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의 경제편편)김우중의 이루지 못한 꿈
입력 : 2019-12-18 06:00:00 수정 : 2019-12-18 06:00:00
지난 1992년 1월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은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10박11일동안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마련한 자리였다.
 
김우중 회장은 밝은 표정으로 당시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만나서 한 말을 비롯해 방문소감을 밝혔다. 그렇지만 필자에게는 그가 부친에 관한 소식을 들었는지가 몹시 궁금했다.
 
김우중의 부친은 1950년 한국전쟁 때 서울에 있다가 납북됐다. 필자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김우중 회장에게 혹시 부친에 관한 소식을 들었는지 물었다. 그가 북한 당국자들에게 선친의 생사 여부 등을 알아봤을 것으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1989년 싱가포르에서 월드컵축구대회 최종예선전이 열렸을 때 당시 한국 대표팀의 이회택 감독은 북한 대표팀의 박두익 감독으로부터 아버지의 소식을 들었다. 이회택 감독이 한국전쟁 이전에 월북한 부친의 근황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해서 듣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김우중 회장은 그날 간담회에서 “지금 와서 뭘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말을 아꼈다. 당시 상황이 허락하지 않아서 더 묻지는 못했다. 김 회장도 더 이상 언급하고 싶어하지 않는 듯했다.  
  
김우중 회장은 그 무렵 북한을 20여차례 갔다온 것으로 전해진다. 1991년에는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는 과정에 한몫했고,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무렵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만났다. 2014년 출간된 대화록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진 사실들이다.
 
그렇다면 그가 북한을 오가면서 자신의 부친에 관한 소식을 들었는지 더욱 궁금해진다. 북한측이 다 알려줬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서 김 회장도 더 이상 묻거나 따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북한을 여러 차례 오갈 수 있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그 전말은 이제 알 수가 없다. 
 
김우중 회장 개인에게 북한은 자신의 부친을 납치해 갔으니 말하자면 원수집단이다. 그런데 그 원수집단의 우두머리를 만나고 ‘친교’를 다졌으니, 참으로 대범한 처신이었다. 어떻게든 북한과 교류를 하면서 경제교류와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더 중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우중 회장은 그날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도 남북한 경제교류에 관한 여러 가지 포부를 피력했다. 사업을 통해 남북한 경제협력과 통일에 나름대로 기여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읽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한국기업이 앞으로 조선족이 많은 중국 동북3성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관심영역이 남북한 경제협력을 넘어 광대한 한민족 경제통합까지 미쳤던 것이다. 그것은 그의 꿈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기에 김 회장은 개인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실로 대국적인 안목을 사진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사감을 억누르는 것은 하나의 숙명 같은 것이다. 
 
사실 남북한 교류협력을 추진할 때 김우중 회장보다 적격인 인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피해당사자인 그가 사감을 접고 화해와 협력을 추진한다면 그 호소력은 천배 만배 클 것이다. 김우중 회장 자신도 이런 이치를 잘 이해하고 나름대로 꿈도 가졌을 것으로 감히 추측해본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김영삼정부 들어 북한핵문제가 불거지면서 남북한 관계는 얼어붙었다. 남북한이 날짜까지 합의했던 정상회담도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무산됐다. 모처럼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한 관계의 전환기를 만들 기회였지만, 무산되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 이후 남북한 관계는 순탄치 않게 전개됐다. 김우중 회장이 남북한 화해와 협력을 위해 나설 여지가 없어졌다. 게다가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이했고, 대우그룹은 공중분해됐다. 김 회장도 무대에서 사라졌다.  
 
남북한 경제교류는 김대중정부 들어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 소떼방북과 금강산관광을 통해 살아나는 듯했다. 그렇지만 이 또한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금강산관광도 개성공단도 모두 멈췄다.  
 
김우중 회장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남북한 경제협력과 경제통합이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애쓴 재계의 선구자들이었다. 그렇지만 그 꿈은 갈수록 희미해진다. 문재인정부가 북한핵 문제해결과 남북 경제협력을 추진해 보려고 하지만 여의치 않다. 정세는 도리어 다시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우중 회장의 꿈은 당장 실현되기가 매우 어렵게 됐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되살아날 꿈이다. 그런 날이 오기를 고인이 된 김우중 회장도 삶의 저편에서 고대할 것이다. 이제 평화로운 안식을 누리기를 기원한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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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양

안녕하세요. 뉴스토마토 산업1부 김진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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