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리미트’ 문정희 “악역? 가족 지키려 열심히 일했던 것 뿐”
“전사(前史) 드러나진 않은 ‘혜진’…겉은 남자 혹은 여자 느낌 기묘한 인물”
“극중 간단한 대사 녹음만 1000번 이상, 숨소리·맞춤표·쉼표까지 계산했다”
2022-08-24 01:00:01 2022-08-24 01:00: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당시에는 그랬다. 정말 악랄하다 못해 꿈에 나올까 끔찍할 정도의 비주얼과 행동 양식을 보이는 인물이라고. 하지만 지나고 나서 보면 뭔가 달랐다. 처절하다 못해 처연한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이유가 보였다. 악인에게 이유를 부여하는 것에 누군가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자체에 이유가 부여되면서 면죄부가 가능한 상황이 벌어지니 말이다. 하지만 그 모든 걸 연기한 배우 문정희는 이라 생각하지 않았단다. 그리고 그가 연기한 그 배역들을 보면 순수하게 악으로 규정하기엔 다룰 만한 여지가 분명 있어 보인다. 그에게 첫 번째 을 선사한 숨바꼭질에서도 그랬다. 당시 숨바꼭질감독은 문정희에게 해당 배역을 주지 않으려 했다고. 문정희의 얼굴에서 악을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 하지만 문정희의 삼고초려가 지금의 숨바꼭질명연기를 만들어 냈다. 따지고 보면 그보다 전작인 연가시에서도 문정희의 광기 어린 연기는 시작됐는지 모른다. 연가시에 감염돼 물을 들이켤 때의 흥분된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섬뜩함을 자아냈다. 그래서 리미트에서의 문정희를 보고 있으면 그 섬뜩함이 충분히 이해되고 또 공감이 됐다. 문정희가 만들어 낸 리미트의 악마 혜진이란 인물. 도대체 어떻게 탄생됐을까. 문정희를 통해 들어본 얘기는 이랬다.
 
배우 문정희.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리미트는 범죄 장르 영화다. 여러 범죄 장르 중에서도 리미트가 담고 있는 범죄는 어린이 유괴다. 그 방식이 더 없이 끔찍하다. 이 중심에 문정희가 있다. 도대체 문정희는 이렇게 끔찍한 배역을 왜 맡았는지 궁금했다. 더 없이 차분하고 또 충분할 정도로 다정다감한 분위기의 문정희가 리미트를 선택하고 또 여러 배역 중 혜진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문정희는 쉽게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면 이유가 분명했다.
 
가장 기본 전제 조건은 제가 데뷔한 작품이 드라마 연애시대에요. ‘연애시대가 일본 작가 노자와 히사시란 분의 작품인데, ‘리미트란 작품 제안이 들어왔다. 한 번 봐라. 그래서 봤는데, 원작자가 노자와 히사시 작가에요. 당연히 관심이 생겼죠. 언론 시사회에서 공개된 버전이 87분인데, 그만큼 시나리오도 짧고 굵게 표현돼 있었어요. 진짜 나와야 할 부분만 딱딱 짚어서 나온 것처럼 강렬했죠. 시나리오에 나온 대로만 영화가 만들어지면 대박이겠다 싶었죠.”
 
리미트는 근래 등장한 상업 영화 가운데 가장 짧은 러닝타임이다. 우선 짧은 러닝타임은 극의 전개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정희 역시 잠깐 한 눈 팔면 휙 지나간다고 웃으며 표현할 정도였다. 이런 점은 단순하게 극 흐름의 빠르기만 말하는 게 아니다. 극 자체의 빠르기를 뒷받침할 캐릭터의 강렬함이 더해져야 한다. ‘리미트는 이런 두 가지가 모두 강하게 표현돼 있었다.
 
배우 문정희.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가 작품 선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 몇 개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캐릭터의 세기와 극 흐름의 구성이에요. ‘리미트는 그 두 가지에서 제가 본 시나리오 중에 가장 좋은 느낌이었죠. 흘러가는 스피드가 너무 빠른데, 그 빠름을 견딜 수 있는 캐릭터의 강도가 더 강했어요. 배우 입장에서 이런 역할 놓치지 쉽지 않거든요. 특히 여배우들이 함께 극 전체를 이끌어 가는 작품이 정말 드물거든요.”
 
