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립낫 드러머·메탈처치 보컬, '하늘의 별' 되다
입력 : 2021-07-28 17:21:22 수정 : 2021-07-28 17:21:22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미국 메탈 밴드 슬립낫(Slipknot)과 메탈처치(Metal Church)를 상징하는 멤버 두명이 하늘의 별이 됐다.
 
28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미국 롤링스톤 등 외신에 따르면 슬립낫 원년 멤버인 드러머 조이 조디슨은 26일 4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조디슨은 척수 염증 질환인 급성 횡단척수염으로 투병했지만, 이것이 직접적 사인이 된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유족은 언론에 "생전 온화한 성격, 대범한 심장, 가족과 음악에 대한 사랑을 기억하는 모두에게 슬픈 소식을 전한다. 조디슨이 지난 26일 잠을 자다가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태어난 조디슨은 8세 때부터 드럼 세트를 선물받고 여러 밴드를 거치며 음악 생활을 시작했다.
 
1995년 베이시스트 폴 그레이가 조디슨의 드럼 실력에 반해 '슬립낫'의 전신 밴드 '더 페일 원스(The Pale Ones)'에 합류했다.
 
슬립낫은 활동 전성기(1999~2010년) 9인조 멤버 전원이 기괴한 마스크를 쓰고 공연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헤비메탈을 근간에 두고 인더스트리얼, 스래쉬, 익스트림까지 아우르며 광기 어린 음악들로 팬들에게 사랑받았다.
 
160cm 단신의 다부진 체격이던 조디슨은 밴드의 중심축을 담당했다. 하얀 가부키 에 무늬를 그려넣은 얼굴 가면과 360도 회전 드럼 스테이지로 그를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 메탈리카의 드러머 라스 울리히가 자리를 비울 때는 공석을 메우기도 했다. 
 
그가 주축이 된 슬립낫은 전 세계적으로 4000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4집 '올 호프 이즈 곤(All Hope Is Gone)'은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 1위에도 올랐다. 싱글 '비포 아이 포겟(Before I Forget)'으로는 제4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베스트 메탈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조디슨은 2013년 팀을 떠났고 새 밴드 스카 더 마터(Scar the Martyr), 신세넘(Sinsaenum) 등에서 활동했다. 당시 슬립낫으로부터 해고당했다는 주장을 펼쳐 논란이 일었다.
 
슬립낫 조이 조디슨. 사진/미국 악기사 펄드럼 공식 소셜미디어
 
조디슨이 떠난 26일 메탈처치의 보컬 마이크 하우도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 헤비메탈 전문잡지 라우드와이어에 따르면 하우는 캘리포니아주 유레카의 저택에서 숨을 거뒀다. 하우의 유족들 역시 "힘든 시기 하우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고 싶다"며 정확한 사인 발표를 하지 않았다.
 
하우는 헬리온, 헤레틱이라는 밴드에서 보컬로 활동하다가 1988년 메탈처치에 합류했다. 
 
영국 헤비메탈과 미국 하드록을 버무린 장르에 하우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뒤섞인 메탈처치 음악은 스래쉬 메탈의 교본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다. 1980년대 시애틀헤비메탈 신을 통합했다는 평가도 훗날 받게됐다.
 
초창기 개인의 정신분열에 관한 가사는 점차 밴드 발전에 따라 사회 정치적인 목소리로 커져갔다. 호어는 1996년 밴드가 첫 해산을 하기까지 메탈처치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그가 참여한 세번째 앨범 ' Blessing in Disguise'(1989)는 빌보드 메인앨범 차트 '빌보드200' 75위에 올랐다.
 
2015년 메탈처치는 재결성했고 꾸준히 앨범과 투어를 병행해왔다. 2019년 호주 멜버른 투어 당시 2시간 반 가량의 공연을 마치고 현지에서 기자와 만난 호어는 "가족들과 함께 해외 투어를 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앞으로도 계속 음악 생활을 하고 싶다"며 옅게 웃어 보였다.
 
2019년 호주 멜버른 교외의 한 공연장. 메탈처치 마이크 하우가 노래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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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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