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피플) 하상욱 변호사 "중남미 법률문제 안내하는 '셰르파'가 제 역할이죠"
'볼리비아 한인 피살사건' 해결 숨은 공로자…"해외 강력 사건, 정부 조력이 가장 중요"
"볼리비아 사건도 과거 온두라스나 최근 헝가리·필리핀처럼 관심 가져줬다면…"
2019-06-28 06:00:00 2019-06-28 06:00:00
[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법을 잘 모르는 일반 시민에게 송사는 머리 아프다. 언어·문화마저 익숙지 않은 타지에서 송사에 휘말리면 더욱 그렇다. 2008년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 취득 차 중미 온두라스 체류 중 네덜란드 여성 살인 사건 범인으로 몰려 수감됐다 201010월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난 한지수씨 사건참여에 이어, 지난해 1월 남미 볼리비아 관광지인 티티카카 호수 내 태양의 섬을 홀로 여행하다 숨진 채 발견된 40대 한인 여성 A씨 사건 해결을 돕는 한인 변호사가 있다. <뉴스토마토>는 칠레·에콰도르·스페인 변호사 자격을 모두 취득하고 중남미 변호사로 활동하는 하상욱 변호사(법무법인 라틴리걸·에콰도르 소재)를 서면 인터뷰했다.
 
한국인과 기업이 겪는 중남미 법률문제의 안내자인 셰르파역할이지요.”
 
법조경력 31년째에 접어든 하 변호사는 중남미 변호사의 매력을 이렇게 소개했다.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부모님을 따라 남미 칠레로 이민을 가 이듬해 국립대 법대에 입학했다. 칠레 국립대는 대통령만 16명을 배출한 250년 전통의 명문이다. 졸업률이 절반도 못 될 만큼 학위를 받기가 어렵다. 덜컥 입학은 했지만 설움도 많았다. 하 변호사는 “1학년 때 경제법 교수가 시험 채점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학생은 아무래도 답변을 자기 나라 말로 한 것 같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다고 면박을 줘 학생들이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그래도 꿋꿋이 5년 학과 과정과 6개월 실습을 마치고 1년간 논문도 써서 졸업장을 따냈다. 변호사시험은 공개구술시험에서 한 차례 낙방했지만 다음해 기어이 합격증을 쥐었다.
 
스페인·에콰도르·칠레서 활동
 
그렇게 중남미 변호사의 삶이 시작됐다. 스페인에 가도, 에콰도르에 가도, 칠레 학위와 전문자격증을 인정받아 변호사로 일할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로펌 중남미변호사로, 한국외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면박을 받고 이를 갈아 공부했던 법률스페인어분야에선 자타공인 국내 최고가 돼, 한국외대통번역대학원에서 법률스페인어 강의를 하기도 했다. 한국과 스페인, 중남미 20여 개국 등 중남미 법률자문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 활동무대다.
 
 
1994년 에두아르도 프레이 루이스 따글레(Eduardo Frei Ruiz Tagle) 칠레 대통령 방한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역하는 모습. 왼쪽 프레이 대통령 측 통역사가 하상욱 변호사다. 사진/청와대 국가기록사진
 
현재 하 변호사는 볼리비아 사건 피해자 A씨 유족의 현지 소송대리인 선임부터 소통 및 진행상황에 따른 전략 논의 등 사건 전반을 자문하고 있다. 인연은 사건 발생 직후 유가족 대표로 볼리비아를 방문한 A씨 외삼촌으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됐다. 하 변호사는 사건 소식을 접한 뒤 블로그에 여러 차례 관련 글을 올렸다. 2013년 에콰도르로 신혼여행 온 일본인 부부 중 남편이 택시강도 조직에 피살됐는데, 일본 정부의 강력한 항의는 물론 취재진 파견 등 적극적인 대응으로 에콰도르 정부가 신속히 범인들을 체포하고 해당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한 사례를 올리면서 자국민 보호에 귀감이 되는 일례라고도 했다. 이를 본 외삼촌이 연락을 준 것이라고 소개했다.
 
피해가족 요청으로 '한지수씨 사건' 참여
 
해외에서 발생한 사건은 정부 조력이 해결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특히 정치·경제 및 치안이 불안하고 살인사건이 흔한 중남미에서 일하는 하 변호사는 그 영향력을 몸소 경험했다. 하 변호사는 한지수씨 사건은 인터넷과 TV탐사보도를 통해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정부가 국과수 법의학자, 경찰영사 출신 경감, 대한변협 변호사 등 전문가 긴급대응팀을 파견했다면서 그때 일원으로 온두라스를 다녀왔고, 이후 가족의 요청으로 현지 변호사들과의 코디네이터 역할도 하고, 재판과정 한씨의 법정통역을 맡아 모든 한국어 진술을 스페인어로 통역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특히 현지 검찰과 피해자 측, 한씨 측에서 전문가 증인으로 채택한 10여 명의 법의학자와 의사들 간 치열한 공방을 거쳐 세 명의 판사가 한씨의 완벽한 무죄를 선언했던 순간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KBS 추적 60분의 한지수씨 사건 방송 장면. 하상욱 변호사가 가운데, 오른쪽이 한지수씨.  사진/영상 갈무리
 
