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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속 보이는 재판 지연 부끄럽다
2022-03-15 06:00:00 2022-03-15 06:00:00
3년4개월째 ‘현재 진행형’이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은 지난 2018년 12월10일 공판준비기일을 시작으로 발을 뗐다. 3년이 지났지만 뿌연 안개 속에 있는 듯, 재판이 언제 끝날지 감조차 잡을 수 없다. 
 
임 전 차장은 ‘사법농단’ 사태의 주역으로 지목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함께 사법농단의 몸통인 셈이다.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임 전 차장의 재판은 지난 10일까지 총 196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다음 재판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임 전 차장의 재판은 쉽게 마무리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 10일 열린 공판에서 임 전 차장이 방어권 보장 주장과 함께 '원직적 공판절차 갱신' 전략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임 전 차장 측은 기존에 증인신문을 진행한 106명 중 핵심증인 33명을 대상으로 증인신문 녹음파일을 법정에서 재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재판부가 변경되는 경우에는 공판을 갱신해야 한다. 임 전 차장의 사건을 맡은 재판부도 지난달 법원 인사로 구성이 바뀌면서 공판절차 갱신 과정을 밟는다. 다만 검사와 피고인, 변호인의 동의가 있으면 증거기록 제시 등 간소한 방법으로 갱신 절차를 대신할 수 있다.
 
임 전 차장 측의 주장이 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한 ‘꼼수’성 의도가 다분하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검찰은 증인신문 녹음파일을 재생할 경우 갱신 절차가 지루하게 늘어질 우려가 있다며 공판 갱신으로만 2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판부 역시 절차만 지연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회의적인 입장이다.
 
임 전 차장 측은 이전에도 재판부 기피신청의 방법으로 재판을 한동안 늦췄다. 지난 2019년 6월에 처음으로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고, 지난해 8월에 재차 기피신청을 했다. 두번째로 낸 기피신청에서는 서울중앙지법 재판부가 소송 진행을 지연시키려는 의도가 명백하다고 판단해 기각하기도 했다. 
 
임 전 차장이 재판을 거듭 늦추면 늦출수록, 사법부로서는 악재다. 진작 법원의 판단을 받았어야 할 인물이 판결을 거듭 회피하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은 실무자들은 이미 1심과 2심을 마치고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임 전 차장에게 법과 원칙, 정의를 지켜야 하는 법조인의 양심이 남아있다면 책임을 피하는 꼴은 바람직하지 않다.
 
법과 정의의 보루인 사법부의 권위 하락도 우려된다. 사법농단 사태 이후 법관들의 사명감과 사기가 떨어졌다는 아쉬움 섞인 목소리가 법원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법관 출신의 재야 법조인은 사법농단 사태를 법원 내 사기 하락의 주요한 원인으로 꼽았다. 법조계의 다른 관계자 역시 법관들이 느끼는 직업적 사명감이 과거와 달라졌다고 전했다. 
 
그렇기에, 임 전 차장에게 법과 원칙, 정의를 지켜야 하는 법조인의 양심이 남아있다면 재판을 더는 미뤄선 안 된다. 자신의 책임을 피하는 꼴은 어떤 형태로든 바람직하지 않다. 후배 법조인들에게, 또 국민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은 그만 보여줄 때가 됐다. 
 
김응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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