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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보 이즈 어프레이드’, 걸작과 궤변의 경계 어디 쯤
‘유전’ ‘미드소마’ 연출 아리 에스터 감독 신작, 단편 모티브 장편 전환
주인공 ‘보’ 트라우마 상처 두려움 죄책감 담아낸 179분 현실+판타지
2023-07-03 07:00:27 2023-07-03 07:00:27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정말 우스갯소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를 본 뒤 단 한 번이라도 이런 생각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을 찾는 건 날개 없는 새가 하늘을 나는 걸 찾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을 겁니다. 귀신이 나오지 않는 공포 호러 영화로 불렸지만 웬만한 공포 영화보다 더 소스라치게 무섭 단 입소문이 퍼졌던 유전’. 그리고 이듬해 괴이한이란 단어로도 충분한 설명이 불가능했던 미드소마가 개봉했습니다. ‘유전의 충격파를 넘어 모두를 경악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상상의 영역에서 떠올릴 수 있는 공포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두고 하얀 악몽이란 수식어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유전미드소마의 충격을 통해 이 감독의 영화적 세계관은 전 세계 영화 마니아들 그리고 평단을 단 번에 휘어 잡았습니다. 그쯤에서 이 감독은 자신의 오래전 시나리오 한 편을 꺼내 봤답니다. 서랍 속에 묵혀 있던 이 시나리오는 장편 연출 데뷔 이전 단편으로 제작했던 영화이기도 합니다. 무려 10년도 더 된 이 시나리오. 손을 댈 수 없던 이 얘기에 이제야 살을 붙일 수 있게 된 듯했답니다. 세월의 힘과 에너지가 필요 했었답니다. 그렇게 나온 영화. 바로 아리 에스터 감독의 신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입니다.
 
 
 
일단 아리 에스터 감독, 제 정신이 아닐 것이라 확신이 드는 연출자입니다. ‘미드소마를 보면 이 얘기에 동의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악마주의를 연상케 하는 종교적 색채가 느껴지는 이 영화에서 사람이 그저 끔찍한 도구가 되는 방식을 그려낸. 그런데 그 감독은 그 영화를 블랙 코미디라 부릅니다. 그럼 이건 둘 중 하나입니다. 이 감독이 미쳤거나, 이 감독 정신이 온전치 못하거나. 하지만 놀랍게도 이 감독, 영화 연출에 대한 기발함과 상상력은 그의 정신 세계관을 제쳐 두고서 라도 극찬의 극찬을 쏟아내도 아깝지 않은 재능이란 것에는 부인할 수가 없을 듯합니다. 그래서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 대한 간단하다’ ‘코미디이다란 설명은 처음부터 큰 의미는 없을 듯합니다.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 사진=싸이더스
 
일단 이 영화, 그의 말대로 너무 간단한 게 맞긴 합니다. 주인공 ’(호아킨 피닉스)가 엄마의 죽음을 알게 된 뒤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엄마 집으로 가는 여정입니다. 그저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과정에 대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문제입니다. 지루할 수도 있고, 흥미로울 수도 있고. 어쩌면 끔찍할 수도 있습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그 과정을 상상도 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려버립니다. 여기서 전제 조건, 바로 가 극단적 편집증 환자 란 것. 이 영화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스크린을 통해 보여지는 모든 장면이 편집증 환자 의 시선일 수 있단 점입니다. 일례로 영화 속 일부는 보의 시선으로 처리되고 보가 바라보는 세상으로 움직여 집니다. 하지만 그것도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이 영화에서 영화적 현실과 상상 그리고 판타지의 영역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관객이 곧 보가 되고, 보가 곧 관객일 수도 있게 됩니다. 다시 말해 보의 시선과 경험이 곧바로 관객 자신의 시선과 경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 사진=싸이더스
 
