들'은 동명의 첫 트랙부터 검은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1번에서 저 먼 우주까지 날아갈듯 프렛(Fret·기타와 베이스의 지판 전체에 균등한 간격으로 설치 되어 있는 쇠막대들)을 껑충 뛰어대는 손가락, 이 줄 진동으로부터 와장창 대는 굉음들, 그리고 사이사이 먹색 폭격으로 찍어대는 드럼의 연타.
 
최근 서울 마포구 연남동 인근에 위치한 두루두루아티스트컴퍼니 사무실에서 만난 록 밴드 '봉제인간', 세 멤버 지윤해(보컬·베이스), 임현제(기타), 전일준(드럼)는 "보통의 밴드들 음악 작업이 도자기를 빚은 다음 깎는 데 집중하는 것과 같다면, 이번에는 애초부터 예쁘게 빚어보려 하는 과정으로부터 시작됐다"는 비유를 꺼내듭니다. 즉, 현대적인 편집 작업을 최소화하고 산울림 같은 옛 밴드들처럼 투-쓰리 테이크로 투박한 합주 녹음을 했다는 것.
 
록 밴드 '봉제인간'. 사진=두루두루아티스트컴퍼니
 
2022년 초 '술탄 오브 더 디스코'·'파라솔' 지윤해(보컬·베이스)·'장기하와 얼굴들' 전일준(드럼)·밴드 '혁오' 임현제(기타)가 뭉친 팀은 데뷔 때부터 고매한 평단의 궁금증을 유발한 팀입니다. 단 한 장의 음반 발매 없이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 같은 국내 굵직한 페스티벌 무대에 닿아갈 때마다 "이 팀 뭐야?" 객석도 술렁였습니다.
 
손으로 한땀한땀 바느질한 봉제(縫製)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주들을 듣다보면, 세 개의 뇌와 30개의 손가락이 연결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사실 큰 의도를 가지고 움직인다기 보다는 아주 단순하게 그때 그때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각자가 꺼내오거든요. 한 번의 합으로 인타임에 끝내는 그 에너지가 그대로 담긴 것이라 봐주심 될 것 같아요."(임현제)
 
메탈, 개러지록, 매스록, 펑크 같은 록의 다채로운 세부 장르들을 잘라 우당탕 대는 연주의 합들을 붙여가며 만든 음악들. 우주선을 타고 12가지 다른 언어들을 맞닥뜨린다는 곡 '12 Languages'처럼 동화적 상상으로 빚어낸 가사들은 몽롱합니다. "우리가 곡 작업하는 걸 누가 뒤에서 카메라로 찍었으면 재밌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계속 리듬 쳐봐, 이 리프는 어때' 하다가 갑자기 쌩뚱 맞은 걸 하면 또 따라가요. 그러다보면 또 연결이 되고. 드럼이 전쟁 장수 같은 기세로 적진의 목을 따러간다면, 기타와 베이스는 뒤에서 활을 쏴주며 지원해주는 느낌이었죠."(지윤해) "치면서도 의아했어요. '이래도 되나'. 자기 세뇌식으로 확확 바뀌는 구간들을 쳐낸 것 같아요."(전일준)
 
록 밴드 '봉제인간'. 사진=두루두루아티스트컴퍼니
 
앨범 내 수록곡 '꾸부렁 할머니'의 경우 보컬과 악기들이 통속민요 '영감타령'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목들이 재밌다고 하자 "이 멜로디 저 멜로디 붙여보다가 '꾸부렁 할머니 동요가 생각났다'"고 했습니다. 다른 수록곡 '지난 이야기'에서는 병원에 들어서며 처방을 받기까지 듣는 말들을 가사에 실험적으로 녹여냈습니다. "저희는 테라피 밴드를 표방하는지도 모르겠으니까요. 하하."(지윤해)
 
직장 상사나 헤어진 연인 같은 정말 싫은 사람 얼굴을 떠올리며 썼다는 '너만 없으면', 세 악기가 불 붙듯 내달리는 '기타 히어로' 같은 수록곡들도 가사와 사운드의 재치가 넘칩니다. 'BABY', 'KISS' 같은 곡들도 들어보면 명료한 가사, 그러나 기존 전개하던 진행과 화성을 몽땅 뒤엎는 다이나믹한 변칙 사운드는 '봉제인간'의 인장 같은 느낌을 줍니다.
 
"베이스리프를 짤 때 보면 제 손 위치를 보게 되거든요. 그런데 한 프렛에서 다음 프렛으로 넘어갈 때 일단 굉장히 많이 건너가 봐요. 이 음이 맞냐 틀리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10살 꼬마아이처럼 노는 거지요. 스케일이나 코드 진행이 음악적으로 맞고 틀리다는 게 세상에 존재하긴 하지만, 봉제인간의 DNA는 일단 안될 것 같은 걸 시도해보는 데서 오는 것 같아요. 일단 악기를 잡고 앉아서 투닥 거리다가 나오는 거죠. 틀리건 아니건 일단 셋이 레고조각을 맞춰본다는 생각으로."(지윤해)
 
록 밴드 '봉제인간'. 사진=두루두루아티스트컴퍼니
 
그야말로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서 오는 자유분방함, 정해진 형식으로부터의 탈피감, 벼락같고 기괴한 것처럼 보이는 '나쁜 음악'은 사실 차디찬 현실의 벽 사이로 피어나는 꿈과 사랑 같은 것. 루시드폴의 음악 제목처럼 '바다처럼 넓은 할머니 같은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폭신폭신한.
 
