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결국’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사실 체감적으로는 ‘이제야’가 더 맞을 듯하기도 하다. 배우 정성화가 유리 천장을 박살냈다. 단순하게 넘어서고 뚫어 버린 것을 뛰어 넘어 ‘박살을 냈다’고 표현하고 싶다. 그는 1994년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사실 그가 개그맨이었 단 것을 아는 팬들은 많지 않다. 처음에는 정말 잘 나갈 줄 알았다. 특히 그가 당시 아이돌 이상의 인기를 끌던 ‘틴틴파이브’ 2기 멤버였 단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정말 극소수다. 그리고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정성화는 잘 안됐다. 그런 정성화가 의외로 두각을 나타낸 분야는 뮤지컬이다. 개그맨 시절부터 특유의 노래 실력과 발성으로 동료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는 뮤지컬계에서 차곡차곡 계단을 밟아 올라왔다. 그 동안 스크린에서도 간간히 의미 있는 배역들을 맡았다. 사실 그가 연기를 하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니다. 개그맨 또는 코미디언이라 불리는 그들. 정확하게는 그들의 명칭은 ‘희극 배우’다. 정성화도 처음부터 희극’배우’였다. 그래서 더 이를 악 물고 달려 들었나 보다. 이제 그는 대한민국 뮤지컬계의 슈퍼스타가 됐다. 그리고 그는 이제 대한민국 최초의 쌍천만 흥행 감독 윤제균의 필모그래피 최초의 뮤지컬 영화 ‘영웅’의 주역으로 발탁됐다. 참고로 정성화는 동명의 뮤지컬에서 무려 14년 동안 안중근 의사로 살아왔다. 이제 정성화가 안중근이고, 안중근이 정성화다.
배우 정성화. 사진=CJ ENM
‘영웅’은 국내에서 창작 뮤지컬 최고의 흥행 넘버로 이름값이 높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뮤지컬 마니아들이라면 무조건 한 번쯤은 다들 봤을 작품이다. 사실 뮤지컬을 단 한 번도 보지 않은 ‘문외한’아라고 해도 ‘영웅’이란 작품을 무조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반드시 들어 봤어야 한다. 그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윤제균 감독의 손에 의해 영화로 재탄생 된다고 했을 때다. 정성화는 내심 기대를 했었다고.
“영화화 하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당연히 제 캐스팅 관련 언급은 일절 없으셨어요. 당연히 속으로는 ‘내가 했으면 좋겠다’란 생각만 했었죠. 감독님이 공연을 두 번 보셨고, 두 번째 보시고 저한테 ‘영화로 만들려고 한다’라고 하셨어요. 2014년말인가 2015년 초쯤 일거 에요. 저도 항상 ‘영웅’이 영상화가 되면 너무 좋겠다 싶었는데, 소원이 이뤄지는 구나 싶었죠. 그리고 사실 전 출연에 대해선 막연히 상상만 했지 꿈도 안 꿨어요(웃음)”
‘영웅’의 뮤지컬 초연 당시부터 정성화는 무려 14년을 무대에서 ‘안중근 의사’로 살았다.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호흡과 동선 그리고 연기의 톤과 곡 소화 등. 국내에서 정성화보다 ‘영웅’에 대해 더 잘아는 배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다르다. 아무리 뮤지컬 장르라고 해도 말이다. 일단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는 작업에서 흥행성은 검토 안할 수 없는 조건이다.
배우 정성화. 사진=CJ ENM
“기대를 안한 건 아니지만 말씀하신 그 부분 때문에 반대로 기대를 안하려고 했죠. 저 외에도 뮤지컬 경험이 있는 좋은 배우 분들도 많아요. 전 그냥 서포터 정도의 역할만 주어지면 해야겠다 마음 먹고 있었죠. 그런데 어느 날 감독님이 전화로 ‘사무실로 와라’라고 하셔서 반신 반의 했죠. 내게 ‘다른 누가 안중근으로 캐스팅 됐으니 서포터를 해라’라고 하던가, 아니면 ‘네가 안중근이다’거나. 그런데 후자더라고요(웃음).”
당시 기분은 날아 갈 것처럼 기뻤다. 당연하다. 여전히 아직도 그는 ‘배우’로서 발버둥치며 인정 받고 또 존재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 노력이 어느 정도 인정 받은 듯해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하지만 이내 갑자기 겁이 덜컥 나서 무서워지기 시작했다고. 무려 14년을 자신과 함께 동고동락한 ‘안중근 의사’의 모든 것이 자칫 자신으로 인해 바닥으로 추락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몰려 왔다. 14년을 함께 한 ‘안중근 의사’다. 정성화는 눈에 불을 켜고 달려 들었다. 일단 뮤지컬의 ‘안중근’과 영화 속 ‘안중근’의 다른 점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무대와 달리 영화에선 좀 더 안 의사님의 철학가이자 문인 다운 면모를 보여 주려 노력했어요. 무대보다 영화에선 좀 더 인간적인 면을 보여 드리려 노력했죠. 무대에선 굉장히 카리스마가 있는 모습이지만 영화에선 인물의 세밀한 지점까지 들어가야 하는 게 맞을 듯했어요. 그럼 일상적인 모습도 많이 보여 드려야 하고. 그때 그때의 감정에 집중했죠. 울고 싶으면 울고, 두려워지면 떨고. 있는 그대로 담백한 모습의 상황과 과정을 이끌어 가는 안 의사를 그리려 했어요.”
