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시론)철없는 폴리페서 양산하는 한국 대학교수 사회
2023-09-15 06:00:00 2023-09-15 06:00:00
얼마 전 어느 거대 정당의 혁신위원장을 맡았던 대학교수가 ’노인 폄하‘ 등의 말실수를 몇 번 하며 구설수에 휘말리자 ‘철없는 교수’의 발언으로 치부해 달라고 변명한 적이 있습니다. 본인의 자리에 걸맞지 않게 경솔히 발언해 물의를 일으킨 것을 ‘철없다’ 표현한 것이 생뚱맞습니다. 그것도 교수라는 직업 탓으로 핑계를 돌린 이유가 의아합니다. 아마도 정치인이었으면 이것저것 따져서 발언하지 않았을 것을 교수라서 눈치 보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발언하였다는 뜻이라 보여집니다.
 
‘철없다’라는 말은 분별력이 모자란다는 뜻입니다. 어른이 되었는데도 어린아이처럼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면 철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수가 철이 없다고 하면 무슨 의미일까요? 사리 분별을 못 한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학문을 연마하고 진리를 탐구하며 남을 가르치는 교수를 어찌 철없다고 지적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교수가 개인적 유불리를 떠나 학자로서의 소신을 주장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 관점에서는 철없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철없는 교수’를 자칭한 분은 엄청난 권력을 가진 정당 혁신위원장으로서 학자적 소신에 따라 발언하고 행동했는지 의문이 듭니다. 이분은 정부 부처의 기관장을 맡아 정권이 바뀌어도 3년 임기를 채우며 자리를 지켰다고 합니다. 권력과 명리를 쫓아 살아온 분이 스스로를 교수라 칭하니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물론 직업은 교수일 겁니다. 하지만 기관장과 위원장을 맡아 오며 교수로서의 본분인 연구와 강의는 얼마나 충실하신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이처럼 정치와 대학에 양다리 걸치는 교수를 세칭 ’폴리페서‘(polifessor)라 부릅니다. 폴리페서는 언제나 있었지만 최근 10년 동안에 대거 늘어났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대학교수의 보수가 열악해졌기 때문입니다. 대학 등록금 동결과 맞물려 교수 봉급도 14년째 동결되었습니다. 현재, 대학 조교수 평균 초임은 대기업의 대리급 사원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석박사 학위 과정을 7~8년 공부하고 거기에 해외 유학까지 다녀와 30대 중후반에 대학교수로 임용되어 받는 급여가 품위유지는커녕 생활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거기에 학문적 성과에 대한 보상도 미미합니다. 세계적 수준의 학술지에 게재해도 별도의 경제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연구과제를 따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연구비는 일체 생활비로 갖다 쓸 수가 없습니다. 대형 국책과제를 받아 조금이라도 사적으로 사용하면 연구비 유용으로 제재받고 형사처벌까지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니 대학교수들이 학교를 떠나 다른 곳에서 보상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수 사회도 변했습니다. 10여년 전에는 교수직을 본업으로 전념하는 교수가 대부분이었고 외부 일을 많이 하는 교수는 학교 내에서 대접받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밖에서 잘 나가는 교수를 부러워하는 형편입니다. 대기업의 사외이사를 맡거나 정부의 기관장으로 가면 화제가 되고 부러움의 대상이 됩니다.
 
이런 자리는 그냥 오는게 아닙니다. 정치적 영향력과 인맥을 가져야 따라옵니다. 그러니 정부에 참여하거나 정치권을 기웃대는 폴리페서가 득세하게 되는겁니다.
 
폴리페서치고 학문적 실력이 우수한 교수가 드뭅니다. 우스개 소리로 연구 업적이 많으면 청문회 통과를 못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논문 검증의 자기표절에서 걸리고 연구비 지출에서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한국은 학문적 성과를 높이 평가하지 않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대학교수가 유명해지려면 우선 매스컴을 타야 합니다. 방송의 토론회에 나와 강성 발언하면 인기를 얻어 이곳저곳에 불려 갑니다. 요즘은 SNS로 주목을 끌 수 있습니다. 어느 법대 교수는 SNS에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정치 평론의 글을 올려 명성을 얻었고 그 덕분에 청와대 민정 수석에 법무부 장관까지 역임하였습니다. 정당이나 정부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것도 유명세를 높입니다. 시민단체나 운동권 경력은 훈장처럼 도움이 됩니다.
 
폴리페서로 성공하려면 중립적 전문가로 남기보다 진영을 택해 충성심을 발휘하고 세력 확장에 기여해야 합니다. 우리 정치에서 중도가 설 자리가 없는 것처럼 폴리페서도 중도는 인기가 없습니다. 이에 따라 정치적 이슈에 교수직을 내걸고 나와 진영논리를 대변하는 폴리페서가 많아졌습니다. 오늘날 확증편향의 정치성향이 강고해진 것에는 한쪽 편에 줄 서서 곡학아세하는 ’철없는 폴리페서‘들이 기여한 바가 큽니다. 등록금 동결과 같은 가격 규제의 부작용이 폴리페서의 양산이라는 예기치 않은 사회적 비용으로 나타난다는 점이 흥미롭기만 합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