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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한국 포스트록신의 연대, 축축한 음의 위로
코토바·나로틱 합동 공연 '카타르시스 인 어텀'
2021-11-02 17:00:00 2021-11-03 10:06:09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도려낸 호박들이 밝게 빛나는 날 만은 아녔다.
 
10월31일, 서울 마포구 홍대 벨로주에서 열린 기획 공연 '카타르시스 인 어텀(Catharsis in Autumn)'.
 
포스트록을 표방하는 두 밴드 나로틱, 코토바가 차례로 무대에 서자, 들뜬 할로윈의 후끈한 공기가 잠시 발화하는 듯했다.
 
지글대는 기타 잔향, 차갑고도 축축한 음(音)의 안개, 넘실대는 상실과 아픔의 기억, 그리고... 위로.
 
"세상에서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자체도 없었으면 좋겠을 때가 있잖아요."(코토바 보컬 됸쥬)
 
이날 공연은 코토바 베이시스트 유페미아가 직접 기획했다. 유쾌한 서양식 명절 분위기 대신 불안감, 외로움, 절망 같은 감정을 표출함으로써, 역으로 정화에 이를 수 있다는 취지를 내걸었다. 
 
동시에 변박과 폴리리듬이 특징인 매스록부터 앰비언트와 슈게이징, 얼터너티브까지 한국 포스트록 신의 자장 안에서 풀어내고자 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작은 무대들'이 사라지는 상황에서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무대에 올리려는 시도는 이어지고 있다.
 
특히 코토바와 나로틱 모두 올해 앨범을 발표했음에도, 제대로 된 공연 자리를 갖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음악이 실연주로 들려질 자리가 소멸해버린 시대에, 한국 대중음악의 종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런 무대는 필요하다.
 
이날 첫 주자로 무대에 오른 나로틱은 올해 7월 발표한 첫 정규 앨범 '카인드(Kind) A'를 실연하는 순서를 꾸몄다. 가을 밤안개 같은 전자 음악 ‘Heristory’로 무대를 시작한 밴드는 점차 아날로그 악기들, 드럼과 기타, 베이스가 합을 맞추는 기승전결식 무대를 펼쳐보였다.
 
재즈마스터와 텔레캐스터가 앰프와 반응하며 뭉개지고 터지는 소리들은, 신스 패드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선율과 시종 뒤섞였다. 마지막 곡 'We Know That's Gonna be The End'에서 활로 기타를 켤 때, 음의 파도는 관객에게로 가 닿았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왜 부정부패를 저지르는가, 젊을 때는 원래 다 이렇게 힘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약자들을 위한 음악을 해보고 싶었습니다."(나로틱 보컬 김정웅)
 
밴드 코토바.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뒤이어 무대에 오른 코토바는 올해 5월 발표한 EP ‘세상은 곧 끝나니까’를 중심으로 무대를 펼쳤다. 사별, 기억상실 같은 실제 관객들 사연에 입각한 '잼' 형식의 신곡 무대도 선보였다.
 
공간계 음을 활용한 기타의 소음들, 이 위로 쌓이는 변칙적인 리듬의 탑, 아련하게 흩어지는 미성의 보컬….
 
"저희 연주가 위로까진 아닐 수 있겠지만 여러분들이 처한 상황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팬데믹 장기화에도 공연장에는 외국 관객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석사 과정으로 한국생활 1년 차인 우루과이 관객 발렌티나씨는 "평소 혁오, 딘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유튜브로 한국 록 음악을 찾아들어왔다"며 "우루과이와 달리 한국 록은 부드러운 매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날 공연은 주최 측이 마스크와 온도 측정, 손 세정제는 물론이고 비닐장갑 착용까지 검토할 정도로 까다롭게 진행됐다. 최근 코토바의 한 공연에서 관객 중 확진자 1명이 나온 탓이다. 코토바 멤버들은 “당시 멤버, 관객 모두 PCR 검사를 받고 추가 확진자가 나오지 않음을 확인했다. 오늘 공연이 2틀 뒤의 불안함으로 다가가지 않기 위해 방역수칙에 어느 때보다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음악은 여전히 국경을 넘어 감정의 물성을 자극한다. 마스크, 비닐장갑으로 무장하고 공연장을 찾는 시대에도 말이다.
 
코토바, 나로틱 멤버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이 기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2021 인디음악 생태계 활성화 사업: 서울라이브' 공연 평가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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