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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언유착' 핵심 '강요미수', 유죄 인정 쉽지 않다
대법 판례. 좁게 해석…"피해자 의사결정에 실질적 영향 줄 정도 필요"
2020-07-03 06:00:00 2020-07-03 06:00:00
[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신라젠 전 대주주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 대표 협박성 취재를 한 혐의를 받는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에게 검찰이 강요미수죄 적용을 검토 중이다. 법조계는 강요죄(미수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피해자 의사결정에 영향을 줄 정도로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가 증명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2일 법원 등에 따르면 형법 제324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수범 역시 처벌하되 감형한다. 
 
검찰이 '검언유착' 의혹을 받고 있는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에게 강요미수죄 적용을 검토 중이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채널A 본사 스튜디오. 사진/뉴시스
 
검찰은 이 기자가 이 대표에게 제보를 요구하며 "(협조)안 하면 그냥 죽는다. 지금보다 더 죽는다" 등의 말을 한 것을 '협박'으로 봤다. 또 "검찰 수사에 협조할 경우 이 전 대표 가족에 대한 수사를 막을 수 있다"는 대화를 한 점을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이 기자의 말에 따르지 않고 대리인 지모씨를 앞세워 해당 내용을 방송사에 제보했다. 그러면서 "(이 기자의 편지를 받고)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다"며 "가족을 수사하겠다는 말이 장난처럼 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근 대법원 판단 경향을 보면 강요죄를 매우 좁은 범위에서 인정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8월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가 대기업 총수들에게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후원금, 납품계약 및 광고발주 등을 요구한 강요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고 파기환송심과 재상고심에서도 이 부분이 무죄로 인정됐다. 비슷한 이유로 최씨의 최측근이었던 차은택 전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이 대기업 광고사 지분을 넘겨받으려고 기업을 압박한 혐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문화체육관광부 고위공무원들에게 사직을 강요한 혐의 등도 대법원 취지대로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로 판단됐다. 박 전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에게 최씨의 재단 출연금을 강요한 혐의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돼 서울고법에서 선고만 남겨놓은 상황이다. 
 
대법관들은 이들이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던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해악을 고지했다는 점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대법원은 "협박은 사람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의사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할 만한 해악을 고지하는 것을 말한다"면서 "협박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발생 가능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정도의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해악이라는 것은 행위자가 실제 행위를 가할 수 있어야 하고 불이익을 주겠다는 확실한 의사가 전달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대법원의 판례를 볼 때 현재까지 이 기자의 행위만으로는 강요미수죄 인정이 쉽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강요 또는 강요미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강요 대상자가 두려움을 느껴서 어쩔 수 없이 시킨 대로 하려고 했는지가 증명돼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이 대표가 언론사에 적극적으로 제보하고 알리려고 한 것으로 봐선 겁을 먹고 강요된 대로 행동을 하려고 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다만, 이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의 유착 의혹이 증명되거나 이 기자가 보다 구체적인 언어로 이 대표에 협박을 시도한 점이 밝혀질 경우에는 강요미수죄 인정 가능성이 있다. 국정농단 사건에서도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대통령의 뜻", "이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큰일이 벌어진다" 등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해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강요한 혐의로 지난 2018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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