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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사건기록표지 위조' 전직 검사 징역형 선고유예 확정
고소장 분실하자 새로 만들어 날인한 혐의 등 유죄 판단
2020-03-22 09:00:00 2020-03-22 09:00:00
[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자신에게 배당된 고소장을 분실하자 사건기록 표지를 위조한 혐의로 기소된 전직 검사에 대해 징역형의 선고유예가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공문서위조·위조공문서행사 혐의로 기소된 윤모 전 검사에 대해 징역 6개월의 선고를 유예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은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며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에 비춰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에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공문서위조죄와 위조공문서행사죄의 성립과 고의, 증명책임, 증거재판주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윤 전 검사는 부산지검에서 근무하던 지난 2015년 말 A씨의 고소장을 분실했는데도 부장검사, 차장검사 등에게 이를 보고하지 않고, 고소장이 접수돼 배당됐다는 내용이 기재된 사건기록 표지를 새로 만든 후 차장검사 등의 인장을 날인하는 방식으로 위조한 혐의를 받았다. 윤 전 검사는 분실한 고소장과 내용이 같은 A씨의 다른 고소장 사본, 위조한 사건기록 표지를 첨부한 불기소결정서 결재를 올린 것으로도 조사됐다.
 
1심과 2심은 윤 전 검사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6개월의 선고유예를 결정했다. 선고유예는 가벼운 범죄에 대해 참작할 만한 사정을 고려해 피고인에 대한 형의 선고를 미루고, 특별한 사고 없이 2년이 지나면 형의 선고를 면하게 해주는 제도다.
 
재판부는 "검찰에 접수된 고소장이 분실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이고, 분실된 고소장의 내용과 동일성 여부가 확인되지도 않은 다른 사건의 고소장 사본이 첨부돼 있었다"며 "고소인에게 고소장을 다시 제출하도록 요청하는 등의 절차가 모두 생략됐고, 고소장 분실과 관련한 어떠한 보고도 이뤄지지 않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까지 막연히 차장검사 등이 기록 표지에 자신들의 도장을 찍는 것을 승낙했거나 그러한 권한을 위임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사건 사무 담당 직원이 실무상 고소장이 접수되면 기계적으로 사건 표지를 작성해 직접 차장검사 등의 도장을 찍는다고 하더라도 이는 담당 직원이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사건 표지를 작성할 경우 차장검사 등의 개별적인 승낙 없이도 도장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이지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절차를 벗어난 경우까지 함부로 도장을 찍을 수 있다고는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이 사건 기록 표지가 분실된 기록 표지와 똑같이 그대로 다시 작성됐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은 기록 표지만이 분실돼 재작성된 것이 아니라 기록 표지를 포함해 함께 붙어 있던 고소장 원본까지 모두 분실돼 다른 고소장 사본을 첨부하면서 새로이 기록 표지를 재작성한 것이므로 분실된 기록 표지를 포함해 일체를 이루던 당시의 기록과 이 사건 기록표 지를 포함해 일체를 이룬 기록이 동일하다고 볼 수도 없다"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법을 수호해야 할 책무가 있는 검사로써 일반인들보다 더 엄격하게 절차 등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고소장 분실이란 자신의 업무상 실수를 감추기 위해 고소인으로부터 고소장을 다시 제출받는 등의 노력은 하지 않은 채 공문서인 사건기록 표지를 위조해 행사한 것으로써 그 죄질이 가볍다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피고인이 분실한 고소장의 경우 다수의 고소·고발을 반복한 민원인이 제출한 것으로써 기존 고소들이 모두 각하되거나 취하된 사정들에 비춰 보면 이 사건 고소장에 기재된 고소 내용에 유의미한 내용이 있거나 고소인으로부터 다시 동일한 고소장을 제출받아 사건을 처리했을 경우 각하 처분 이외의 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었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며 양형 이유를 제시했다.
 
이어 "이 사건은 피고인이 분실한 고소장 자체를 위조한 것이 아니라 고소장이 접수돼 주임검사에게 배당됐다는 취지가 기재된 내부적 문서인 사건기록 표지가 위조된 것"이라며 "그 사건기록 표지 자체가 어떠한 권리·의무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문서에 해당한다거나 형사절차와 관련한 중요한 문서라고 볼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윤 전 검사는 2016년 6월 고소장 분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직서를 냈다. 하지만 부산지검은 감찰이나징계 없이 사직서를 수리해 의원면직 처리했다. 이에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는 지난해 4월 김수남 전 검찰총장과 김주현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 황철규 전 부산고검장, 조기룡 전 청주지검 차장검사 등 4명을 직무유기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이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총 3차례에 걸쳐 부산지검을 상대로 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모두 기각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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