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게이션)소름끼치도록 날카로운 ‘올빼미’의 시선
밤에만 보고 낮에는 볼 수 없는 ‘주맹증’ 앓는 주인공=‘올빼미’ 비유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은 진실 바라보는 인물의 ‘시선’과 ‘상징’
2022-11-14 00:00:01 2022-11-14 00:00: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보이는 걸 보고, 보이지 않는 걸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보이는 것도 못 본 척 하고, 못 본 것도 때로는 본 것처럼 얘기 해야하기도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스스로가 보이는 걸 만들어 가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것, 그건 실체 하는 진실이다. 결국 ‘진실’을 놓고 누군가는 거짓이라 하고, 또 누군가는 진실을 숨기며 때론 누군가는 진실 자체를 부정하고 급기야 또 다른 진짜 누군가는 그 진실을 만들어 버리려 한다. 영화 ‘올빼미’는 이 같은 흐름을 오롯이 담고 있다. 진실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다. 문제는 형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형태가 있다. 유일하게 진실은 그 형태를 규정할 수 없다. ‘규정’ 그 자체는 결국 진실을 말하고 보고 들었던 인물이 누구인가, 그것이 결정할 뿐이다. 다시 말해 그 진실이 누군가에게는 ‘그 자체’로 존재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이름의 무엇이 되기도 한다. 이 끔찍한 굴레는 그 시절 존재했던 얘기가 아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이 얘기의 톱니바퀴는 여전히 지금도 굴러가는 중이다. 그래서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그게 바로 ‘올빼미’가 말하는 진실 그 자체다.
 
 
 
우선 ‘올빼미’, 상징적이다. 낮에는 볼 수 없다. 하지만 밤, 특히 어둠 속에선 누구보다 잘 본다. 어둠은 이 세상 만물을 집어 삼킨다. 영화 속 어둠은 까마득히 높은 담벼락 너머 구중궁궐 그 자체.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진실도 궁 안에선 존재할 수도 있고 또 반대로 존재하지 않는 또 다른 존재로 취급될 수도 있다. 왕의 말 한 마디면 이 세상 모든 진실은 그 자체로서의 존재를 의심 받게 되고 부정 당할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은 그 자체로 진실일 뿐이다. 그래서 ‘올빼미’의 진실은 질긴 질경이처럼 버티고 또 버티면서 존재한다. 이 영화 속 진실은 맹인 침술사 경수(류준열)를 통해 그려진다.
 
영화 '올빼미' 스틸. 사진=NEW
 
경수는 낮에는 소경이지만 밤이면 앞을 볼 수 있다. ‘주맹증’을 앓는다. 하지만 그가 어둠 속에서 앞을 볼 수 있단 사실은 어느 누구도 모른다. 그는 보는 것이 때로는 진실을 증명하지만 그 진실이 보는 것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 앞을 볼 수 있단 사실을 세상 모두에게 숨기고 산다. 
 
영화 '올빼미' 스틸. 사진=NEW
 
그런 경수가 운 좋게 궁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앞을 보지 못하는 경수는 침술을 배워 살아간다. 그의 침술 실력을 용하게 본 어의 이형익(최무성)에게 발탁됐다. 사실 경수는 건강이 좋지 못한 어린 동생을 돌보며 산다. 경수는 궁으로 들어가 동생을 고칠 약재를 구할 생각이었다. 궁에 들어온 경수는 곧바로 실력을 인정 받는다. 그리고 밤이면 경수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근면함을 증명해 나간다. 모든 건 경수의 승승장구 발판이 돼 갔다. 침술 실력 역시 궁에서 따를 자가 없다.
 
영화 '올빼미' 스틸. 사진=NEW
 
그리고 경수가 궁에 들어 온지 얼마 뒤.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김성철)가 8년 만에 돌아온다. 소현세자는 아버지 인조(유해진)에게 8년 동안 청나라에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을 전하며 문호를 개방해 조선이 강해질 길을 제시한다. 하지만 인조는 여전히 8년 전 남한산성의 굴욕에만 사로 잡혀 있다. 그리고 여전히 명나라를 섬기는 사대를 통해 조선의 살길을 도모하려고만 한다. 그런 인조의 눈에 소현세자는 부자 관계가 아닌 권력의 경쟁자일 뿐이다. 인조는 두렵다. 청의 세력을 등에 엎은 아들이 자신을 노릴 것이란 상상을 한다. 
 