어디까지가 실체이고, 그래서 어느 부분이 경험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반대로 환상의 경계도 없습니다. 때때로 보의 기억이 만들어 낸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영화 포스터 속 네 명의 각기 다른 인물. 바로 모두가 입니다. 각각의 기억과 각각의 경험과 그 경험이 만들어 낸 무엇을 통해 보의 여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설화이자 동화이면서 악몽이고 현몽이 됩니다. 그걸 만들어 낸 밑바탕에는 보에게 집착하는 엄마의 존재, 그리고 그 엄마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한 채 나약하고 어리고 퇴행적으로 커버린 아이 같은 어른 의 실체가 충돌하면서 계속되는 부조리를 만들어 버립니다. 그 부조리 자체가 이 영화의 제목 보 이즈 어프레이드’, 즉 다시 말해 가 두려워하는 것에 대한 자기 고백서인 셈입니다.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 사진=싸이더스
 
아리 에스터 감독의 내면 그리고 내면의 밑바닥 심연에 담긴 모성, 다시 말해 엄마에 대한 이미지는 유전미드소마그리고 이번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통해 구체화되는 느낌입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내한 이후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아무리 건강해 보이는 가족이라도 기대와 실망, 스트레스가 뒤섞여 있다면서모든 가족 관계는 결코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쉽지 않은 관계의 중심에 자리한 인물 엄마’. 다시 말해 그 모성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이 이번 보 이즈 어프레이드속 주인공 가 전하는 끊임 없는 자기 성찰과 뉘우침의 바닥입니다. 그와 반대로 다락방에 가둬 버린 비밀스런 실체에 대한 엄마의 내면은 보의 죄책감에 대한 분명한 역설입니다. 이미 아리 에스터 감독은 가족의 관계성에 대해 결코 쉽지 않은 것 같다라라면 알 듯 모를 듯한 괴이함과 기괴함의 정서로 끌어 가 버립니다.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 사진=싸이더스
 
아리 에스터 감독은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 대해 블랙 코미디라고 소개합니다. 그의 전작을 떠올리면 블랙 코미디란 표현조차 가당치 않다는 것에 반드시 동의할 수 밖에 없을 듯합니다. 주인공 의 시선과 발걸음을 따라 가는 여정 속에서 관객이 느껴지는 건 곧 가 느끼는 온전한 실체이며 그 실체는 아리 에스터 감독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온전함입니다.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 사진=싸이더스
 
주인공 가 극단적 편집증 환자라는 관점에서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보가 갖고 있는 가장 확실한 두려움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집합체입니다. 그 안에서 편집증 환자가 느끼는 가장 불안함과 두려움 그리고 적의를 한 번에 터트리게 할 수 밖에 없는 일종의 트리거를 이 영화는 건드립니다. 결론적으로 방아쇠 그 자체가 당겨져 버립니다. 자기만의 중심 세계에서 자기 밖의 모든 것에 대한 폭탄을 날라는 영화라고 보여집니다. 아리 에스터 감독, 그가 만들어 낸 를 중심으로 한 부조리와 환상 그리고 두려움이 가득한 이 세계의 진실은 우리 모두 각자의 눈과 시선에서 보여지는 딱 그 정도일 듯 합니다.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 사진=싸이더스
 
말로 표현하기 그리고 글로 정의하기 분명 힘든 결과물입니다. 이상합니다. 황당하기도 합니다. 아리 에스터 감독 연출작 답게 괴이하고 기괴하며 제 정신이 아닌 듯합니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고 과잉된 자의식이 만들어 낸 의미 없는 179이라 혹평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려 3시간의 러닝타임으로 이뤄진 이 영화 스스로가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듯 보일 정도입니다.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 사진=싸이더스
 
결과적으로 딱 하나 남습니다. 아리 에스터의 영화적 세계관에 동의를 하신다면 그의 이번 얘기는 폐부를 찌르는 촌철살인으로 느껴지실 듯합니다. 만약 그 반대라면 이 얘기는 천하의 궤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개봉은 오는 5.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성남 엔터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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