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의 포지션은 '박근혜'…좌표는 '여당 내 야당'
배척당한 TK에서도 당대표 지지율 1위에 한껏 고무…친윤계와의 전쟁 본격화
2022-10-10 11:04:53 2022-10-10 11:42:49
[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비판 수위를 끌어올리며 '여당 내 야당'으로 좌표를 잡았다. 이준석 전 대표의 퇴장으로 새 지도부를 선출할 차기 전당대회 출마도 유력한 상황. 공교롭게도 이 같은 포지션은 이명박정부에서 여당 내 야당 역할을 도맡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일치한다. 유 전 의원은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말로 박 전 대통령과 의도치 않는 결별을 해야 했다. 이후 지난 대선 경선까지 배신자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고전을 거듭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29일 대구 경북대학교에서 '무능한 정치를 바꾸려면'을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

유 전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꼴 저 꼴 다 보기 싫을 때, 유승민'이라는 한겨레21 칼럼을 공유했다. 해당 칼럼은 윤 대통령과 여당의 국정 실패와 관련해 '이 꼴 저 꼴 다 보기 싫은 이들은 유승민을 떠올린다'며 "뭘 망설이나, 유승민"이라고 묻고 있다.

유 전 의원은 최근 출간한 저서 <야수의 본능으로 부딪쳐라>처럼 '야수'가 돼 돌아왔다. 기존 선비와도 같았던 어법은 잊었다. 주된 공격 대상은 윤 대통령이다. 지난달 25일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 있었던 비속어 논란 관련해 "막말보다 더 나쁜 게 거짓말"이라며 "벌거벗은 임금님은 조롱의 대상이 될 뿐"이라고 일침했고, 29일 경북대 특강에서는 "국민을 개돼지로 취급하는 코미디 같은 일을 당장 중단하고 깨끗하게 사과하고 지나가야 한다"고 발언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대해서는 "나토 방문은 온갖 구설만 남기고, 한국까지 온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은 패싱하고, 영국 여왕 조문하러 가서 조문도 못하고, 유엔 연설은 핵심은 다 빼먹고, 예고된 한미 정상회담은 하지도 못하고, 한일 정상회담은 그렇게 할 거 왜 했는지 모르겠고, 마침내 카메라 앞에서 '이 XX들, X팔려서'(라는 어록을 남겼다)"며 "윤석열 대통령님, 정신 차리십시오. 정말 X팔린 건 국민들"이라고 한껏 깎아내렸다. 
 
그는 지난 7일 당 중앙윤리위원회가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당원권 정지 1년' 추가징계를 처분한 직후에도 글을 올려 "'양두구육'이 징계사유라면, '이 XX들, X팔린다'는 막말을 한 윤석열 당원은 왜 징계하지 않느냐"며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리고 당에 막심한 피해를 준 대통령 당원의 잘못에 대한 윤리위의 입장은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이양희 윤리위원장과 외부 윤리위원들에 대한 '차기 총선 불출마 선언'을 거듭 요구,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한 뒤 '모든 국민은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27조1항을 꺼내들었다. 

유 전 의원이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공격적 행보를 이어가면서 그를 대안으로 삼는 여론도 확산됐다. 최근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유 전 의원이 '당대표 지지율 1위'를 기록한 것과 관련해 전민기 한국인사이트연구소 팀장은 지난 4일 MBC라디오에서 빅데이터를 근거로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긍정이 거의 40%까지 굉장히 높게 나오고 있다"며 "국민들이 볼 때 '이 것은 잘못했다'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내부에서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박수를 쳐주는 분위기"라고 해석했다.

지난 4월16일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유 전 의원 페이스북 제공)
 
여론조사 결과에 고무된 유 전 의원은 특히 대구·경북(TK)의 결과에 주목했다. 넥스트위크리서치가 KBC광주방송과 UPI뉴스 의뢰를 받아 지난 4~5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차기 당대표 적합도 조사에서 유 전 의원은 29.7%를 얻어 7주 연속 1위를 달렸다. 2위인 나경원 전 의원(12.2%)과는 두 배 넘는 격차를 보였다. 유력 당권주자인 안철수 의원은 3위(9.8%)로 처졌다. 무엇보다 유 전 의원은 TK에서도 25.7%의 지지를 얻어 선두를 차지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배신자 덫에 갇혀 TK와 보수층으로부터 배척을 받았던 그로서는 한껏 고무될 만한 결과다. 한때 원조 친박으로 불렸던 그는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문제(?)의 교섭단체대표 연설을 통해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선언, 당시 야당인 민주당으로부터 '보수의 지평을 연 명연설'이라는 호평을 받았고 이어 여야 합의의 국회법 개정안이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거부당하며 결국 축출당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는 원내대표 사퇴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헌법 제1조1항을 꺼내들며 다시 한 번 박 전 대통령과 맞섰다. 
 
