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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경계를 나누는 ‘선과 냄새’
2019-06-13 06:00:01 2019-06-13 06:00:01
영화 ‘기생충’은 대한민국의 민낯을 선과 냄새로 나눈다. 이 두 가지로 계층을 분리한 것에 불쾌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불쾌감’이란 감정을 끌어낸 이 두 가지는 우리 무의식을 두드리는 회피하고 싶은 진실일 수도 있고,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허구일 수도 있다.
 
며칠 전 아들 등교길이다. 특수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스쿨버스로 등교한다. 횡단보도 앞에서 한 중년부인이 말을 건넨다. “저 학교 다니나 봐요. 부모가 많이 힘들겠어요. 힘내세요.” 격려의 말은 고맙다. 하지만 그 말 속에 숨은 ‘선’(경계)을 느낀 난 그렇지 못했다. 그 누구도 아이 손을 붙잡고 등교시키는 부모에게 격려의 말을 하진 않는다. 그러나 내 아들이 장애인임을 알게 된 순간 나는 ‘힘든 부모’가 돼 세상 부모와는 다른 부모가 됐다. 장애가 있는 아들은 보통의 아이들과 다르단 선 밖에 놓인다. 그로 인해 장애 아이 부모인 나 또한 남들과는 다른 선 밖에 놓였다.
 
그 선은 때론 나 스스로가 만들어낸 감옥이기도 했다. ‘아들의 장애 때문에’ ‘아들의 장애로 인해’ ‘아들의 장애가’란 핑계를 만들어 주변에 선을 그어버린 건 나 자신이었다. 어느덧 난 세상과는 다른 선 너머에서 살아가는 아빠가 됐다. ‘기생충’의 기택(송강호)이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까. 반 지하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천하태평 기택에게 창문 너머 오줌 세례를 갈기던 행인의 추태는 자신의 현실을 또렷이 자각하게 만든 순간일 뿐이다. 자각하는 순간 기택은 선 안에 갇혀버렸다. 기택이 갇힌 선은 박사장(이선균)의 선과도 맞닿는다. 박사장은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택과 박사장 사이에는 선이 존재한다. 언제나 사회적 약자는 선을 넘으려 하고 강자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장애가 있는 아들은 평범한 사회 구성원이 되고 싶다. 비장애인의 우월적 시선이 만든 견고한 선은 아들과 같은 장애인을 평범한 세상 속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에서 밀어낸다. 밀려난 아들은 모두의 아이와는 다른 ‘힘든 존재’로 낙인이 찍힌다. 그래야 아들을 선 밖에 가둬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봉 감독이 사용한 두 번째 경계 장치는 ‘냄새’다. 양극화의 처절함을 드러내기 위한 모멘텀으로 사용된 냄새. 박사장이 말한 ‘지하철 타는 사람들의 냄새’라는 게 실존한다면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이 풍기는 냄새’도 존재할까. 이 냄새는 반지하의 쾌쾌함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냄새가 존재한다면 이미 내 몸에는 쿰쿰한 삭힌 홍어의 그것을 능가하는 냄새가 잔뜩 배어 있을 것이다.
 
너와 나, 우리 사이를 가로지르는 선과 냄새. 실재하진 않지만 실존하는 그것을 나는 언제나 느끼며 산다. 이 선과 냄새는 내가 경계를 넘는 것을 허용할까. 선과 냄새로 경계가 서버린 세상의 잔인함 속에서 아직 어린 장애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의 삶은 너무도 힘겹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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