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기업의 해킹·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한 증거 은폐를 겨냥한 국회의 입법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대규모 개인정보 침해행위에 전체 매출액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제재 수위가 높아진 데 이어, 사고 관련 자료를 은닉·폐기하거나 위조·변조하는 행위까지 별도로 제재하려는 법안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법안 대상은 산업 전반이지만, 지난해부터 대형 침해사고가 이어진 통신업계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해킹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를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1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등에 따르면 이달 들어서만 해킹·개인정보 침해사고 관련 증거 은폐를 제재하기 위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2건 발의됐습니다.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개인정보 침해사고 조사 전이나 조사 과정에서 자료를 은닉·폐기하거나 위조·변조한 경우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은폐 행위를 신고·제보하고 증거를 제출한 사람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내용도 담았습니다. 박민규 민주당 의원도 지난 14일 개인정보 침해사고가 발생했거나 의심되는 경우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접속기록 등 관련 자료의 보전을 명령하고, 자료 은닉·폐기나 위조·변조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증거보전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이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이해민 대통령비서실 AI미래기획수석은 국회의원 재직 당시인 지난달 침해사고가 의심되는 정황이 발생하면 정부가 별도의 자료보전 명령을 내리기 전이라도 관련 자료를 임의로 삭제·훼손·변조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정부가 사고를 인지하고 보전 명령을 내리기 전에 증거가 사라질 수 있는 제도적 공백을 막겠다는 취지입니다. 지난해부터는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 권한과 사업자의 자료제출 의무를 강화하거나 침해사고 조사 권한을 확대하는 법안도 잇따라 나왔습니다.
실제 기업들의 침해사고 조사 과정에서는 증거보전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됐습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정부의 자료보전 명령 이후 서버 2대를 포렌식 분석이 어려운 상태로 조치해 수사의뢰됐지만 경찰은 지난 6월 고의성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불송치했습니다. KT는 악성코드 감염 서버 폐기와 정부 조사 방해 의혹으로, LG유플러스는 침해 정황이 제기된 서버의 운영체제 재설치·폐기 문제로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통신업계 밖에서는 쿠팡이 정부의 자료보전 명령 이후 일부 접속기록이 삭제된 사실이 확인돼 수사의뢰됐습니다.
사고 관련 자료가 사라질 경우 오히려 기업의 책임을 규명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도 최근 입법의 배경으로 꼽힙니다. 이에 단순히 침해사고 신고 의무를 강화하는 것을 넘어 사고 초기부터 증거를 보전하고, 자료를 없애거나 훼손한 행위 자체에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입법 논의가 확대되는 모습입니다. 조인철 민주당 의원은 지난 3월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자에 로그기록 보존 기간을 두고 침해사고가 확인되면 관련 서버를 즉시 증거로 보전하도록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국정감사를 앞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서도 침해사고 이후 기업의 대응을 들여다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훈기 민주당 의원은 최근 LG유플러스의 서버 폐기 의혹을 두고 과기정통부에 수사의뢰에 그칠 것이 아니라 증거인멸 방지책과 이용자 보호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해킹 사고가 통신업계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지만 통신서비스는 국민 생활과 밀접한 데다 지난해부터 통신3사를 둘러싼 침해사고와 관련 의혹이 잇따랐습니다. 특히 SK텔레콤 관련 수사는 종결된 반면 KT와 LG유플러스 관련 수사는 진행되고 있어 국감 과정에서 관련 문제가 다시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습니다. 통신업계로서는 사고 당시 보안체계뿐 아니라 사고 인지 이후 신고와 자료보존, 정부 조사 협조 과정까지 다시 검증대에 오를 수 있는 셈입니다.
과방위 관계자는 "최근 침해사고 조사 과정에서 증거보전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된 만큼 사고 발생 이후 자료를 제대로 보존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다"며 "국정감사에서도 기업의 사고 대응과 정부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이 함께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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