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돌고 돌아 '이준석'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선대위 해체라는 승부수를 던지며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 결별했지만, 이준석이라는 뇌관은 여전했다. 윤 후보와 이 대표는 6일 당직 인선을 두고 다시 충돌했고, 소속의원들이 이 대표 사퇴를 결의하면서 내홍이 격화됐다.
이날 오전 잠시 훈풍이 불기도 했다. 윤 후보는 오전 7시30분쯤 여의도역 앞에서 깜짝 출근길 인사를 했다. 이 대표가 전날 '연습문제'라면서 지하철 출근길 인사, 젠더·게임 특별위원회 구성, 플랫폼노동 체험 등을 제안한 것을 윤 후보가 고민 끝에 받아들인 것이다. 지하철역 인사는 흔한 선거운동이지만, 정치신인 윤 후보에게는 처음이었다. 윤 후보는 '이 대표 제안이 영향을 미쳤냐'는 질문에 "그건 뭐, 국민과 소통을 많이 해야 하니까"라고 웃으며 부인하지 않았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6일 오전 여의도역 앞에서 시민들에게 출근길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청년 표심에 윤석열, 이준석 내치지도 못하고 출근길 인사까지
권영세 신임 사무총장은 이날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가 내놓은 숙제를 밤새 고심 끝에 나서서 한 것"이라며 "쇄신 의지를 분명히 보인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전격적으로 결정됐다. 나도 몰랐다"고 했다. 이 대표에 대한 윤 후보 측근들 비토가 여전하지만 전날 있었던 청년간담회 후폭풍 등 2030세대를 달랠 방안으로 결국 이 대표를 택했다는 분석이다. 윤 후보는 앞서 선거조직 쇄신과 함께 청년 행보에 변화를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같은 날 청년간담회에 '스피커폰'으로 참석하면서 '폰석열' 논란이 일었다. 화상으로 참석한 청년들은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라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 일부 욕설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소 굴욕적이어도 윤 후보는 일단 이 대표를 달래는 방식을 택했다. 윤 후보 측은 "대표 말에 대한 존중"이라고 예우했다. 윤 후보가 전날 회견에서 이 대표 거취에 대해 "내 소관이 아니다"고 언급한 것처럼 2년 임기가 보장된 이 대표를 사퇴시킬 뾰족한 방안 또한 마땅치 않다. 이 대표가 지금처럼 연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내부총질을 이어갈 경우 대선 필패는 자명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
훈풍은 잠시, 이 대표는 같은 시각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무슨 소리인가. 연락받은 바도 없다"며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이 대표는 윤 후보가 성의를 보인 지하철 출근길 인사에도 "관심없다"고 했다. 이렇게 윤 후보의 아침 출근길 인사는 이 대표와의 소통이 안 돼 감정싸움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두 사람 간 불통의 단면을 드러낸 장면이었다.
실력행사한 이준석 vs 당무우선권으로 맞선 윤석열…'불통의 참사'
곧바로 이 대표의 실력행사가 이어졌다. 이 대표는 권영세 신임 사무총장의 임명안 상정을 거부, 당 대표 권한을 행사하며 윤 후보와 극한 충돌했다. 전날 오후 권영세 선대본부장 선임 때만 해도 "상당한 기대를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환영했던 기류에서 돌변한 것이다. 윤 후보와 이 대표가 회의 전 독대하면서 갈등이 봉합되는가 싶더니, 이 대표가 이철규 의원의 전략기획부총장 임명을 막판까지 반대하면서 상황은 더 꼬였다. 감정이 상한 두 사람은 비공개 최고위에서 언성까지 높인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당무우선권을 가진 윤 후보가 당초 자신의 구상대로 권영세·이철규 의원 임명을 강행했다. 이 대표는 권 사무총장 인선안은 받아들였다. 다만 평소 감정이 좋지 않았던 이 부총장 인선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며 반대 기록을 남겼다. 대신 "정치적 상황에 있어서 어제부터 갈등 해소를 위한 여러가지 노력이 있었음에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들도 있고,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인지도 궁금해진다"며 "앞으로 지켜보겠다. 어떻게 진행될지"라고 일견 여지를 뒀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사진/뉴시스
의총, 이준석 향해 "사이코패스·양아치" 사퇴 압박
이런 가운데 이 대표가 불참한 의원총회에선 이 대표에 대한 사퇴 요구가 빗발쳤다. 이 대표가 당 내홍의 원인을 제공하고, 이로 인해 윤석열 후보 지지율 급락까지 이어지면서 대선패배 위기감이 당 전체를 엄습한 것에 대한 책임 차원이다.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2시간30분가량 비공개로 진행한 의총에서 참석 의원들 대다수가 이 대표 사퇴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일부 의원들은 "사이코패스", "양아치" 등 인신공격 발언까지 써가며 이 대표 사퇴를 촉구했다. 반면 일부 의원은 대선 정국에서 역풍을 우려하며 신중론을 펼쳤다. 의총에서 이 대표의 사퇴 촉구를 결의하더라도 강제성은 없다. 그러나 당대표 사퇴라는 의총 결의가 현실화될 경우 정치적 압박감과 부담은 상당해질 수 있다.
오후 의총 속개를 앞두고 김기현 원내대표가 이 대표의 참석을 요구했다. 이 대표도 이를 받아들였다. 다만 공개 의총을 요구한 이 대표는 비공개로 진행하자는 강성 의원들과 힘겨루기 끝에 모두발언만 공개키로 하고, 오후 5시20분쯤 의원들 앞에 섰다. 이 대표는 "'연습문제'라는 표현이 불편했다면 죄송하다"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마케팅 용어를 쓴 것"이라고 해명했다. 사과 이후에는 "지금 우리 후보에게서 이탈한 표의 대부분은 2030세대, 40대표"라며 "혹자는 이준석이 2030을 인질 삼아 본인의 정치적 목표를 실현한다고 했다. 제가 단 한 번이라도 경선 아닌 방식으로 사람을 꽂았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그는 "2주 동안 뭐가 바뀌었나. 지금 본질을 젊은세대를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냉정히 오늘의 현실을 보면 (지지율에서 이재명 후보보다)10%포인트 이상 뒤지는 여론조사 결과가 곳곳에 나오고 있다"며 "당장 우리 윤석열 후보부터 당대표인 저까지 많은 이들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공동책임론을 꺼내들었다. 그러면서도 "만약 의총에서 의원들이 의견을 모아서 이준석의 복귀를 명령한다면 저는 지정해 준 어떤 직위에도 복귀하겠다"며 "하지만 그 방식으로는 대선 승리를 위한 젊은층 지지를 제가 가지고 가지 못한다. 젊은층의 눈은 의총에 쏠려 있다"고 압박도 남겼다.
당초 이날 의총은 윤 후보의 선대위 전면 해산 뒤 원팀 결의를 다지는 의미에서 '변화와 단결'이라는 명칭을 정했으나, 극한 충돌만 남은 성토의 장이 돼버렸다.
국민의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의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뉴시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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