배우 정성화. 사진=CJ ENM
정성화는 아마도 국내에서 같은 작품으로 뮤지컬과 영화 모두를 경험하는 최초의 배우로 기록될 듯하다. 일단 뮤지컬에서의 주인공과 영화에서의 주인공 차이를 앞서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관객들이 문제다. 다른 문제가 아니라 관객들이 받아 들이는 공감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뮤지컬은 ‘직접적’이란 장점이 있다면 영화는 반대로 스크린이란 필터가 존재하는 ‘간접적’ 방식이다. 두 방식의 가장 큰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
“제 생각에 뮤지컬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공간’ 같아요. 우선 뮤지컬은 배우의 실제 목소리로 객석 제일 끝 관객에게 까지 에너지를 전달해 드려야 해요. 그런데 영화는 코앞에 카메라에게 만 전달하면 되요. 그래서 무대에서 하는 것처럼 노래하면 진짜 난리 나요(웃음). 그래서 집에서 휴대폰을 앞에 두고 노래하면서 정말 많이 연습했어요. 이 차이를 정말 잘 조율해야 했어요.”
오는 21일 개봉을 앞두고 열린 언론 시사회와 일반 시사회에서 ‘영웅’은 기대 이상의 호평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일부의 의견 임에도 분명 배우들과 제작진이 새겨 들어야 하는 관람평도 있었다. 이 영화의 연출은 윤제균 감독이다. 윤 감독은 인간적인 드라마 연출에서 국내 영화 감독 가운데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최고다. 더불어 페이소스라고 불릴 정도의 유머 감각을 작품 속에 녹여 내는 것도 압권이다. 영화 ‘영웅’ 속에 담겨진 이런 모습에 약간의 반감을 가지는 의견도 분명 있었다.
배우 정성화. 사진=CJ ENM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아요(웃음). 근데 뮤지컬에서도 영화 속 정도의 코미디는 담겨 있어요. 물론 ‘뮤지컬에 있으니 영화에도 넣어야지’는 아니었어요. 등장하는 대부분의 캐릭터가 실제 인물들이세요. 그분들도 인간이고 사람인데, 마냥 인상 쓰고 고뇌하고 그랬을까 싶어요. 가볍게 보이게 하려는 게 아니라 인간적인 면을 보여 드리고 싶었던 거죠. 우리도 즐거우면 웃잖아요. 그런 감정이에요. 사실 영화 ‘영웅’에서 제일 웃음이 터지는 장면은 제 몫이었어요(웃음) 보셨으니 아시잖아요. 그 장면. 하하하. 더 웃기고 싶었는데 감독님이 ‘안중근은 그러면 안된다’고 하셔서. 하하하.”
감독 ‘윤제균’이 ‘영웅’을 뮤지컬로 관람한 뒤 영화로 만들겠다고 했다. 사실 윤제균이란 이름 석자에 담긴 파워만으로도 영웅의 흥행성은 분명 일정 부분 ‘먹고 들어간다’라고 판단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일부에선 분명 이런 시각도 있었다. 아무리 윤제균이라도 뮤지컬 장르의 국내 시장 흥행 리스크를 감안해야 한다고. 뮤지컬 장르는 국내에선 생소하고도 낯선 장르다. 과거에도 전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흥행에서 처참하게 실패했다. 정성화는 그래서 더욱 더 간절 하단다. 정말 좋은 작품들이 많고 더 많은 작품들이 스크린을 통해 보다 많은 관객들과 만나기를 고대한단다.
배우 정성화. 사진=CJ ENM
“제가 생각하기에 지금까지의 뮤지컬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노래를 대사로 인식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걸 깨려고 ‘영웅’에선 정말 많이 노력했어요. 극중 노래의 70% 이상이 현장 녹음이에요. 노래가 그냥 뮤지컬이기에 나오는 게 아니라 대사의 다른 전달 방식으로 인식을 할 수 있게 잘 만들어 지면 될 듯해요. 할리우드 영화도 비슷했어요. 그런데 ‘레미제라블’부터 달라졌어요. 현장 녹음이었어요(웃음). ‘이게 뮤지컬 영화지’ 싶었어요. 감독님도 같은 생각이시더라고요. 정말 좋은 작품들이 뮤지컬에 많은데, ‘영웅’을 기점으로 더 많이 스크린으로 진출했으면 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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