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토마토칼럼)"부정적 피드백 루프"
2022-05-16 06:00:00 2022-05-16 06:00:00
16세기 말부터 18세기 유럽을 지배하던 경제 이론이 있다. 프랑스 왕국을 건설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한 중상주의는 루이 14세의 재무부 장관격인 장 바티스트 콜베르의 세금 정책으로 불린다. 중상주의는 체제 안으로 수공업을 육성하면서 체제 밖 무역관세를 높여 진입장벽을 막는 오늘날의 보호무역과도 같다. 
 
16세기 무역로의 개척을 통해 발달한 상업은 장사를 통해 화폐와 같은 금을 벌어들였고 더 많은 국부를 축척하기 위해 공업이 발전했다. 정부는 수공업 시장을 육성하면서 제품의 질을 높이기 위한 품질 관리에 집중했다. 당시 프랑스 중상주의는 국부의 원천인 금을 위해 도입한 경제이론이나 프랑스가 오늘날 명품의 나라가 될 수 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제3천년기의 첫 번째 세기인 21세기 중상주의를 따진다면 뼈아픈 식민 지배와 노예제가 기계 공업화 시대를 거쳐 노동 가치설이 등장했을 뿐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국부의 원천인 금에서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한 세계적 보호무역주의의 각축전은 상당해졌다. 
 
특히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무역 불균형은 자원패권과 통화 패권을 둘러싼 급변의 불확실성으로 내몰리고 있다. 무엇보다 환율·물가·금리 ‘삼중고’는 일촉즉발의 나락이다.
 
하지만 미국의 액션행보를 보면 요상하기 그지없다. 40년 만에 최악인 인플레이션 잡기의 당면 과제를 앞세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3월 금리 인상에 이어 22년만에 최대폭인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했지만 금리를 올린다 해서 유가나 곡물가는 잡히지 않는다. 
 
고물가 요인을 면밀히 보면 시장에 풀린 유동성 과잉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농업 생산을 하지 못해 곡물가는 치솟고 파이프라인은 막혔다. 즉, 현 상황은 교과서적인 인플레이션 잡기용 통화안정책 공식이 먹히지 않는다.
 
오히려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기커녕, 자산시장에 붕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지난주 0.5%포인트 인상 후 내놓은 금융안정보고서에는 그 속내가 잘 묻어나 있다.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고조된 시기, 부정적 피드백루프(Negative Feedback Loop)에 빠질 수 있다는 게 해당 보고서의 골자다. 금리의 가파른 상승이 더 높은 변동성과 시장 유동성 압박, 위험자산의 충격을 불러오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얘기다. 이는 실업사태와 부동산 시장에 타격을 주고 금융 기관의 손실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다.
 
미국의 올해 1분기 노동 생산성은 전 분기대비 연 7.5%로 급락하는 등 7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추락했다. 3월 취업자수와 실업자수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상황에서 사실상 연준의 스텝은 된서리를 맞을 수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로 불어올 후폭풍이다. 지난 4일 0.5%포인트 인상 당시 정부는 ‘예상 부합’이라고 표했으나 다음날 주가는 대폭락했다. 정부의 입김도 먹히지 않는 주가 변동 사태는 전조에 불과하다. 이미 외화 유동성에 대한 경고음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달 외국인이 팔아치운 국내 주식은 5조3000억원에 달한다. 석달 연속 순유출이다. 우리나라가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리는 배경도 잡을 수 없는 물가보단 외화유출 방어에 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개한 보고서에서도 자본유출을 우려하고 있다. 자본유출 가능성이 높은데다, 환율 상승 유발 요인도 큰 상황이다. 외국인 투자자의 급격한 이탈을 예상해 적극적인 외환건전성 정책을 주문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것은 수출뿐이다. 지난 4월 수출은 전년보다 12.6% 증가했으나 2월 20.6%, 3월 18.2%에 이어 증가폭이 줄고 있다. 미 연준의 액션행보는 나비효과로 우리나라의 부동산 요람도 흔들 수 있다.
 
분주한 움직임만 보일뿐, 이렇다 할 정책을 내밀지 못하는 신 정부가 냉엄 현실을 직면해 대응할 수 있는 복안이 있는지 심히 우려스럽다.
 
이규하 경제부장 judi@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