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넬 “서사 앨범, 영화 시나리오처럼 가사 썼다”
잠 못 이루는 밤과 인간관계 간 유사성 착안
앨범 전체 유기성과 통일성 고려, 기승전결 구성
9집 ‘Moments in Between’으로 돌아온 밴드 넬②
2021-09-06 00:00:00 2021-09-07 10:13:1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잠 못 이루는 밤과 많이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심호흡도 해보고, 빗소리를 틀어놓기도 해보고, 배가 고파 그런 건가 싶어 뭔가를 먹어보기도 하지만 여전히 잠들 수 없는 그런 밤.’
 
넬 9집 ‘모먼츠 인 비트윈(Moments in Between)’을 여는 소개글은 이렇다. ‘깜깜한 방안의 문고리까지 신경에 거슬리는 잠 못 이루는 밤’은 “거부하려고 하면 할수록 벗어나지 못하고 더 많은 생각을 떠안게” 한다는 점에서 인간관계와 유사성이 적지 않다.
 
“나의 혹은 상대의 작은 표정, 얘기, 행동까지 굉장히 크게 느껴지고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고. 그런 불안함과 당혹스러움이 전체적으로 깔려있는 앨범인 것 같아요. 그 감정이 사랑이라고 딱 잘라서 얘기할 수 있는 건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으나...”(김종완)
 
지난달 31일 화상으로 만난 밴드 넬의 네 멤버들, 김종완(보컬)·이정훈(베이스)·이재경(기타)·정재원(드럼)은 “앨범 자체의 기승전결을 중요시했다. 하나의 스토리를 갖고 시간의 흐름대로 나열해가는 입장에서, 트랙 배치나 개별 곡의 가사 작업하는데도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넬 9집 ‘Moments in Between’.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2일 발표된 ‘Moments in Between’은 밴드가 8집 ‘칼라스 인 블랙(COLORS IN BLACK·2019)’ 이후 2년 만에 내는 첫 정규 음반이다. 
 
교통사고처럼 다가오는 인연의 시작부터, 설레임과 끌림, 망설임, 위태로움 같은 사랑에 관한 감정 변화를 작가주의 기법으로 채색해간다. 그간 선공개로 발표해 온 싱글 ‘듀/엣(du/et)’, ‘크래쉬(Crash)’, ‘돈 허리 업(Don't Hurry up)’을 포함한 10곡은 시간 순에 따라, 감정의 주파수를 출렁이며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음으로 그려낸 시화(詩畵)’. 스매싱 펌킨스 ‘멜랑 콜리 앤 인피니트 새드니스(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나 시규어로스 ‘아예티스 비욘(Agaetis byrjun)’ 같은 서사 앨범처럼 ‘순서대로 듣기’가 권장된다. [참조, (인터뷰)넬스러운 팝록 사운드…‘음으로 그려낸 시화’]
 
앨범을 엮는 대주제는 사람 간 관계가 타이밍, 상황에 따라 결정지어진다는 것. 가령 연인관계에서 서로에 대한 끌림이 크다고 해도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면 결말이 불안하거나 불행할 수 있다는 점 등에 착안했다. 
 
전체 작곡과 작사를 맡은 김종완(‘파랑주의보’, ‘Don’t say you love me’는 이정훈과 공동작곡)은 “경험과 상상의 비율을 어느 정도로 섞어 만들었나” 하는 본보 기자 질문에 “5대 5로 이해해주시면 될 것 같다”고 답했다.
 
“경험도 있겠지만 그걸 그대로 녹였다기보다는 그 느꼈던 감정들, 또 책이나 영화를 보거나 주변 지인들과 느꼈던 것들이 제 안에 쌓여 있었던 것 같아요. 스토리와 상황 설정을 하는데 도움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작곡과 작사 과정에서는 앨범 전체의 유기성과 통일성을 고려했다. 김종완은 “한곡 한곡 가사를 쓸 때는 그 곡에서 가장 하고 싶던 표현을 다 쏟아냈지만 이후 다음 곡과 겹치거나 이질감 느껴지는 표현들은 다시 자체적으로 걸러내고 보완하는 작업을 했다”고 했다. 
 
“노래 가사 작업이라기보다는 시나리오 대사를 쓰는 식의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대화체가 많은 편인데, 그것도 이번 앨범 특징이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김종완)
 
음반 전체적으로 팝 성향이 두드러지지만, 타이틀곡 중 하나인 ‘유희’에는 넬 특유의 인장이 꾹 찍혀 있다. 가상악기와 리얼 악기(베이스, 기타, 드럼)가 최상의 균형을 찾아가는 곡에서는 ‘Ocean of Light’, ‘습관적 아이러니’, ‘오분 뒤에 봐’ 같은 곡들에서 펼쳐보였던 우주적 몽환성이 아른거린다. 
 
6분30초에 이르는 대곡이자 또 다른 타이틀곡 ‘위로(危路)’는 1막과 2막으로 나눠, 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로스를 듣는 듯한 착각까지 일으킨다.
 
넬 이정훈(왼쪽부터), 김종완, 정재원, 이재경.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밴드는 매 정규 작업 때마다 영국 ‘메트로폴리탄’ 스튜디오, 미국 스털링사운드 등의 유명 엔지니어에게 동시에 믹싱 작업물을 보내고 마스터링 결과물을 얻어, 더 좋은 곡을 앨범에 실어오는 작업들을 해왔다. 
 
이번 앨범에서는 영국 ‘메트로폴리탄’ 스튜디오의 존 데이비스에게만 보냈다.
 
“마스터링 단계에서 (음악의) 컬러가 바뀌어 돌아오기에, 여러 군데 보내왔는데 이번에는 존 데이비스가 어울린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앨범 전곡을 한 번 보냈다가 수정을 좀 더 해야겠다 해서 다시 보낸.. 결국 두 번 보내긴 했네요.(웃음)”(김종완)
 
앨범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곡 ‘Sober’는 우리말로 ‘취하지 않은, 냉철한, 진지한’이란 뜻으로 해석된다. 소개 글에 “KEEP IT SIMPLE”이라 적어놓은 곡으로 이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 짓고자 했던 것일까.
 
“술 혹은 꿈, 그런 것에서 깨어나는, 그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 있을 때는 잘 보이지 않은 것들이 ‘아 이게 현실이지’ 하는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해야 할 수 밖에 없는 것들로 바뀌죠. 조금 더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되기도 하고. ‘KEEP IT SIMPLE’은 우리가 아무리 그렇게 치열했고 서로를 갈망했어도, 시간이 오래 지났을 때 기억 정도 해줬음 좋겠다,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어요. 모든 관계들이라는 거 깔끔하게 끝냈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이죠. 구차하게 이랬고 저랬고가 아니고.”(김종완)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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