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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부호들)⑭부동산 업계 女帝 우야쥔, 믿는 것은 경험 뿐
룽후부동산 회장, 기자에서 부동산 사업가로 변신
자수성가형 여성 부호, 성공 비결은 '경험'
끝이 없는 '배움'의 열정..무분별한 사업 확장 지양
2014-04-14 10:00:00 2014-04-14 10:00:00
◇우야쥔 룽후부동산 그룹 회장(사진=바이두백과)
 
[뉴스토마토 조윤경기자] 전 세계 여성 부호 중 재산을 상속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부를 일군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2014 세계부호 순위'에 따르면, 전 세계 여성 억만장자 수는 172명에 달하지만, 이 중 자수성가형 여성은 의외로 32명에 불과했는데요. 여기에 당당히 이름 석자를 올린 중국 기업인이 있습니다. 바로 중국 부동산 업계의 대모로 불리는 우야쥔(吳亞軍) 룽후(龍湖)부동산 그룹 회장입니다. 
 
그는 작년 5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서도 중국인 중 2번째로 높은 순위에 등극할 만큼 중화권 대표 우먼파워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지난 20여 년간 써 내려온 성공신화의 밑거름은 무엇이었을까요? 일반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에는 '다양한 경험'을 빼놓을 수 없죠. 여기에 우야쥔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기 전 엔지니어, 기자 편집자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치면서 풍부한 인맥을 쌓아왔는데요. 이 때문에 그는 자신에 대해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영역에서 마당발로 통합니다. 특히, 부동산 담당 기자로 활동할 당시 맺은 인연들은 그가 와일드한 건설 업계에서 살아남도록 해준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죠.
 
기자 생활을 통해 얻은 그의 다양한 업계 정보와 전문지식들도 고작 10여 년 만에 사업을 성공으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는데요. 실제로 우야쥔은 부동산 개발에 나설 때 해박한 지식들을 바탕으로 땅에 어떤 꽃을 심어야 할 지, 나무와 화초는 어떤 비율로 배합해야 하는지까지 일일이 신경 쓰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심지어 1990년대 중 후반 당시 중국 부동산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왕스 완커그룹 회장을 찾아가 사업 비결에 대한 가르침을 청한 적도 있습니다. 게다가 종종 부동산업계뿐만 아니라 정부, 금융업계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을 찾아가 정보를 교류하곤 합니다.
 
우야쥔은 직원들에게도 배움과 연구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룽후의 직원들은 신규 분양 단지에 새가 지저귀고 아름다운 꽃이 피는 경관을 조성하기 위해 새들이 어떤 식물·열매를 좋아하는 지까지도 연구해야 합니다.
 
특히, 충칭(重慶)시 시앙장린(香樟林)별장 개발에 앞서 우야쥔은 연구·영업 인력, 공사관리인 등 관련 책임자들을 캐나다의 한 유명 별장단지에 2주간 머물게 한 적도 있습니다. 이는 당시 책임자들이 고급 별장 생활 체험을 통해 얻은 느낌들을 설계, 시공, 판매 과정에서 고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함이 목적이었죠.
 
사실 우야쥔이 기자에서 부동산 사업가로 변신하게 된 결정적 계기도 자신이 10여 년 전 겪은 경험에서 비롯됐습니다. 그가 어려운 형편 속에서 처음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게 됐을 때인데요. 생애 첫 주택 구입의 기쁨도 잠시. 1년이 넘도록 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데다 불안한 전력 공급으로 전기 난로와 에어컨을 동시에 사용할 수 없는 자신의 집에 큰 실망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지금도 당시를 회상하며 "거실에 창문이 없어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강조하는데요. 하지만 "덕분에 부동산 개발업체를 운영한다면 이렇게 형편 없는 집을 만들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고 이야기도 합니다.
 
이처럼 경험을 앞세운 그의 경영 철학에 힘입어 1995년 룽후가 충칭시에서 첫 주택 분양에 나선 남위안(南苑)과 1999년의 시위안(西苑) 아파트는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립니다. 특히 시위안 아파트의 경우, 구매자들이 밤을 세워 줄 서서 번호표를 받을 만큼 인기 상품이었는데요. 당시 '야채보다 더 빨리 팔린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습니다.
 
이후 룽후에서 내놓은 매물은 충칭시를 가득 메울 만큼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와 함께 회사 매출은 2005년 말 21억2000만위안에 달해 충칭시는 물론 중국 서남 지역에서 부동산 개발업체들 가운데 최초로 20억위안을 넘어서게 됩니다.
 
2006년에는 룽후의 세력이 충칭시를 넘어서 전국적으로까지 뻗어나가게 됩니다. 청두(成都)에서 징란반다오(晶藍半島)라는 대형 주택단지를 설립해 지역이 아닌 전국형 부동산 업체로 도약하게 된 것이죠. 당시 이 상품의 판매 실적은 업계 최고 수준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우야쥔은 무분별한 사업 확장만은 자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도 면밀한 성격인만큼 철저한 리스크 관리를 중요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2009년 룽후의 홍콩 증시 상장 이후 중국 갑부 대열에 합류하게 되지만, 오히려 사업 확장에는 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돈을 사용하려면 더 신중해야 하기에 상장 후 더 많은 책임을 느끼게 됐다"는 것입니다.
 
2012년 11월 우야쥔은 이혼을 겪으면서 자신의 재산이 반토막나고 중국 부자 대열에서 후순위로 밀려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도 남편으로부터 '대량의 주식을 제 3자의 손에 넘기지 않고, 계속 회사 이익을 보호하는데 함께하겠다'는 합의서를 받아냈습니다.
 
그는 룽후 설립 당시 "내 회사는 5년 후 충칭에서, 또 10년 뒤에는 전국에서 으뜸가는 최대 부동산 업체 중 하나로 성장할 것"이라고 스스로 전망했는데요. 현재는 룽후의 이름이 베이징, 상하이 등지에서 모두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만큼 그의 바램이 결국 현실이 된 셈이죠.
 
우야쥔은 이제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입도 꾀하고 있습니다. 2004년에 세계 500대 기업인 홍콩랜드와의 합작으로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는 "국제 사회의 신임을 얻고 국제 무대에 등장하는 시간이 몇 년 앞당겨질 것"이라며 또 한번 룽후의 밝은 미래를 예견했는데요. 과연 실제로 경험에 의존하되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는 우야쥔의 '리스크 제로' 경영 방식이 국제 사회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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