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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정당방위 해도될까요
2023-08-24 06:00:00 2023-08-24 06:00:00
지난 7월 신림동 흉기난동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테러 또는 살인예고 '묻지마 난동' 공포가 극심합니다. 그때부터 지하철이나 버스, 사람 밀집장소에 있으면 괜히 두리번거리고 훔칫 놀라는 일이 잦아지는 상황입니다. 견주들은 강아지 산책시키기가 두렵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 때문에 호신용품 거래액이 급증했다죠. 잇따른 흉기난동 사건이 늘 다니던 일상 공간에서 발생하면서 '나도 불시에 피해자가 될수있다'는 불안이 호신용품 수요로 이어진 셈입니다. 
 
그런데 무분별하게 판매되는 호신용품이 사용하기에 따라 강력한 살상력을 가진 범죄 도구로 쓰일수도 있습니다.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공원 인근에서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성폭행해 숨지게 한 가해자가 너클을 손에 끼우고 폭행했습니다. 커지는 공포에 비례해 자신을 보호하려는 욕구가 확대되고 있는데 '호신용품'이 되레 공격형 범죄도구가 되기도 하고 방어용으로 사용했을 뿐인데 범죄자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대법원 판례상 공격형 호신용품을 사용할 경우에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판례를 살펴보면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사례는 극히 드뭅니다. 1953년 형법이 제정된 이후 60여년간 대법원이 정당방위를 인정한 사례는 14건에 불과합니다. 형법 제21조가 규정한 정당방위 구성요건을 보면 자신 또는 타인의 법익이 부당하게 침해받을 경우, 방위 행위에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부당한 침해행위가 현재 발생할 경우 등 입니다. 즉 형법에서는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지키기 위한 행동에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상당한 이유'로 정당방위를 인정받는 건 쉬운일이 아닙니다. 예고된 위험을 대비한다거나 상대방을 방어 목적 이상으로 폭행하면 정당방위로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정당방위를 이유로 상대방을 살해한 피의자를 검찰이 불기소 처분하거나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는 일은 한국의 사법 관행상 극히 드뭅니다. 56년 전 성폭행을 시도하려는 가해자의 혀를 깨물었다는 이유로 유죄선고를 받은 최말자씨가 정당방위를 인정해달라며 부산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정당방위에 대한 법원의 해석이 엄격해 사실상 피해자를 가해자로 바꿔버리는 사례가 수두룩합니다. 
 
미국은 다릅니다. 총기 소지가 헌법에사 허용된 미국은 정당방위 인정 범위가 넓습니다. 미국에서 한 여성이 낯선 남자의 침입이 우려되자 총을 쏜 사건이 있었습니다. 남성은 사망했지만 여성에게는 정당방위가 인정됐습니다. 반면 한국의 비슷한 사례로 2014년 강원도 원주의 한 주택가에서는 20대 남성이 도둑을 제압했는데, 이 도둑은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습니다. 검찰은 제압이 과도했다며 남성을 기소했고 법원은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오늘 신림동 난동사건 첫 재판이 있었죠. 국민들은 두려움에 떨고있는데 한달만에 법정에 선 신림동 가해자는 '피해망상'이라며 범행동기를 부인하더군요. 국민들은 불안한 일상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정당방위 인정범위는 여전히 너무 소극적입니다. 흉기를 이용한 무차별적 공격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법원이 정당방위를 확대하지 않고 과거처럼 그 인정범위를 좁게 본다면, 시민들이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신을 정당방위로 보호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억울한 피해자가 이제 그만 나와야죠. 얼마나 억울하면 최말자 할머니는 50년이 넘어서 재심 신청을 했을까요. 
 
김하늬 법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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