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집은 삶의 터전이기 전에 가장 안전한 자산 축적 수단이자, 경우에 따라 계층 상승까지 가능하게 하는 거의 유일한 사다리다. 적어도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집은 거주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투자상품이고, 생존 전략이다.
그래서 집에 일생을 건다. 세후 월급이 300만~500만원 남짓인 직장인이 집을 위해 월 상환금 수백만 원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 지금 사지 않으면 영영 못 산다는 공포가 사람들을 대출로 내몬다. 집값 상승에 자신의 미래 소득 전체를 거는 비상식적인 모험이 반복되는 이유다.
이런 사회에서 집은 거주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 '존버'를 위한 자산이다. 언제든 팔 수 있어야 하고, 더 큰 차익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사람들은 집에 애정을 쏟기보다 시세를 확인하고 대출이자를 계산한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역대 정부는 늘 '주거 안정'을 말해왔다. 그러나 주거 정책은 번번이 실패했다. 정부는 집을 '사는 곳'으로 보지만, 시민들은 집을 '돈이 되는 곳'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부가 공급과 세금, 대출 규제를 만지작거릴 때 시민들은 그 정책이 어디 집값을 올리고 어디 집값을 누를지부터 계산한다.
부동산 정책이 늘 계급 전쟁처럼 번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주택자는 집값 하락을 원하고, 유주택자는 상승을 원한다. 청년은 대출 완화를 원하고, 기성세대는 세금 완화를 원한다. 누구를 만족시키든 다른 누군가는 피해자가 된다. 정부가 중재자가 아니라 한쪽 편을 든다고 느껴지는 순간, 정책은 곧바로 정치가 된다.
주거 안정을 위한 방법 자체는 많다. 공공임대주택을 늘릴 수도 있고, 민간 임대시장을 활성화해 주거비를 낮출 수도 있다. 세금으로 집값을 억제할 수도 있고, 대출 규제를 풀어 실수요자의 구매 부담을 덜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정책도 오래가지 못한다. 임대주택은 '사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사는 집'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대안이 되지 못한다. 세금으로 집값을 누르면 무주택자는 환호하지만, 유주택자는 반발하고, 대출을 풀면 집값이 올라 다시 다른 무주택자를 절망하게 만든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집은 ‘사는 곳’으로만 정의할 수 없어서 모든 정책은 충돌한다. 최근의 시장 흐름도 그렇다. 정부가 15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 최대 6억원까지 대출을 허용하자, 대출 한도를 꽉 채울 수 있는 가격대의 아파트가 빠르게 올랐다. 서울 외곽과 수도권 일부 지역의 9억~15억원대 아파트가 대표적이다.
올해 들어 서울 집합건물 생애 최초 매수도 급증했다. 특히 30대 매수세가 두드러졌다. 청년들이 느끼는 결핍은 주거 빈곤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자산 빈곤이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벌어도 집값 오르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절망, 월세를 내는 동안 누군가는 자산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박탈감이 청년들을 더 조급하게 만든다. 그러니 정부가 임대주택 공급을 대책이라고 내놓을수록 청년들은 엇박자를 느낀다. 청년들은 '살 곳'을 달라는 게 아니라 '올라탈 사다리'를 달라고 말하고 있는데, 정부는 계속 안전한 대기실만 늘리고 있는 셈이다.
서울 집값은 여전히 오르고 있다. 상승폭은 다소 줄었지만, 방향 자체는 꺾이지 않았다. 집을 둘러싼 불안과 욕망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욕망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일이 아니라, 왜 우리 사회에서 집이 이렇게까지 절박한 문제가 되었는지 인정하는 것이다. 집이 더는 삶의 공간이 아니라 생존의 수단이 된 사회라면, 문제는 개인의 욕망이 아니라 그런 욕망을 만들어낸 구조에 있다.
강영관 산업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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