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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세상을 '선' 하나로 나눌 수 있을까요, 브로콜리너마저②
흑백논리로 복잡다단한 세상사 재단할 수 없어…"다음 앨범? 트로트 생각도 있어요"
2019-05-26 06:00:00 2019-05-26 06: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씬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를 가득 메우는 대중 음악의 포화에 그들의 음악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지난 21일 서울 관악구 청룡동 쑥고개를 찾은 밴드 브로콜리너마저. 14년 전 작업실이 있던 거리를 걸으며 멤버들은 추억에 빠졌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뮤지션이란 이름으로 둘러싸는 세상의 ‘굴레’는 밴드 브로콜리너마저(덕원<베이스·보컬>, 류지<드럼·보컬>, 향기<기타>, 잔디<건반>)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다. 3집 정규와 동명의 타이틀곡에서 밴드는 스스로를 ‘속물들’이라 당당하게 터놓고 얘기한다. 한 주택분양광고에서 영감을 얻어 오늘날 주택 현실을 그대로 그린 듯한 가사가 담겼다. ‘꽤 비싼 건물은 언제나 빈 자리가 없’는데 ‘그런 사람(건물주)이 되지 못하는’ 현실의 울분이 꽤나 직설적이다.
 
“(향기)그렇다고 노래의 화자를 속물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화자는 스스로 건물주가 될 수 없다는 걸 너무나도 알고 있는 사람이에요. 건물주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미 건물을 샀겠죠.”
 
“흔히 ‘속물들’이라고 얘기할 때 우린 그런 함정에 빠지는 것 같아요. 20대 때부터 스펙 관리하는 청년 세대들은 미래를 위해 그런 삶을 사는건데, 또 어른들은 꿈을 갖지 않고 돈돈 거리냐 하시고. 그런 것에 대한 비아냥일 수도 있는 노래에요.”
 
이들은 ‘사람 사는 거 누구나 똑같아’라고만 한다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복잡하고 섬세한 관점의 차이를 면밀하게 짚어낼 때 세상이 좋게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덕원은 “흑백논리처럼 하나의 선(線)을 그으면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마주치는 것들은 아주 복잡하고 섬세한 선들로 구성된다 생각한다”며 “누군가의 언행을 판단할 때 그런 모순 속에 빠지지 않기 위한 이야기들을 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정치인들 나빠’라고만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요. 이런 것은 이런 점에서 나쁘고, 저런 것은 저런 점에서 나쁘다 이야기해야 세상이 바뀌지 않을까요.”
 
브로콜리너마저 정규 3집 '속물들'. 코인 모양의 '브로코인'으로 독특한 앨범 커버를 만들었다. 사진/스튜디오브로콜리
 
앨범에서 ‘선(線)’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스스로를 속물들이라 규정할지라도 뮤지션으로서 생활인으로서 떳떳하게 돈을 벌고, 적어도 최악이 되지 말자는 다짐을 하는 삶. “(덕원)스스로의 마음 속에 선을 긋는 것이죠. 내 한계는 여기까지야 했을 때, 이걸 보호 받아야 한다는 것. 그런 섬세한 내면의 욕구들도 얘기하고 싶었어요.”
 
수록곡 면면은 이런 섬세한 선들이 세상을 입체적으로 보게 한다. ‘나는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닐 뿐’(곡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이라 하고, ‘너는 왜 이렇게 못돼 처먹었니 하고 말하는’ 이에게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곡 ‘혼자 살아요’) 한다.
 
지난 2집 당시 까끌까끌한 록 사운드가 주가 됐으나, 이번 앨범에선 특별한 사운드적 지향점은 없다. “(덕원)소리가 작을 때와 클 때가 아주 차이가 큰 앨범인 것 같아요. 힘을 덜 하는 곡은 아주 덜 하고, 센 곡은 아주 세게 하고, 그때 그때 곡에 따라 최적의 소리를 잡아낸 것 같아요. 사운드가 조금 두텁다고 느껴졌다면 그건 믹싱 과정에서 빈티지 아날로그 장비를 활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잔디)예전 데뷔 EP 때의 사운드는 뭉툭하기만 했다면, 이제는 뭉툭함과 뾰족함 사이를 오가면서 잘 다루게 된 게 차이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평소에도 사운드적 지향점을 갖고 음악을 만든다기 보다는 노래 자체에 어울리는 식으로 편곡 방향을 결정해요. 록을 해보자, 발라드를 해보자 해서 시작하는 경우는 ‘서른’ 빼고 없었던 것 같고, 항상 이 노래를 잘 표현하기 위한 것은 뭘까로 시작해요.”
 
