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의 인권이야기)인권 실현의 큰 그림을 그리자
입력 : 2019-12-04 06:00:00 수정 : 2019-12-04 06:00:00
인권의 계절이 돌아왔다.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이다. 유엔을 비롯해 국제사회, 각국 정부들도 이날을 기념하는 행사들을 갖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부와 지자체서 기념식도 열고, 민간단체들도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올해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주관하는 공식 기념행사도 예정되어 있고, 민변 등 인권단체들은 매년 갖는 인권보고대회를 연다. 이날을 전후해서 인권주간이 선포되기도 한다. 그만큼 세계인권선언은 무시할 수 없는 권위와 영향력을 행사하여 왔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극을 겪은 인류는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장치로 세계인권선언을 준비했다. 인권의 무시와 경멸이 대 학살극을 비롯한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인권유린을 낳았다는 반성 속에서 3년여의 준비 끝에 세계인권선언을 탄생시켰다. 인권사에 기념비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인권을 통한 자유와 평등, 연대의 세계질서를 염원하고 결의하는 중에도 동서 양 진영은 새로운 대결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세계는 급격하게 냉전질서로 재편되었다. 한국은 이런 세계질서의 희생양으로 분단국이 되었고, 이후 인권의 질식과정을 거쳐야 했다. 민주화운동의 성과로 인권의 지평이 확보되었기는 하지만 아직도 인권을 주장하는 일에 ‘종북좌파’로 낙인찍은 일을 종종 보게 되는 것도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인권 주장을 좌파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일들은 사회의 발전에 엄청난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결국 기득권의 강화와 유지에 기여한다.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인정하자는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에는 극우 개신교 세력이 가장 적극적이다. 차별을 하지 말자는 보편적인 내용이 담긴 법률안에 대해 마치 종교의 자유가 엄청나게 제약 받을 것처럼 호도하는 개신교 주류세력들은 사실 냉전질서 속에서 교계 주류세력으로 성장했다. 전쟁 중에 민간인 학살에 앞장서고 전후에는 독재세력을 위해 조찬기도회를 했던 세력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게 위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공격한다. 가짜뉴스와 혐오표현의 발원지도 이곳으로 드러난 바 있다.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험한 욕설과 혐오발언을 거침없이 퍼부어댄다.
 
이런 혐오와 차별, 자유와 평등에 대한 부정은 정치, 행정, 사법 과정으로 이어진다. 국회의 입법과정이나 정부의 정책 입안 과정에서 사법부의 판결에서 인권적 관점과 기준은 늘 뒷전으로 밀린다. 세계인권선언은 평소에 “법의 지배로 인권이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고 선언했지만, 법의 지배가 폭력에 의한 지배로 변질된 지 오래되었고, 법은 기득권 세력의 이해를 수호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영국의 법원이 성소수자 포용 반대 시위대에 영구적으로 집회 금지 판결을 내리는 것과 같은 판결을 우리는 기대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나와 있는 권리와 자유가 온전히 실현될 수 있는 사회체제 및 국제체제 내에서 살아갈 자격이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28조다. 인권의 실현은 개별의 권리들을 주장을 권리가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는 일을 통해 가능하다. 과거 사회주의 체제가 자유를 억압하여 붕괴를 자초하였다면, 지금 자본주의는 불평등의 심화를 방치해서 무너져 내릴 수 있다. 기후위기는 인류의 멸종을 앞당길 상황임에도 탄소발생 산업시스템을 유지하는 것도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맹신이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도 막으면서 좋은 삶을 누리는 그런 체제라면 훨씬 세계인권선언의 목표가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인권의 실현을 위한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 아직도 냉전질서의 벽을 넘지 못하는 현실이 우울하기만 하다. 올해 12월 10일은 고 김용균 비정규직 노동자 1주기이기도 하다. 그의 죽음 뒤로도 매일 6명의 노동자가 죽어간다. 안전을 비용으로 계산하는 기업권력을 바꾸고,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는 일은 여전히 과제다. 이 시간에도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잘못된 체제 안에서 죽어간다.
 
박래군 뉴스토마토 편집자문위원(pl31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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