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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옹호
2023-09-20 06:00:00 2023-09-20 06:00:00
한때 언론의 덕목은 불편부당, 춘추필법이었다.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기록한다는 신념으로 대의명분을 좇아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었다. 그러나 이젠 그 누구도 언론이 그런 위치와 역할을 갖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계열의 정권이 들어서면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들은 ‘한 껀’을 찾아 헤맨다. 정권의 편을 든다는 어용시비를 불식시키고 점점 사위어가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조질 꺼리’에 목이 마른다. 진보 언론의 노력은 대체로 변죽만 울리는 결과로 귀결돼 정권과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불쾌감 지수만 높일 뿐, 정권의 구조적 한계를 환골탈태하는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의힘당 계열의 정권이 들어서면 보수를 표방하는 언론들은 노심초사 모드에 접어든다. ‘좌파’로부터 이 정권을 보위하고 집권 기간 내 더 나은 사업과 이익의 기회를 얻기 위해 ‘쉴드’에 여념이 없다. 대체로 정권과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동지적 호응을 받지만, 무슨 짓을 해도 언론이 다 막아준다는 안이함을 유발해 보수 정권을 더 무능하고 부패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렇게 정권과 언론의 관계가 평면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허가해준 종편인 JTBC와 TV조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도화선을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권의 등장에 큰 역할을 한 셈이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 당시 보수언론의 파상공세와 달리 우호적 보도를 내보냈고 조국 장관 사태 때도 비슷한 기조를 유지했다. 결국 윤석열은 보수정권의 대통령이 됐다. 각자 어떤 목적과 방향을 갖고 ‘플레이’를 하지만 작전대로 꼭 들어맞진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조지기’와 ‘빨아주기’ 컴플렉스를 넘어서는 언론을 갖지 못했다. 불편부당, 춘추필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공격과 진정한 옹호를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를 예전에 읽은 적이 있는데, 왜 우리나라는 이런 학자와 지식인이 없을까 통탄하는 마음을 금치 못했다. 폴 크루그먼은 미국의 경제사를 통시적으로 분석해 공화당 정권이 얼마나 경제를 무능하게 운용했는지, 민주당 정권이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데이터와 팩트로 촘촘하게 보여준다. 민주당 정권의 집권만이 미국의 발전을 보장하는 길이라고 크루그먼은 역설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런 방대한 연구프로젝트에 도전하는 지식인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것보다는 어용시비에 걸릴까 봐, 학문적 레퓨테이션에 흠이 날까 봐 도저히 꺼낼 수 없는 얘기를 크루그먼은 흡사 정치 유세하듯 책으로 펴내고 있다. 이런 지식인이 뉴욕타임스 칼럼의 메인 필자로 등장하는 것이 하등 이상하지 않은 문화다. 진보든 보수든 이런 지식인, 이런 언론을 보고 싶다. 자신이 지지하는 가치를 위해, 그 가치를 체현한 정치세력의 성공과 혁신을 위해 제대로 공격하고 제대로 옹호하는!
 
백승권 비즈라이팅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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