리미트는 국내 상업 영화로선 상당히 파격적인 구성이다. 메인 캐릭터 3인이 모두 여성이다. 문정희는 극 전체의 사건을 쥐고 흔드는 인물 혜진을 연기하고 그 반대 편에 선 인물은 이정현이 연기한 소은이다. 또한 두 사람의 중간에 선 매개체 같은 역할을 진서연이 연기한 연주가 담당한다. 구성적으로도 상당히 파격적이다. 여성 3인이 극 전체를 이끌어 가는 모습은 국내 상업 영화에선 쉽게 선택하기 힘든 설정이다.
 
정말 쉽지 않은 설정이에요. 여배우들은 기본적으로 누구의 애인’ ‘누구의 엄마’ ‘누구의 무엇등으로 설정이 된 배역들을 많이 하잖아요. 근데 리미트에선 그 자체로 존재를 해요. 그리고 그 여성 세 명이 모두 흥미를 유발하고. 특히 제가 연기한 혜진은 지금 생각해도 사실 악역이라고 하고 싶진 않아요. 동생인 준용(박명훈)에 대한 모성을 갖고 있는 인물이고, 또한 영화에선 잘 안나오지만 명선(박경혜)이도 제가 이어준 설정이에요. 사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인물이거든요(웃음). 되게 끔찍한 설명이긴 한데 배우로서 제 설정은 그랬어요.”
 
배우 문정희.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문정희의 설명처럼 혜진은 영화 속 유괴에도 모자라 끔찍한 짓도 서슴지 않은 냉혈한이다. 하지만 그에게 이 모든 건 단순하게 가족을 지키기 위한 일이다. 먹고 살기 위한 호구지책일 뿐. 그래서 일부의 시각으로 보자면 혜진은 모성을 드러내는 기괴한 악역으로 보인다. 그는 혜진의 외형을 만들기 위해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단다. 내적인 부분도 그랬지만 외형적 모습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우선 헤어스타일이 굉장히 부스스하잖아요. 평생 멋을 부려 본 적도 없는 여자에요. 그리고 전사(前史)가 드러나진 않지만 대사로서 혜진의 과거를 유추할 수 있는 부분도 나오잖아요. 그런 걸 종합해 보면 굉장히 기묘한 인물이었을 것 같아요. 겉은 남자인데 속은 여성성을 유지한. 그래서 액세서리도 굉장히 많이 하고 나오고 화장도 이상하고(웃음). 근데 또 성인의 남동생 목욕을 시켜주는. 일종의 소시오패스 같은 인물이에요.”
 
외형적인 부분 구축에도 공을 들였지만 문정희가 진짜 노력한 지점은 녹음이다. 사실 문정희는 리미트시작 이후 러닝타임 절반 이상이 지난 뒤 등장한다. 하지만 실제 등장은 처음부터다. 등장하는 데 등장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 바로 영화 초반에는 목소리로만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성도 변조된 채 등장했다. 이 음성 녹음을 문정희는 무려 1000번 가량은 한 것 같단다.
 
배우 문정희.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목소리 연기를 위해 휴대폰에 다운 받은 앱만 엄청 많았어요(웃음). 여성 특유의 억양과 액센트 등을 없애려고 진짜 많이 연습했어요. 특히 아진이를 데리고 있습니다이 문장만 1000번은 넘게 녹음한 것 같아요. 변조된 음성이지만 관객 분들이 들었을 때 여성인지 남성인지 생각 자체를 못하게 하고 싶었어요. 그냥 범인의 목소리로만 존재하고 싶었죠. 숨소리부터 맞춤표 쉼표까지 계산해서 녹음을 했었어요. 영화 더 테러 라이브의 범인 목소리를 많이 떠올리며 연습을 했어요.”
 
문정희는 앞서 언급했지만 숨바꼭질에 이어 리미트까지 필모그래피 가운데 두 작품에서 섬뜩한 악역을 연기했다. ‘악역이라고 하지만 두 캐릭터 모두 이유와 명분이 분명한 캐릭터들이었기에 문정희 입장에선 악역이라고 단정짓기에는 힘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앞으로 더 악랄하면서도 섬뜩한 색깔을 지닌 악역 캐릭터 역시 꼭 연기해 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또한 여성 제작자로서의 꿈도 살짝 공개했다.
 
배우 문정희.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뭔가 이유가 있는 악을 연기하는 데 너무 큰 재미를 알아 버렸어요. 그런 배역을 소화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전 이유 없는 악역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어요. 물론 악역의 끝은 이유가 없는 악이라고 하는 데,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도 사람 사는 세상에 존재하잖아요. 작품 속에서라면 관객들을 분명 이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성 버전의 조커같은 배역이 온다면 정말 꼭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앞으로 진짜 해보고 싶은 건 여성이 메인으로 등장하는 콘텐츠를 기획하거나 제작해 보고 싶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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