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대구 달성군 유가읍 쌍계리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시민들이 박 전 대통령을 환영하며 설치한 다양한 사진을 살펴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8년 만에 뒤바뀐 운명. 적폐수사를 주도하며 보수진영의 숨통을 압박하던 칼잡이에서 보수정당의 구세주로 등장해 대통령에까지 올랐다. 그렇게 윤석열 시대를 열어젖힌 가운데 그의 칼날에 쓰러졌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르면 다음주 대구 달성군 사저로 입주할 예정이다. '구원'으로 얽힌 두 사람이 표면적으로라도 전격 화해하느냐, 냉기류를 유지하느냐에 따라 보수민심도 일정 부분 요동칠 전망이다.
박 전 대통령이 자리를 잡으면 두 사람이 조우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예상된다. 강성 친박인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17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박 전 대통령이 오는 23일쯤 메시지를 낼 것"이라고 했다. 윤 당선인 측을 향해선 "박 전 대통령 예방을 미루며 버티고 있는데 기대도 안 한다"며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다. 지켜보고 있다"고 여전히 원망을 드러냈다. 윤 당선인 측은 박 전 대통령 사저를 직접 찾을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두 사람의 구원도 다시 회자되고 있다. 윤 당선인을 상징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은 박근혜정부 초기인 2013년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의 외압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정권에 밉보여 한직을 떠돌던 윤 당선인은 2016년 국정농단 특별검사 수사팀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박 전 대통령의 중형을 끌어냈고 탄핵에 기여했다. 조 대표는 대선 당시 "구형 논거문을 참 못 되게도 썼더라. 그 부분을 박 전 대통령이 다 보셨다. 서류를 다 가져가서 보신 상태라서 감정이 안 좋으실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지난 2019년 박 전 대통령은 허리디스크 등으로 두 번의 형 집행정지를 요청했으나,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윤 당선인은 이를 거부했다. 아직도 박 전 대통령 강성 지지자들 사이에서 윤 당선인을 향해 "악랄하다"는 원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리고 이제 박 전 대통령의 입에 이목이 쏠린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신년 특별사면 명단에 오르자 "신병 치료에 전념해서 빠른 시일 내에 국민 여러분께 직접 감사 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현재 서울 삼성서울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이다. 퇴원일에 맞춰 박 전 대통령이 어떤 대국민 메시지를 내놓을지에 따라 보수층이 요동칠 수 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의욕적인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이 윤 당선인에 대한 언급이 있을지도 주목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사진=국민의힘 제공)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중도층을 의식해 박 전 대통령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의식해 끌어안지도, 보수 표심이 날아갈까 내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했다. 박 전 대통령이 사면된 뒤에도 직접 대면하기보다는 "건강이 회복되면 찾아뵙고 싶다",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인간적으로 갖고 있다" 등의 관계 회복을 원하는 발언만 짧게 내놓은 게 전부다. 전통 보수층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영향력과 동정론을 의식하는 동시에 중도층의 거부감을 염두에 둔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라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과의 만남은 피할 수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이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전임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예우를 갖춰야 함은 물론, 보수정당 출신 대통령이라는 정통성 확보를 위해 구원은 씻고 관계회복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당내에서도 일고 있다. 다만 윤 당선인을 둘러싼 친이계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윤 당선인으로서는 당의 텃밭인 대구·경북(TK) 민심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보수의 심장이자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인 대구에서 윤석열 75.14% 대 이재명 21.60%를 기록했다. 이와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을 동정하는 표심이 그를 감옥으로 밀어넣은 윤 당선인에게 선뜻 지지를 보내지 못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조원진 대표는 "평소 국민의힘 출신 후보가 대구에서 80%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이번 대선에선 10%포인트가 빠졌다"며 "지역에서 절대 (윤석열은)안 된다는 민심이 있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윤 당선인은 해빙 무드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원회에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를 두루 중용하며 화해의 손짓을 보냈다. 이날 완성된 24명의 인수위원 중 박근혜정부에 몸 담았던 이들은 3명이다. 대표적으로 경제1분과 간사 최상목 전 기획재정부 차관을 기용했다. 최 전 차관은 국정농단에 연루된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일한 바 있다. 기획조정분과 간사인 추경호 의원, 경제1분과 인수위원인 신성환 교수 등도 친박 인사다. 정책특보나 특별고문까지 합치면 6명으로 더 늘어난다. 이를 두고 윤 당선인이 친박계를 끌어안겠다는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달렸다. 하지만 돌아선 박 전 대통령의 마음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도 그 어떤 언급도 삼갔다. 윤 당선인으로서는 야속할 뿐이다.
15일 대구 달성군 유가읍 쌍계리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 앞에 지지자들이 박 전 대통령을 환영하며 설치한 다양한 사진 등이 눈길을 끌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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