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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죽음, 그리고 정의와 폭력의 경계선에서
2020-07-23 00:00:00 2020-07-23 00:00:00
정의의 외침인가, 집단적 폭력인가. 정의와 폭력을 가르는 경계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 구분을 명확히 인식한 채 위태로운 경계선을 넘나들진 않는지 생각해야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 이후 촉발된 여론 양분화를 지켜보는 마음이 심란할 뿐이다. 사실 고소를 선택한 그녀와 죽음을 선택한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실을 아는 건 당사자인 두 사람뿐이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반 쪽짜리 진실이 돼 버린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진실은 모두를 위해 투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진실을 찾아내는 과정은 수사기관의 몫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수사관이 돼 있다.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한쪽 진영을 선택한 후 상대 진영을 향한 분노를 쏟아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지금 상황이 우려되는 이유다.
 
두 편의 영화가 있다. 사건의 진실보다 그 사건을 대하는 여론이 더 무서웠던 영화.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들이다. 덴마크 영화더 헌트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던 남자는 한 소녀가 자신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하면서 하루아침에 인생이 바뀐다. 마을 사람들은 잔혹한 가해자인 그를 용서하지 않고 사냥하듯 옥죄어 간다. 그는 결국 모든 것을 잃고살았지만 죽은것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남자의 누명은 벗겨진다. 그는 성폭력 가해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사람들 마음속에 범죄자로 낙인 찍힌 자국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마을 사람들에겐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또 다른 영화. ‘부당거래. ‘부당거래에선 정반대 상황이 펼쳐진다. 이 영화에선 사건을 조작하기 위해 한 남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킨다. 전 국민의 관심을 돌려야 하는 기획 사건을 위해 경찰이 권력의 하수인이 된다. 무고한 시민 한 명을 골라 끔찍한 사건의 범인으로 몰아세우고 경찰은 대중의 환호를 받으며 영웅이 된다. 조작에 의해 가해자로 지목된 무고한 시민은 끝내 숨을 거둔다. 관객은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런데 반전이 등장한다. 알고 보니 그 시민이 진범이었다. 그에게 연민을 느꼈던 관객의 마음은 갈 곳을 잃는다.
 
박 시장과 관련된 사건을 두고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것까지 중단하잔 얘기가 아니다. 각자의 정의대로 각자의 할 말을 하되 그 목소리가 상대 진영에 대한 분노를 넘어 폭력이라 느껴질 만한 상황으로까지 치닫는 것을 중단하잔 얘기다. 향후 밝혀질 진실이 어떤 것일지 아직 우리는 누구도 그 결말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이미 각자의 진실 속에 갇혀버렸다. 한 쪽은 범죄자를 지지하는 젠더 감수성 낮은 꼰대가 돼 버렸다. 그 반대 쪽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벗어 던진 극성 페미니스트가 됐다. 그렇게 서로를 비하하면서 상처내기에 몰두 중이다. 인권재단 사람의 박래군 상임이사는 그의 저서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에서죽음은 기념하는 것이 아닌 기억하는 것이라고 했다.
 
공적인 그의 업적 때문에사적인 그까지 미화시킬 필요 없고, ‘사적인 그가 얽힌 마지막 사건 때문에공적인 그의 행적까지 조롱 당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서울시장이었던 그를 기억하면 된다. 단지 그뿐인 것이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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