 
"볼리비아 사건 진범, 최초 용의자"
 
그런 하 변호사에겐 지금 상황이 다소 낯설다. 시신 발견 직후 외신 보도를 인용한 몇 건의 단신 외 한국 언론과 정부의 관심이 뜸했던 A씨 사건 유력 용의자는 13개월 만인 지난 4월 말에야 체포됐다. 당초 볼리비아 경찰이 수사 초기부터 지목했던 바로 그 용의자였다. 하 변호사는 최근 헝가리 유람선 침몰사건과 필리핀 피살사건 직후 한국정부와 언론이 보여준 높은 관심과 배려를 보면서, A씨 유가족은 얼마나 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고 전했다. 특히 여행 작가 고 주영욱씨 사건은 A씨와 유사한 점이 많다. A씨도 초등학교 교사 겸 동화작가였다. 방학을 이용해 이곳저곳을 다니며 영감을 얻었는데, 안데스 지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 잉카문명의 발상지로 불리는 볼리비아 태양의 섬을 찾았다 변을 당한 것이다. 언론의 주목을 받고 한국 경찰인력이 급파된 주씨 사건과 달리 A씨 유족은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 현재는 유력용의자로 지목된 섬 부족장 로헤르 초케에게, 당시엔 까마득히 모르고, 범인 색출을 도와달라며 직접 돈까지 건넸다. 하 변호사는 “A씨 사건 같이 조용하고 억울한 사건에도 정부가 좀 더 관심을 가져 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무심한 댓글, 피해자 2·3차 가해 
 
유족들의 아픔도 전했다. 하 변호사는 기사에 무심코 달린 왜 여자 혼자 그런 위험한 곳에 갔느냐는 댓글에 유족들은 가족을 잃은 고통에 더해 2·3차 피해를 겪었다면서 피해자는 절대 생각 없이 다닌 것이 아니라 안전의식을 갖고 여행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건 발생 두 달 후 현지 한 언론은 A씨가 변을 당하기 바로 전 날 태양의 섬 부족 간 심각한 무력 충돌이 있었고, 관광으로 수익을 올리는 다른 부족에 타격을 주기 위해 상징적으로 로헤르 초케의 부족원 일부가 A씨를 공격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하 변호사는 이런 사정을 고지하지 않은 볼리비아 정부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면서 앞으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됨에 따라 힘겨운 싸움을 계속할 유가족에게 많은 분들의 따뜻한 말과 위로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주씨 기사에도 간혹 비슷한 댓글이 달린다. 하 변호사는 어떤 사건이건 간에 책임을 묻기 전에 먼저 피해자와 그 가족을 배려해주는 감성적 유대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후진국이라는 편견 금물
 
굵직한 강력사건만 다루는 건 아니다. 오히려 중남미에 진출한 한국기업이나 한국에 진출한 스페인·중남미 기업들이 주 고객이다. 스페인에선 대한항공 마드리드 지사 법률고문으로, 에콰도르에선 한국관세청의 전자통관시스템 수출사업부터 현대건설·SK·코오롱·한솔 등 유수 기업의 해외사업까지 광범위한 법률자문을 거쳤다. 하 변호사는 의학을 크게 예방의학과 치료의학으로 나누듯, 법학도 예방법학과 치료법학으로 나눌 수 있다면서 후자가 소송 대리업무라면, 전자는 사전 법률자문 혹은 컨설팅 업무다. 한국기업들이 중남미 현지에서 사업을 하는 데 필요한 포괄적인 법률·회계·세무·경영 자문이 주된 업무라고 소개했다.
 
 
사진/하상욱 변호사 제공
 
중남미에 진출하려는 기업이나 송사에 휘말린 당사자에게 하 변호사가 해주고 싶은 조언은 존중과 소통 노력이다. 하 변 호사는 “‘한쪽이 A라고 이야기한 것을 상대가 B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많이 봤는데, 언어나 법률적 문제라기보다는 사고방식과 문화 차이에서 오는 오해가 많다면서 특히 이런 후진국에 뭐가 제대로 있겠어하는 편견은 금물이라고 경고했다, 하 변호사는 비교법학적으로 볼 때 한국법이 로마법-독일법-일본법을 계수해 왔다면, 중남미는 로마법-스페인법을 계수했다. , 둘 다 로마법에 뿌리를 두고 있는 대륙법 계통이므로 유사한 점이 많다면서 한국에 있는 법규는 중남미에 다 있다고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칠레 출장을 종종 다녀오는데, 여전히 수도 산티아고 중심가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은 법전’”이라며 칠레는 헌법·민법·상법·세법·노동법·수표법 등의 개정판을 6개월마다 내놓고 국민들은 수시로 습관처럼 법전을 사 읽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인 특유의 꼼꼼함과 성실함에 더해, 중남미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 그리고 현지인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중남미 사업성공의 비결이라고 조언했다.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