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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무당층 30%와 ‘성공의무 이행계약서’
2023-08-29 06:00:00 2023-08-29 06:00:00
 작년 대선 이후 여론조사의 특징을 꼽자면 단연 무당층 급증이다. 지난 22~24일 한국갤럽조사에 따르면 무당층은 30%로 국민의힘 지지율 34%, 민주당 지지율 32%와 대등하다. 최근 한두 달 새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무당층은 작년 하반기에 20%를 넘더니 올 초부터는 지속적으로 30%대를 기록중이다. 이런 지속성은 전례가 없다. 
 
왜 이렇게 급증했을까. 두 말할 필요없이 지난 대선 1, 2위 후보에게 표를 던진 사람 중 이탈자가 늘어서이다. 몇몇 예외가 있지만 각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정당지지율이나 내년 총선 지지 정당 항목의 답변은 오차범위 내에서 팽팽하다. 물론 무당층의 특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현재 무당층이 양당 지지층과  수치로는 비슷하지만, 그 파괴력과 응집력까지 비슷하지는 않다. 사안이나 이슈에 따라 갈리고, 선거가 임박하면 흩어질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총선이 가시권에 들어오는 내년 초부터는 줄어들 것이다. 이들의 최종 선택이 선거결과를 판가름지을 것이다. 
 
주장을 펼치면 진영별로 해석이 엇갈려 논란만 커지므로 수치로 얘기해보자. 작년 대선에서 윤석열후보와 이재명후보의 득표율 차이는 0.7%p였다. 현재 대통령 국정지지율은 35%선으로 대선 득표율 48%보다 한참 아래다. 민주당 지지율(이재명대표 지지율로 등치시킬 수는 없지만)도 비슷하다. 대선 1, 2위  후보 모두 자신의 지지자들조차 껴안지 못하고 있다. 대선 이후 두 정파 모두  국민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 과정에서 ‘보보믿믿’ 현상(보고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은 대선 시기보다 더 심해졌다. 
 
역대 대선 승자가 자신의 득표율을 임기 말까지 유지한 경우는 대통령직선제가 실시된 지난 1987년 이래 단 한번 밖에 없다. 직전 문재인정부를 제외하고는 모든 정부가 선거 당시 얻었던 지지율을 지키지 못했다. 불행히도 우리 국민 중 “대한민국에 성공한 정부가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여론조사 결과의 신뢰도를 두고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특정 시기 특정 사안에 대해 한두 번 조사한 거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장기간 -이를테면 1년 넘게- 특정한 추세를 보인다면 얘기가 다르다. 단순한 일과성 수치가 아니라 ‘의미를 갖는 수치’라고 보는 게 옳다. 선거 결과도 결국은 수치 아니던가. 모든 결과에 대한 평가는 결국 수치로 말할 수 밖에 없다. 그게 다수결이고 민주주의 원리 중 하나다.
 
현재 정치여론을 3분하고 있는 ‘무당층 30%’는 두 가지를 웅변한다. 국민통합 실패와, 정치권 불신/부정이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것. 이는 기존 정당에 대한 심판으로 분출될 수 있다는 경고로도 읽힌다. 그렇다고 제3정당의 성공을 담보한다고 속단하기에는 제반 조건 상 난점이 많다. 그간 제3정당의 성공사례가 두 번(김종필 자민련과 안철수 국민의당)에 불과한데다, 그 두 정당이 얼마되지 않아 소멸돼버려 유권자들은 제3정당의 지속가능성에 의심이 크다. 제3정당의 토대인 밭(무당층 30%)은 그 어느 때보다 넓지만 파종 후 잘 자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9월 정기국회가 열리고 국정감사가 불붙으면 정국 대립 양상은 최고조에 이를 것이다. 제3당의 성패는 누가 어떤 씨를 뿌리느냐와 발아 조건이 열쇠다. 선거 구도와 아젠다셋팅 및 이슈파이팅에서 어떤 힘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진영을 떠나 모든 정부는 성공해야 한다. 당선자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선거 승자는 당선 확정 그 순간 국민들과 계약서를 쓴다. ‘성공 의무 이행계약서’. 당선증에 그런 조항은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승자는 국민의 시간과 돈(세금)에 대한 사용권을 갖기 때문에 그 계약관계가 선거종료 후 자동체결되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처럼 윤 대통령도 인기나 지지율에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철학으로 나라를 이끌겠다고 천명해왔다. 인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을 제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공 의무 이행계약’은 면제되지 않는다. 지지자 확장은커녕 선거 당시 득표율마저 지키지 못하고 무당층이 치솟는다면, 대통령이 하려는 개혁이나 주요 정책이 추진 동력을 얻기 힘들어진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대통령중심제에서 정국 운영이나 국정에 대한 포괄적이고도 최종적인 책임은 두 말 할 필요 없이 대통령과 집권여당에 있다. 대통령의 실패는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국민의 실패다. 선거 때 모든 후보는 “국민이 원하는 걸 살펴 받들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법치와 공정을 강조했고, 국민통합과 양극화해소를 약속했다. 무당층의 급증은 지자자들도 떠나고 있다는 수치적 증거다. 국정운영 기조 재검토는 자기부정이 아니라, 국민과의 계약을 성실하게 이행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윤 대통령은 평소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말도 많이 하는 편”이라고 말해왔다. 소통은 윤 대통령 자신의 정체성과도 맞다. 대통령은 실패해서는 안될 의무가 있고, 국민은 성공한 정부를 가질 권리가 있다. 그래서  현 정부의 성공을 바란다.
 
이강윤 정치평론가-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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