“(덕원)그래서 아마 다음에 나올 곡은.. 트로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향기)멜로디도 이미 있어요.” “(덕원)그 곡은 가사도, 뮤직비디오 구상도 이미 있죠. 또 앞으로 가사가 없는 앨범 그런 스타일의 곡도 해보고 싶어요.”
 
밴드 브로콜리너마저. 사진/스튜디오브로콜리
 
앨범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곡으로 덕원은 ‘가능성’을 꼽는다. 가능성이 소멸하는 삶을 산다는 데서 착안해 만든 노래다. “(덕원)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고 멋있는 사람이고 간에 그 사람이 가진 최초의 가능성이 더 늘진 않아요. 그게 우리 삶과도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시간을 조금씩 잃어 가듯, 가능성도 잃어가는 건데. 그게 슬프게 느껴졌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향기는 지난 17일 첫 공연 때 떼창한 관객을 떠올리며 ‘혼자 살아요’를, 류지는 밤에 관한 노래가 좋다며 ‘아름다운 사람’을 꼽았다. 잔디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와 괜찮지 않은 일’을 고민하다 후자를 택했다. “(잔디)마지막 코러스를 작년 연말 공연 때 관객분들의 목소리로 녹음했어요. ‘이제는 누구도 상처 주지 못할 사람이 되겠네’란 구절을 다 함께 불렀던 분위기가 좋아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앨범 발매 후 밴드는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지난 17~19일 이화여대 삼성홀에서는 단독 공연을 펼쳤다. 유튜브 채널에서는 신곡들의 뮤직비디오와 곡 가사 의미를 짚는 ‘브컴 가사 교실’, 류지와 멤버들의 일상을 다룬 브이로그 등을 차례로 올리고 있다.
 
다만 타이틀곡 ‘속물들’이 지난 17일 MBC 뮤직으로부터 방송 심의 불가 판정을 받는 사태도 있었다. 특정 장면이 대부업체 광고를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아예 이 채널에서 방송 노출이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했다. 이를 두고 멤버들끼리 생각하는 관점은 조금씩 다르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덕원은 생각한 반면, 향기는 “오늘날 미디어 수용자를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거 아닐까 싶었다”고 말한다. 향기는 “비판의식 없이 나오는 규제해야 할 다른 광고들도 버젓이 나오지 않나”라며 “대부업을 연상시키는 전화 장면이 문제였는데, 그걸 보고 진짜 따라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정 장면 때문에 아예 불가 판정을 내리는 것이 유쾌하진 않았다”고 했다.
 
밴드 브로콜리너마저.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마지막으로 이번 앨범을 여행지에 빗대달라니, 멤버들끼리 만담을 하듯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향기)저는 집 같은 앨범이었으면 좋겠어요.” “(잔디)비싸면 좋은가요?” “(향기)아 비싸면 좋죠. 신발 뻗고, 발 뻗고, 좋은 집이었으면 좋겠네. 그런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앨범이었으면 합니다.”
 
“(덕원)저는 바가지 없는 여행지. 낯선 여행지는 기분 좋을 수도 있지만 불안하기도 하잖아요. 불안한 요소가 없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스타벅스 같은 곳? 어디를 가든 기본 이상은 보장이 되는 곳, 보기만 해도 마음이 놓이는 그런 여행지.” “(류지)여행 가면 스타벅스 저도 진짜 많이 가요.”
 
잔디가 골똘히 생각하다 마무리를 짓는다. “렌터카를 빌릴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네요. 어떤 낯선 공간을 가더라도 짐을 모두 맡겨 두고 내 몸은 자유롭게 둘 수 있는 그런 여행이요. 나의 안전이 보장되는 최소한의 공간이랄까요.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길테고. 그게 바로 이번 앨범의 ‘선’ 같은 개념이 아닐까 싶어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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