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곤의 분석과 전망)지일과 극일의 길, 양향자 이야기
입력 : 2019-08-05 06:00:00 수정 : 2019-08-05 06:00:00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렇게 까지 하냐'는 건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물론 반대로 '잘 됐다. 일본이 제 무덤을 팠다. 우리가 이 기회에 경제적으로 그들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건 반대의 역편향이다.
 
어쨌든 기왕에 이렇게 된 것, 힘을 모으고 극복해야 한다. 이겨야 한다.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사이에 험한 말도 중단해야 한다. "도쿄 가라" "평양 가라" 이런 소리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이적' 분자다.
 
야당이 정부가 타격 입으면 우리가 반사이익을 누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짧은 생각이고, 여권이 경제는 어렵겠지만 총선엔 유리하겠다고 생각하는 건 무책임의 극치다.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를 온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양향자 전 공무원인재개발원장이다. 한일 갈등이 본격화된 직후인 지난달 초순 그는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양 전 원장은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때"라면서 "아베 총리가 정치적 목적으로 터뜨렸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 섣부른 실수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 자체가 함정일 수 있다. 매우 냉정하고 더 전략적으로 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여상을 졸업하고 삼성전자 반도체메모리 설계실 고졸 연구 보조원으로 입사해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팀 상무까지 지낸 양향자의 성공 신화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실은 양향자의 커리어야 말로 지일과 극일의 역사다. 1980년대 양향자가 삼성전자에 입사했을 때는 일본의 반도체 산업 뒷꽁무니를 쫓을 때 였다. 석사 박사 연구원들도 일본어 논문을 읽어야 하던 때 인데 복사 심부름을 하던 '미스 양'은 의외로 일어를 읽을 줄 아는 연구원 숫자가 적자고 생각하며 일본어 사내 강의를 신청했다.
 
여상에서 주 1시간씩 배웠던 일어가 아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졸 사원은 해당이 아니다"는 답만 돌아왔다. 반복되는 신청 끝에 수강을 허락 받았지만 강사마저 "네가 뭘 할 수 있겠냐"며 무시했다. 양향자의 대답은 수강생 중 가장 먼저 일본어 자격증을 딴 것.
 
그 이후 양향자는 복사 심부름을 맡은 일본어 논문 밑에 깨알 같이 해석을 달아 연구원들에게 나눠줬다. 그때부터는 호칭이 '미스 양'이 아니라 '양향자씨'로 바뀌었다.
 
그 일본어 실력을 바탕으로 양향자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스승으로 불렸던 일본인 하마다 시게타카 박사가 부인과 함께 88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통역과 가이드를 맡았다.
 
양향자는 "제가 그분들을 모시고 다녔어야 했는데, 그분들이 나를 모시고 다닌 거 같다"고 회고했지만 그 때부터 지금까지 30년 동안 멘토 관계를 맺고 있다. 하마다 박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양향자는 SRAM설계팀 책임연구원, DRAM설계팀 수석연구원, 플래시설계팀 부장을 거쳤고 임원의 자리까지 올랐다.
 
양향자는 지난달 하순에도 일본에 가서 하마다 박사를 만났다. 양향자의 멘토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이병철의 멘토로 불렸던 하마다 박사는 양향자와 동행한 한국 언론에 "정치·외교적 갈등이나 역사적 감정이 어떻더라도 그 불똥을 반도체로 번지게 하는 것은 인류 발전에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향자는 차관급 공직인 공무원인재개발원장 자리를 물러났다. 그리고 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회에 합류했다. 이제 그 특위에서 도쿄 올림픽은 방사능 올림픽 운운 하는 식의 소리는 그만 나왔으면 싶었다. 특위 합류 소식을 들은 직후 양향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양향자는 담담한 목소리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그게 내 역할 아니겠냐"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나오는 다른 거친 목소리들보다 훨씬 신뢰가 가는 음성이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taegonyo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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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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