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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삼성 노사, 평행선 지속…연이은 악재로 생존위기 가시화
19일만에 교섭 재개·합의에는 실패…내년 신규물량 확보도 불투명
2019-03-27 20:00:00 2019-03-27 20:00:00
[뉴스토마토 김재홍 기자] 르노삼성자동차 노사가 19일만에 임금 및 단체교섭(임단협)을 재개했지만 소득 없이 끝났다. 르노삼성은 부산공장 경쟁력 하락과 임단협 장기화로 신규 물량 배정이 불투명해지면서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 최근 르노그룹의 미래 구상에서 르노삼성이 사실상 제외되는 등 내우외환에 시달리면서 대규모 구조조정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르노삼성 노사는 27일 오후 2시 부산공장 대회의실에서 임단협 교섭을 진행했지만 의견 차이만 확인했다. 다만 28~29일 집중교섭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노사는 지난해 6월 상견례를 한 뒤 9개월이 지나도록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특히 도미닉 시뇨라 사장이 신규 수출물량 배정을 위한 타결 시한으로 제시한 지난 8일을 앞두고 나흘간 집중교섭을 벌였지만 결국 결렬됐다. 
 
당시 교섭에서 사측은 실적 인센티브 1020만원, 원샷 보너스 700만원 등 총 172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내용 및 인력 충원,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한 설비 투자, 중식 시간 연장 등 근무 강도 개선안 등 수정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노조가 생산라인 속도 하향 조절, 전환 배치 등에 대한 인사 경영권 합의 전환 등을 협상 막판에 요구하면서 이후 19일 동안 대화의 자리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노조는 지난해 10월 이후 52차례 210시간의 부분파업을 벌였고 특히 20~22일에는 지명파업을 벌였다. 지명파업은 노조에서 지명한 근로자 또는 작업 공장별로 돌아가며 진행하는 파업 방식을 의미한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노조가 조립, 도장, 차체 공장의 구역을 나눠 파업을 진행했는데, 지명파업이 이뤄지면 이와 연계된 다른 공정의 작업도 불가능해져서 사실상 전체 파업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임단협 관련 부분파업으로 인해 2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노사 임단협이 장기화되면서 르노삼성의 미래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특히 이달 들어 악재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르노삼성 노사가 19일만에 임단협을 재개했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최근 연이어 악재가 발생하면서 르노삼성의 위기가 커지고 있다. 사진/르노삼성
 
우선 오는 9월 위탁생산이 만료되는 닛산 로그 물량의 재배정은 무산됐다. 게다가 닛산은 최근 르노삼성에 올해 생산량을 6만대 수준까지 줄이자고 통보했다. 르노삼성은 2014년부터 매년 닛산 로그를 연간 8만대 위탁생산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2015년 11만7565대, 2016년 13만6982대, 2017년 12만2542대, 2018년 10만7251대를 생산했다. 이는 부산공장 연간 생산량의 절반가량 차지한다. 
 
닛산은 최근 노조의 부분파업 등 부산공장 가동이 불안정해지고 로그의 미국 판매량도 감소하면서 감축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르노와 닛산 간 갈등 여파도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로그의 물량 재배정도 실패한데다가 기존 계약 물량 감소까지 겹치면서 부산공장 가동률은 더욱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내년 유럽 수출 물량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르노그룹은 당초 유럽 수출용 신차 'XM3'의 생산을 부산공장에 맡기려했다가 스페인 비야돌리드 공장으로 넘기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시뇨라 사장은 최근 본사 경영진을 만나 수출 물량 배정을 요청했지만 확답을 듣지 못했다. 부산공장의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경쟁력 하락과 임단협 장기화 등의 요인을 감안하면 내년 물량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박재용 한국자동차미래연구소장은 "르노삼성이 생존하려면 공장을 가동할 수 있는 물량을 확보해야 하지만 노사 갈등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르노그룹이 현 상황에서 부산공장에 물량을 반드시 배정할 필요도 없고 그룹 내 공장 간 경쟁에서 부산공장이 밀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르노삼성이 르노그룹의 향후 구상에서 빠진 점도 악재다. 르노그룹은 지난 20일 6개의 지역 본부 중 한국, 일본, 호주 등을 '아시아-태평양'에서 '아프리카-중동-인도-태평양'으로 소속 지역본부를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반면, 중국시장에 대한 집중력을 높이는 차원에서 중국 지역 본부가 신설됐다. 
 
업계에서는 르노그룹이 르노삼성에 경고 시그널을 보냈고 이번 지역본부 변경은 보다 구체화된 움직임으로 해석하고 있다. 로스 모조스 르노그룹 부회장은 지난 2월 초 영상 메시지를 통해 "부분파업이 계속 진행되고 임단협 협상이 지연되면 로그 후속 물량에 대해 논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달 말에는 부산공장을 방문해 "부산공장의 시간 당 생산비용은 그룹 내 공장 중 최고 수준에 도달했으며, 파업만으로 일자리를 지킬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는 "이번 지역 개편이 르노삼성 입장에서는 수출 시장 다변화 등 기회로 볼 수도 있겠지만 현 상황을 고려하면 오히려 르노삼성의 중요성이 낮아졌다고 봐야 한다"면서 "여기서 좀 더 노사 갈등이 지속된다면 대규모 구조조정이나 국내 철수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도 "르노삼성이 최근 몇 년간 국내시장에서 신차가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지금까지 버틴것도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면서 "물량 확보가 안된다면 지난해 한국지엠 군산공장과 같은 결말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재홍 기자 maroniev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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