이번 음반을 관통하는 공통의 정서나 느낌, 분위기를 색감으로 표현해달라는 요청에 "검정 아니면 흰, 피 색깔"이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행복이나 기분좋음 같은 정서와는 거리가 먼. 불안과 우울, 예민한 날 '밤의 달리기' 같은 것이기에. "저기 뒤에 있는 금지 표지판 같은 거죠."(임현제) "지옥으로 가는?"(전일준) "하하하."(멤버들)
 
멤버들은 마지막으로 "공연을 실제로 보는 것과 음반으로 듣는 것은 애초 다르지만 저희 음악의 경우 갭이 더 클 수 있으니 미묘한 차이를 느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큰 스피커로 들으면 공연보다 좋을 수도 있어요. 그때 당시 녹음 당시, 기세가 온전히 들어있기 때문에. 몸으로 샤워하듯이 들었으면 좋겠거든요. 어디 술집가서 신청곡으로 크게 틀어달라고 하면 좋지 않을까."
 
록 밴드 봉제인간. 사진=두루두루아티스트컴퍼니
 
<에필로그: 봉제인간을 우주에서 들으면 어떨까.>
 
Q.'비틀어'라는 노래 제목도 있지만, 봉제인간 사운드의 특이점은 비튼다는 것 같아요. 독특한 기타나 드럼 사운드를 잡기 위해 노력한 부분이 있나요. 어떤 모델들을 써서 효과를 내려 했는지도 궁금하고요.
 
임현제: 대체로 한 음을 쳤을 때, 두 엠프에서 동시에 나오게끔 녹음 세팅을 했어요. 그리고 두 앰프에서 나오는 대로 수음한 사실상 스테레오에요. 더빙을 하는 효과까지는 아니지만 톤의 다양함을 줄 수 있게끔 그런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다른 밴드인 '효도앤베이스'의 드러머이자 프로듀서이고 최근 이센스 음악을 프로듀싱한 친구의 깁슨 SG 모델을 썼어요. 레스폴과 다르긴 한데, 카랑카랑한 편인 거 같기도 해요. 오히려 저한테는 찰랑찰랑하달까요. 물론 어떤 앰프 셋팅을 하냐에 따라 개인적으로 사운드를 다르게 느낀다고 생각하지만요.
 
전일준: 보통 녹음을 한다하면, 준비된 스튜디오에 드럼 셋트를 놔요. 그리고 변화 없이 손악기 정도만 바뀌는 느낌으로 연주를 하죠. 봉제인간에서는 최대한 할 수 있는 걸 다해보자는 느낌으로 가게 됐어요. 드럼도 두 세트 세 세트까지, 스네어도 10개 정도를 가져가서 녹음을 해봤거든요. 모든 곡들에 변화를 주려고 했는데, 하고 보니 '굳이'라는 생각도 들긴 해요. 생각보다 그로 인해 사운드가 재밌게 나온 부분도 있지만, 그걸로 다른 에너지를 더 썼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재밌었어요. '하고 싶은 걸 다 해보자'는 앨범 느낌에 충실했달까. 이번 음반 녹음에는 제 소장 루딕 빈티지 드럼을 썼는데요. 사실 빈티지 악기라는 게 되게 불편하지만 그 오리지널의 소리를 내가 내고 있다는 기분 같은 게 좋아요.
 
지윤해: 제가 피베이라는 미국회사의 중고 악기를 굉장히 싸게 샀는데요. 이전에 갖고 계셨던 분이 물에 빠뜨린 채 그대로 방치를 해놔서 처음엔 나무가 다 갈라져 있었거든요. 목공본드로 덕지덕지 붙어 있던 그 악기를 제가 전부 뜯어서 고쳐보고 녹음까지 쓰면서 재밌었습니다. 돌덩이 같은 묵직한 소리가 기분 좋더라고요. 아, 그리고 이번 앨범을 듣고 '베이스 이펙트 뭐썼냐'는 질문을 많이들 하시더라고요. 영업 비밀로 하겠습니다.
 
Q.가사 쓰듯 영화적인 상상으로 대답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을 ‘여행지’에 빗댄다면, 듣는 사람들에게 어떤 여행지면 좋을지,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해본다면 무엇일까요.
 
전일준: 아무데나 어디서든지, 혼자만 있는 공간. 혼자서 미친짓 하고 싶은데 사람들 있을 때는 못하잖아요. 들으면서 융화돼 미친 짓을 할 수 있는, 신나게 춤도 추고.
지윤해: 교도소 독방 같은데? 영화관도 좋을 거 같아요. 또 운전하면서 들으니까 좋더라고요, 모든 음악이 그렇긴 해요.
임현제: 전 모르겠네요.
지윤해: 우리 음악을 우주에서 들으면 어떨까. 일단은 크게 들으면 좋을 거 같아요. 공간감이 커지면 커질수록 좋지 않을까 싶긴하네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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