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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기자)“진정한 배려는 선의가 아닌 이해에서 시작된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한 ‘배려 안내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이후 2년…페미니즘, 심리학 등 관점 넓혀
배려의 말들|류승연 지음|유유 펴냄
2020-06-15 00:00:00 2020-06-15 10:04:1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페이지를 넘길수록 자신을 향한 질문들이 늘어간다. ‘내게 배려란 무엇이었나. 이렇게 깊이 생각할 수 있었나.’ 물음표로 끝나는 마음속 메아리는 다시 빼곡하고 절절한 자기반성과 성찰의 마침표로 종결된다. 부끄럽지만 잘 몰랐다. 단순한 친절함이나 선의 정도, 그 이상으로 배려를 진지하고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로 한국 사회의 장애 인식 ‘전환’에 앞장서 온 류승연씨가 새 에세이 ‘배려의 말들’을 냈다. 
 
손바닥 크기 작은 책에 담긴 짧은 저자의 인생담은 강줄기처럼 흘러 ‘배려의 바다’를 형성해 간다. 정치부 ‘호랑이 기자’ 시절을 지낸 2000년도 초반부터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 동환과 세상을 살아가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친절과 다른 진짜 배려는 무엇인지 찾아가는 작가의 여정은 되려 독자 개인이 자신의 경험을 되감을 수 있도록 돕는다. 페이지를 여는 순간, 배려에 대한 자신의 정의와 말들부터 되짚어 보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궁극의 배려는 단순한 친절이나 선의와는 다르다. “타인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까지 살핀 뒤에야” 할 수 있는 게 진정한 배려다. 그러나 현실은 서로를 향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고, 자신조차 배려하지 않으면서 표면적으로만 상대를 배려하고, 갖가지 차별과 혐오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배려보다 배제를 앞세운다. 책은 길을 걷다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때론 지하철 역내에서 마주친 타인과의 경험을 통해 배려란 미명으로 잘못 행해진 말과 행동을 되짚는다.
 
“선량한 마음에서 내게 베풀어진 배려에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왜 이런 온도차가 발생하는 것일까?”
 
저자는 젊은 시절 일 처리 속도가 늦는 후배를 질타하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살던 그에게 10여년 뒤 세상에서 가장 느린 아들이 왔다. “사람마다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말이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게 되자 그제야 상대의 속도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됐다”고 그는 회고한다.
 
‘어떻게 해야 장애인을 배려하는 것인가’라는 고민엔 “그냥 풍경이 되면 된다”고 한다. 지하철 안을 돌아다니는 발달장애 아동이 당연한 일상이 되고, 식당이나 극장에 휠체어 탄 지체장애인이 있는 게 당연한 풍경으로 되면 된다. 직장에선 정신장애인이 병원에 가기 위해 반차를 내고, 치매 걸린 노인이 마을 안을 자유롭게 활보하는 게 당연한 일상이 되면 된다. 장애는 “아픈 것”이 아니며 장애인식은 “개선(잘못된 것을 고쳐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닌 전환(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꾸는 것)돼야 한다”고 목소리 높인다.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출간 2년 뒤 저자는 강연과 독서모임이 늘었다. 책에서는 이 활동들 덕에 장애뿐 아니라 페미니즘, 심리학 등의 영역까지 배려의 관점을 넓히게 된 저자의 사고 흐름도 엿볼 수 있다. 한 강연에서 용어 선택을 잘못해 얼굴이 빨개졌던 사례를 꺼내놓는 것에도 망설임이 없다. 그는 “‘장애를 가진’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장애는 있는 것’이란 정정 표현을 들었다”며 자신의 실수를 되려 독자 인식 전환의 계기로 삼는다.
 
“천원만 달라”던 서울역 남루한 할아버지를 무시하고 지나치다 “배고파요”란 말에 뒤돌아 가 소고기국밥을 사주던 부분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존중, 태도, 차별, 혐오, 평등, 배제와 같은 우리 삶을 단단하게 하는 가치를 민감하게 살필 줄 알아야 배려를 주고받고 나서도 서로 낯 뜨거워지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책 속 밑줄 긋기: 배려가 오가는 사회이길 바란다. 배려가 있는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두 배는 더 웃을 일 많고, 열 배는 더 마음 포근해지는 곳일 것이다. 그런 사회 속에서 우리 모두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배려받고 배려하며 살 수 있다면 더 욕심 낼 일, 바랄 것이 없다. 이 책이 그런 사회로 나아가는 데 아주 작은 보탬이 되기 바란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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