영화 '올빼미' 스틸. 사진=NEW
 
인조와 소현세자의 불편한 관계만이 근심거리가 아니다. 반정의 주역이자 조정 대신들을 이끄는 영의정 최대감(조성하)은 인조의 총애를 받는 ‘소용 조씨’를 견제 중이다. 소용 조씨는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다음 보위를 이어 받게 하려 ‘베갯머리 송사’로 인조를 휘감고 있다. 나라 안팎이 뒤숭숭하다.
 
영화 '올빼미' 스틸. 사진=NEW
 
경수는 내의원 당직을 서던 중 궁녀 호출로 세자 처소로 간다. 기침병이 심한 세자에게 침을 놓으며 마음을 통하는 시간을 갖는다. 영특한 세자는 경수가 ‘주맹증’을 앓는 단 사실을 꿰뚫는다. 이에 대해 죄를 묻기 보단 오히려 응원한다. 경수는 빚을 진 느낌이다. 자신을 알아 준 것 같다. 너무 고마웠다. 감사했다.
 
영화 '올빼미' 스틸. 사진=NEW
 
그런 세자가 며칠 뒤 갑자기 죽는다. 그것도 경수 눈 앞. 경수는 앞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완전한 어둠이 내리면 앞을 볼 수 있다. 어둠이 깔리자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세자가 경수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경수는 세자를 죽이던 범인을 본다. 어둠이 깔린 밤 12시였다. 경수는 아침까지 목숨을 지키면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될 수도 있는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날이 밝기 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그 진실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
 
영화 '올빼미' 스틸. 사진=NEW
 
‘올빼미’는 조선왕조 실록에 등장한 단 한 줄의 기록에서 시작했다. 인조 실록 ‘세자의 얼굴 일곱 구멍에서 모두 피가 흘렀다’란 기록.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소현세자 독살설’에 힘을 실어주는 단서로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이 기록이 담은 의심의 대전제는 영화 속 ‘진실’이 됐다. 정말 소현세자가 독살됐을까 아니면 다른 무엇이 존재할까.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위해 ‘올빼미’는 ‘보는 것’을 끌어왔다. 눈으로 본 것, 그건 진실이다. 더 이상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권력이 집중된 공간은 다른 진실이 존재할 수도 있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것. 권력, 즉 힘을 위해 그 공간에서 진실은 은폐되고 엄폐되며 때로는 그 존재 자체를 부정당할 수도 있고, 급기야 진실 자체를 거짓으로 믿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올빼미’는 봤지만 보지 못해야 하는 것을 위해 ‘주맹증’이란 소재를 끌어왔다. 진실이 드러나는 밝음에서 오히려 보지 못하고, 반대로 진실을 삼키는 어둠에서 그 실체를 찾아가는 아이러니가 영화 속 경수가 ‘진실’을 쫓는 과정처럼 다가온다. 진실을 통해 권력의 실체와 그 실체에 기댄 궁 안 모든 인물들의 감춰진 추악한 민 낯은 또 다른 진실의 이면처럼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올빼미’가 도대체 무엇을 봤고 그 무엇이 감춘 ‘그것’과 또 ‘그걸’ 담은 진실의 실체를 모두에게 대면 시키려 든다. 
 
영화 '올빼미' 스틸. 사진=NEW
 
‘올빼미’의 메인 플롯, 즉 소현세자 사망 사건을 통해 경수가 쫓는 진실 추적극. 단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일. 이 사건, 등장하는 모두가 연관돼 있다. 특이한 점은 등장 인물 모두가 의심 받아 마땅한 용의자가 아니다. 이들 모두의 선택이 시시각각 관객들의 의심을 자극시킨다. 누군가의 선택을 통해 누군가는 죽음을 당한다. 누군가의 선택을 통해 그렇게 쫓고 쫓던 진실은 어둠 속으로 숨어 버리고 빛 속으로 사라진다. 결국 ‘올빼미’는 이런 얘기를 담고 있다. 진실은 눈 뜬 자들에게 눈 먼 ‘소경’이 되길 요구하고, 앞 못보는 ‘봉사’에게 어둠 속 진실의 실체를 찾으라는 이 세상의 아이러니 자체다.
 
영화 '올빼미' 스틸. 사진=NEW
 
‘올빼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만 진실을 바라보고 울어 대는 올빼미의 눈빛처럼 이 영화의 시선도 밝음 보단 어둠 속에 존재하는 소수의 진실을 끌어 올린다. 진실과 거짓 그리고 선과 악이 뒤바뀌는 세상, 그게 ‘올빼미’의 세상이다. 그 세상에 존재하는 진실 같은 거짓과 거짓 같은 진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게 다가온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은 진실을 보는 눈, 지금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개봉은 오는 23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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