이후 오랫동안 TK의 의도적 배제에 고전하던 그는 지난 대선 경선에서도 힘 한 번 제대로 못쓴 채 윤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후 TK를 떠나 수도권 진출 의지를 다졌으나 '윤석열의 입'으로 통하던 김은혜 현 대통령실 홍보수석과의 경기지사 경선에서 다시 한 번 패했다. 당시 그는 "윤석열 당선자와의 대결에서 졌다. 자객의 칼에 맞았다"며 "세상은 돌고 도는 법, 달은 차면 기우는 법. 권력의 칼춤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간다"는 말을 남기고 윤 대통령과는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관계를 자임했다. 

정계은퇴 전망도 있었으나, 그는 <야수의 본능으로 부딪쳐라>는 책을 들고 재등장했다. 이후 전국 대학 등을 돌며 북콘서트를 통해 여론전에 나섰다. 절치부심하던 그에게 이준석 전 대표의 퇴장은 기회가 됐다. 지난 당대표 선출 방식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민심과 당심이 절반씩 반영되는 예선 통과는 안심해도 될 상황. 민심 30 대 당심 70의 본선이 관건이지만, 늘어난 책임당원과 윤 대통령 및 윤핵관의 거듭된 실정,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향력 약화 등 TK의 변화는 그에게 자신감이 됐다. 최근 원내대표 선거에서 윤핵관을 비롯해 친윤계가 일치단결한 주호영 의원이 당내 신인인 이용호 의원에게 크게 고전한 것도 그로서는 주목할 만한 변화다. 
 
결국 유 전 의원이 선택한 길은 공교롭게도 그를 배신자로 낙인 찍었던 '박근혜의 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명박정부에서 여당 내 야당 역할을 자처하며 차기 대권까지 손에 쥐었다. 당시 친이계는 몰락한 민주당이 아닌 친박계의 거듭된 비토가 최대 골치였다. 유 전 의원은 동시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견제도 잊지 않으면서 차기 대권 구도를 '유승민 대 이재명'으로 몰아가고 있다. 9일 "야당 대표가 경제는 '기본소득 포퓰리즘', 안보는 '종북반일 포퓰리즘'에 빠져있다"며 "병역미필의 초선의원이 첫 상임위를 국방위로 택했으면 제발 국가안보에 대해 공부 좀 하시기 바란다"고 뼈 있는 조언을 날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제 전문가 출신인 유 전 의원은 19대 국회 전반기 국회 국방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장성철 대구카톨릭대 교수는 유 전 의원이 차기 당권과 관련해 "결심이 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쉽지가 않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의 힘이 가장 강한 집권 초기인 점과 함께 여전히 당이 친윤계에 장악돼 있는 상황에서 차기 총선 공천까지 고려하면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는 판단이다. 장 교수는 "이 전 대표를 무리해가면서 쫓아냈는데, 유 전 의원이 당권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이 되면 여러 가지 수를 쓸 것 같다"고 했다. 또 유 전 의원을 향해 "무작정 윤 대통령을 반대하는 이미지를 당원들에게 줘선 안 된다"며 "'윤석열정부의 성공을 위해 내부에서 쓴소리도 필요하다'는 보수우파 진영의 애정이 있는 이미지를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TK를 기반으로 차기 대권 도전을 저울질하고 있는 홍준표 대구시장의 비토도 유 전 의원으로서는 극복해야 할 과제다. 두 사람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당을 달리하며 맞섰고, 이 과정에서 감정도 상할 대로 상했다. 보수 통합 이후 홍 시장은 유 전 의원을 배신자 프레임에 가두는 데 성공하며 TK를 자신의 기반으로 삼았다. 유 전 의원이 전당대회에 나설 경우 홍 시장은 반대편에 설 가능성이 높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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