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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2023-09-26 06:00:00 2023-09-26 06:00:00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전담(마크)했습니다. 마크맨은 한 유력 정치인을 밀착해 취재하는 전담 기자를 뜻합니다. 7년간 이 대표와 동행하며 누구보다 많은 걸 봤고 기록했습니다. 최근 이 대표의 단식과 국회 체포동의안 가결, 민주당 후폭풍을 보자니 몇몇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2016년 말 박근혜 대통령 국정농단 사태가 촉발됐습니다.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 대표는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탄핵'을 외쳤습니다. 단숨에 '변방 장수'에서 '차기 주자'로 급부상했습니다.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이 대표가 도전했습니다. 본격적인 검증의 차례였습니다. 여러 악재가 등장했고, 대표적으로 '형수 욕설 사건'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가족 간 불화로 시작된 이 사건은 이 대표가 셋째 형 재선씨와 형수에게 심한 욕설을 한 사실이 드러나며 '패륜'으로까지 비화됐습니다. 이 대표와 갈등의 골이 깊어진 재선씨는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박사모)' 성남지부장까지 맡아 동생 낙선운동을 펼쳤습니다. 
 
사건이 일파만파 확산되자, 당시 이재명캠프 핵심 인사가 저에게 만남을 요청했습니다. 저는 이 대표가 변방에 있을 때부터 밀착 마크를 했던 데다, 재선씨도 두세 번 만나 자초지종을 들은 뒤였습니다. 그는 이 대표가 형님 일을 돌파할 방안을 물었습니다. 저는 "무조건 사과하셔라"고 했습니다. 유교적 흔적이 남아있는 우리 현실을 감안할 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이었습니다. 그는 제 이야기를 한참 듣더니 "이 대표의 선택지엔 형님께 사과하는 건 없다. 본인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신다"고 털어놨습니다. 저는 "진심이 아니어도 해야 한다. 대중에겐 '이 대표가 형님께 진심으로 사과했고 화해했다. 이재명은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지도자다'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 말은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이 대표는 형수 욕설 사건의 강을 끝내 넘지 못했습니다. 아직까지 이 대표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꼬리표'가 되었습니다. 이 대표가 이 사건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사과한 건 그로부터 5년이나 지난 2022년 1월이었습니다. 형 재선씨는 이미 사망한 뒤였습니다. 형의 유족은 이 대표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재선씨 아들(이 대표의 조카)은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자 "너무 행복하고 기쁘다"는 글을 공개적으로 썼을 정도입니다. 
 
다음 장면은 2021년 11월입니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 대표는 본격적인 지방순회 유세에 나섰습니다. 첫 행선지는 2박3일 일정으로 부산·울산·경남(PK)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유세 이틀째, 이 대표는 지방까지 동행한 기자들에게 저녁을 대접했습니다. 거제도 한 캠핑장에서 기자 6~7명과 이 대표가 화롯불 앞에 모였습니다. 고기를 굽고 라면도 끓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자리가 편해서였을까요. 이 대표는 기자들의 질문에 상대 후보에 대한 비속어도 쓰는 등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습니다. 
 
그러던 중 2007년 이 대표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를 지지,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정통) 공동대표로 활동한 때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정 후보는 참여정부에서 통일부 장관까지 지내는 등 '황태자'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참여정부 말 노무현 대통령에게 냉정히 등을 돌리며 친노와 반목했습니다. 정 후보는 17대 대선에 출마했지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참패했습니다. 이후 그는 당을 떠났고, 다시는 민주당 주류로 복귀하지 못했습니다. 노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정 후보를 앞장서 지지한 이력은 이 대표에게 지우고 싶은 낙인이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친노·친문이 이 대표를 비토하는 계기 역시, 거슬러 올라가면 정통과의 악감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 대표에게 정통의 소회를 묻는 건 다소 짓궂은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이 대표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정동영 지지 활동은 부끄러운 면도 있고 잘한 것도 있다. 아무튼 한 가지로 단정해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도 이재명의 정치인생 중 하나다. 거기서 배운 건, 정치는 겸허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1일 국회 본회의에선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이 진행됐습니다. 결과는 '가결'. 민주당에서 30여명의 의원들이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표결 후 친명계와 비명계의 갈등이 본격화됐고, 원내지도부가 총사퇴하는 등 당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습니다. 26일인 오늘 이 대표는 구속영장 발부와 기각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영장실질심사 이후 이 대표는 어떤 길을 가게 될까요. 결과가 어떻든, 제가 아는 이 대표라면 정치를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정치적 목표에 대한 욕망, 생존에 대한 본능이 그 누구보다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이 대표를 보면서 앞서 언급한 두 장면이 떠오른 건 왜일까요. 잘못에 대해선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알아야 하며, 그렇게 정치는 겸허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대표는 체포동의안 표결 직전, 부결 요청 입장문을 발표한 것을 반성해야 합니다. 그는 지난 6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불체포특권 포기는 이 대표가 추진한 혁신위원회 1호 안건이자, 7월 당 의원총회에서도 결의된 사항입니다. 그런데 이 대표는 부결을 요청, 대국민약속을 뒤집었습니다. 동시에 윤석열정부의 폭주에 항거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단식이 아닌 자신을 위한 '방탄 단식'이었음을 자인하게 됐습니다. YS와 DJ, 문익환 목사 등이 마지막 저항의 수단으로 단식을 택한 결기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민주당 안팎에선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을 축출해야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거센 욕설도 곁들여지고 있습니다. 이 대표가 설사 구속되더라도 대표직을 유지하고 심지어 옥중 출마 주장까지 나옵니다. 이 대표를 가까이서 지켜본 저로서는 가능성 높은 선택지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민심과의 괴리입니다. 정치적 선택이 최선의 결과로 이어지려면, 여론의 지지가 있어야 하며, 이는 명분과 함께할 때 가능합니다. 명분은 단순히 민생정치를 호소하는 데서 비롯되지 않습니다. 윤석열정부를 비판하거나 검찰독재의 부당성을 알리는 것으로도 모자랍니다. 불체포특권 포기를 번복한 제 잘못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 같은 자기희생이 있어야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 대표가 '정치는 겸허해야 한다'는 교훈을 아직 간직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최병호 탐사보도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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